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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Jul 10. 2020

훗날의 후회를 차감하는 일

남편이 집사가 된 것은 나와의 연애 3년 차의 일이었습니다.


급식소에 밥을 먹으러 오던 아이가 집 근처에 새끼를 낳았고 그중 죽기 직전까지 아팠던 턱시도 고양이 하나를 구조했습니다. 허피스 결막염 링웜이 뒤엉켜 설사와 고름이 범벅인 아이였어요. '모카'라는 이름을 임시로 붙여주고 한 달 반을 꼬박 돌보았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모카의 가족이 될 생각은 아니었어요. 어떻게든 살려 입양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치료를 했지만 입양이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흉곽이 안쪽으로 말리는 장애가 있었고 무엇보다 한쪽 눈에 하얀 막이 덮여 걷어지질 않았거든요. 전국의 케어테이커들이 수고하여 TNR을 진행함에도 여전히 봄가을은 아깽이 대란입니다. 온라인과 유기동물 어플에는 아픈 아이와 예쁜 아이를 가리지 않고 입양 공고가 넘쳐나지요. 결국 수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모카는 입양되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모카는 남편의 첫 반려 동물이 되었습니다. 우다다 시절, 잠을 설쳐 힘겨워하던 남편도 이제는 모카를 보러 칼퇴근을 하는 찐집사가 되었지요.


어느 날 남편이 말했습니다.

「모카가 죽으면, 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것만 같아.」

아 그렇구나, 그때야 알았습니다. 나는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반려견들과 길고양이들을 떠나보낸 이력이 있으나 남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반려동물과의 첫 이별을 겪어야 할 테지요. 반복되어도 힘든 일인데 내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오죽할까요. 염려가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남편을 찐집사로 만든 모카입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려인으로서 올바른 마음가짐과 가족 구성, 경제력을 가졌는데도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왜냐는 물음에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은 펫로스 증후군이었습니다. 이별이 아플까 시작을 못하겠다는 이들과 이전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새로운 시작이 겁난다는 이들이 닮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건 참,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사안이에요. 같은 경험을 해도 사람마다 면역이 다르고 극복 체계가 달라서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같은 기간 내에 회복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특히나 사고로 눈 앞에서 반려동물을 떠나보냈다는 지인의 말에는 마음이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의 충격을 누가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나는 펫로스 증후군을 충분히 앓고 일정 애도 기간을 거쳐 회복된 후 새 가족을 맞는 과정을 건강하게 봅니다만 예외를 넉넉히 고려하지 않으면 새 가족을 권면하는 것조차 또 다른 폭력이 됩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품은 이들 중에서도 말을 덧붙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함께 하고 싶지만 무서워.'가 아니라

'무섭지만 함께 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이들이에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가족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있어. 대단한 건 아니지만 뭘 사준다던지 함께 여행을 간다던지, 그런 것 말이야. 내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작은 것조차 부담일 때가 있거든. 그런데 이제는 내가 밥 몇 끼를 덜 먹는다 생각하고 최대한 주는 편을 택해. 다른 마음은 아니야. 그냥, 내가 편안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나중에 내가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떠난 사람은 떠났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이 땅에 남아 떠난 사람을 그리워해야 하잖아. 그렇게 그리운 순간에 '아, 내가 사준 식탁을 참 오래 썼지.' '함께 여행을 다녀왔지.' '좋아하는 설렁탕을 자주 사줬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나 스스로에게 굉장히 위로가 될 것 같더라고.」


이런 생각을 알려준 건 먼저 떠난 반려동물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어떻게 동물과 사람을 비교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반려동물 또한 가족과 다름없는 생명이라 이쪽의 마음이 저쪽에도 적용이 되더군요. 그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살아있는 동안 건넨 애정만큼 훗날의 후회가 차감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달았어요. 


언젠가 마주할 펫로스 증후군을 걱정하던 남편 역시 살아있는 동안 후회 없이 잘해주고 싶다며 더 많이 모카를 아껴주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훗날 상실을 이겨낼 가장 큰 힘이 되니까요. 나 역시 그러질 못하여 오랜 시간을 울어야 했지요. 어쩌면 첫 반려에 그 사실을 깨달은 남편은 참 지혜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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