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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l 12. 2024

부천의 밤

bifan 심야 상영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지난 주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야상영프로그램을 봤다. 예전부터 영화를 골라 가기보다는 시간이 맞으면 방문하는 식이라, 어떤 영화를 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은 밤 12시부터 대략 새벽 6시까지 3편의 영화를 보여주는데, 어떤 해에는 세 편 모두 슬래셔 무비였던 까닭에 밤새 수백 명이 죽는 걸 본 적이 있다. 또 언젠가는 좀비물만 편성되어 있어서 남미의 물고기 좀비까지 등장했던 적도 있고. 


이번에는 X등급영화 2편에 19금 영화 1편이었다. 그만큼 야하고 잔인했다. 70년대 만들어진 X등급영화 2편은 너무 별로였고 19금 영화였던 영화도 생각보다 재밌지 않았다. 관객들도 예전에 비해서는 얌전했달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코스프레 같은 걸 하고 오는 관객도 있었는데 말이죠.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풍경에 대해 말하고 싶다.


1997년 처음 부천영화제가 열렸을 때, 또래 애들 모두 들썩들썩거리며 영화제에 갔었다. 그때 <리포맨>, <시드와 낸시>를 만든 알렉스 콕스 감독님이 신작을 들고 방문했는데, (신작 영화는 별로였다)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느라 취해서 GV 때 늦었다든지 (GV에 와서도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소주, 곰장어 최고!"라는 말만 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킹덤> 연작을 밤새 상영하는 극장 앞에서 헤어진 연인을 만났던 일이라든지, 하는 일이 있었다. 


2000년대에는 주로  중동역 근처의 부천시민회관에서 심야 프로그램을 봤다. 거기는 관객이 별로 없었다. 동네도 조용했고. 반면에 영화들은 강렬하고 무서웠다.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리즈를 볼 때는 진짜 화장실 가는 것도 꺼릴 지경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영화제는 변하고 관객도 변한다. 사실 영화제 초기에는 운영도 미숙했고 영사사고도 많았다. (아까 말했던 <마스터즈 오브 호러>의 한 에피소드는 몇 번인가 영사사고가 나서 반복상영되었는데, 그게 더 무서웠다) 하지만 영화제 분위기는 더 좋았던 것 같다. 아는 사람도 많았고. 지금은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거겠지. 


언젠가 수십 년이 지나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죽고 난 뒤라면, 이런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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