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의 이별

글로 쓰는 가족 앨범

by 리지사비


요즘 독감이 성행이다.

거리에서도, 회사에서도 기침 소리가 자주 들린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2019년의 겨울이 떠오른다.


그해 겨울, 나는 독감에 걸려 지독하게 아팠다.

그 이후로는 매년 예방주사를 맞지만, 아직도 몸 어딘가에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다.


그즈음 독감은 이별과 함께 찾아왔다.

그렇다 보니 처음에는 단순한 컨디션 난조라 여겼다.

몸이 좀 무겁고, 열이 나는 정도.

며칠 쉬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목소리는 점점 나오지 않았고, 기침은 끝없이 이어졌으며, 이마는 손을 대기 힘들 맘 큼 마그마처럼 뜨거웠다.


두통이 심해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었고

결국 회사에도 나가지 못한 채 방안에 누워 연말을 보냈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질 즈음,

어느 새벽



지이잉 --

도어락 여는 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이어

띠띠띠디 -

벨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다.

이 시간에...? 누구지?


머릿속이 하얘진 채 그대로 몸이 굳었다.

'억-'


놀란 채 문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내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딸~! 괜찮아?"

엄마와 아빠였다.



산타클로스처럼

짐을 한가득 안고, 숨 가쁘게 들어오셨다.

그순간의 장면은 지금도 조금 비현실적으로 기억된다.


열에 취해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전혀 예상을 못한 새벽 시간 때였는지,

조금은 꿈같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엄마 아빠는 딸이 독감이 걸린 뒤

연락이 잘 되지 않자

새벽에 걱정 어린 마음으로

배즙과 김치콩나물죽, 유자청 세병을 들고 이내 집으로 달려오셨다.


기다리는 대신

몸을 움직이는 쪽을 택한 마음.


그때 가져오신 부모님 표 배즙은

배와 도라지 꿀을 한 움큼 넣고, 열 시간 넘게 푹 고아낸 명약이다.

당스파이크가 올까 걱정이 되지만

막상 한잔 마시면 목에 걸린 가래와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악 -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김치콩나물 죽도 그렇다.

평소엔 잘 찾지 않는 메뉴인데 감기에 걸린 날이면 언제나 식탁 위에 놓여 있다.

그래서 집 안에 김치콩나물죽 냄새가 돌면

아, 우리 가족 중 누군가 감기에 걸렸구나 -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유자청은 3병이나 바리바리 들고 오셨다.



엄마아빠표 배즙과 김치콩나물죽 덕분일까.

그날 나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회복되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늘 그런 식이셨다.


야근이 잦아 끼니를 거를 때도

"밥만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며

갈비찜과 김치를 박스채 들고 오셨고

생일 때도 케이크와 선물을 한 움큼 들고 가정방문을 해주셨다.



바이러스나 병마와 싸워 아플때나

세상에 지쳐 주저 않을 때나

아무 말 없이



다시 일어설

힘을

놓고 가셨다.



그 해의 독감은

내가 여전히

크나큰 보호 속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었다.



-



며칠 전


서소문 성지에서 미사를 드리다가

신부님께 들은 말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사람은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세 번의 이별을 겪는다고 했다.


어머니와 자궁에서의 이별.

부모님과의 이별.

세상과의 이별


이별은 피할 수 없기에

제때, 잘 건너야

서로를 덜 아프게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그 새벽의 장면이 떠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엄마 아빠의 얼굴.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크나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문을 내가 먼저 열어야 할 날이 오겠지..

아니, 아무도 열어주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그 온기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글로 생생하게 남기고 싶어졌다.



언젠간 필연적인 일을 겪어야 할 때

너무 아프지 않게,

조금이라도 담담하게 겪어내기 위해,

이 서사들을 가족앨범에 소중하게 한 글자씩 남긴다.



이 앨범은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세 번의 이별을 생각하면

마음이 크게 저며오지만

내가 경험한 온기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남기려 한다.




앞으로도

글로 쓰는 가족앨범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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