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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10. 2019

나 사기결혼 당한거네!

우리가 '둘째'를 다시 생각한 계기

나 완전 사기결혼 당한거네!


병원을 나오며 아내가 싸늘한 문장을 던진다. 변명할 수가 없다. 연애할 때만 해도 멀쩡해 보이던 허리가 망가져 버렸으니 ‘사기결혼’이라 할 만하다.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반복되는 악몽


대학 3학년 때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당시엔 아침에 일어나는 일부터 고역이었다. 허리가 펴지지 않아 할머니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로 간신히 일어났다. 머리를 감을 수도 없어 샤워를 해버렸다.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을 수도 없었고 누워 있는 것 외엔 어떤 자세도 편하지 않았다. 심각한 상황임이 분명했다. 휴학을 하고 수영을 하며 재활의 시간을 가졌다. 6개월 정도 지나자 허리 통증은 거의 없어졌고, 학교와 사회생활을 하기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제 허리 디스크로 고통받는 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10년 후, 결혼 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처음엔 어쩌다 그런 거겠지 했다. 하지만 증상은 매일 나타났고 회사 동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재희씨,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10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척추 전문 병원에 갔다. 역시 허리 디스크가 심각하다며 바로 레이저 시술을 권했다. 두려운 마음에 당일 시술을 받았고, 시술 후 몇 달간은 허리 통증이나 불편함 없이 지냈다. 하지만 비슷한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명의(名醫)를 찾아서


허리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 허리 디스크에 정통한 '명의'를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받고 치료방법을 알고 싶었다. 예약 후 3개월을 기다려 K 병원 S 교수님의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아내도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교수님은 MRI 사진을 보시더니 내가 아닌 아내를 보며 말했다.

“이 사람하고 헤어져요.”
“네?”
“이 사람 이대로 가다간 장애인 되니까 헤어지라고요.”



이게 무슨 말인가.

“여기 디스크가 새까맣죠. 젊은 사람들은 여기가 하얗게 나와요. 이건 60대 할아버지 디스크 색깔이에요. 그만큼 디스크가 압박을 많이 받았다는 거죠. 이거 치료 못해요. 누가 수술이나 시술하라고 하면 다 사기꾼이야.”


“그러면 뭘 해야 해요?”

“걸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들 걷는 운동하시는 것처럼 걷는 운동 하세요. 빨리 걷는 운동. 절대 뛰시면 안 돼요. 걸으면서 허리 주변 근육을 단련시켜야 해요.”


“수영 같은 것도 안 되나요?”

“지금은 안돼요. 걷는 거 말고는 안돼.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근육이완제 드릴 테니까 허리 아프시면 꾸준히 드시고요. 운동 열심히 안 하면 장애인 돼요. 열심히 해요”

이렇게 심각한 상태였다니. 나도 아내도 충격을 받았다. 병원을 나서며 아내가 던진 ‘사기결혼’ 이란 말이 주홍글씨처럼 내 허리에 새겨지는 것 같았다. 허리 상태가 심각한 줄 몰랐다는 것은 결코 변명이 될 수 없다. 어떤 상태인지 몰랐다는 것 자체가 죄목이다. 내가 나의 상태를 모르면 누가 나를 알겠는가.



내가 아프면 가족 모두가 아프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결혼 직후 함께 받았던 종합건강검진에서도 허리 디스크 소견이 나왔지만 오래전에 치료되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나의 ‘건강 불감증’이 병을 키운 것이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건강을 관리하지 않은 벌이다. 가정이 있는 사람에겐 내 몸이 내 것만이 아니다. 내가 아프면 가족 모두가 아프다. 가족 모두가 힘들다.

그 날 이후로 집 안에서 힘쓰는 일은 모두 아내의 몫이다. 아내는 힘쓰는 일은 무조건 못하게 했다. 회사에서도 내 허리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 자주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일을 안 시킨다고. 실제로 회사 동료들은 업무에서 항상 나를 배려해줬다. 아들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들이 다 태워주는 목마 한 번 태워주지 못하고, 몸으로 실컷 놀아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기결혼은 내 삶의 모든 영역을 절룩거리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나의 심각한 허리디스크 때문에 우리 부부는 ‘둘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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