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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16. 2019

우리 둘째 가지지 말까?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던 말

우리 둘째 가지지 말까?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말을 꺼내었다. 입술을 달짝이며 수십 번을 주저했던 말이다. 아내가 뭐라고 할까 무섭고 걱정되었지만 꺼낸 말을 도로 넣을 순 없었다.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온몸의 털들이 바짝 일어섰다.

“무슨 소리야, 왜?”

첫째가 세 살이 되던 해, 우리는 둘째 계획을 세웠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자와 난자가 수억 분의 일의 확률로 만나 수정되는 과정은 인과적이고 필연적인 과학의 세계 같지만, 아주 작고 사소한 우연들에 의해 성패가 결정되는 기적의 세계이기도 하다. 인간은 계획대로 움직이지만 결과는 계획대로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인간이 가진 협소한 시야와 인지적인 한계를 생각한다면,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인 일들도 많다. 어쩌면 둘째가 생기지 않은 것도 그중 하나일지 모른다. 

“아무래도 둘째를 가지면 자기가 너무 힘들 거 같아. 난 허리 때문에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잖아. 지금도 자기 혼자서 충분히 힘든데. 첫째에게 동생이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완전 저질체력이라 엄청 힘들 거고 스트레스받을 테고 분명 첫째한테도 안 좋을 거 같아. 자기도 힘든 거 못 견디잖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고...”

나는 심각한 퇴행성 허리 디스크로 의사 말로는 3kg 이상은 들면 안 된다. 첫째도 신생아 때를 제외하면 제대로 안아 준 기억이 없다. 아내가 힘들게 육아를 할 때도 몸으로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늘 아이를 안고 힘쓰는 일은 아내가 담당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빌라를 유모차 들고 오르내리는 일도 아내 몫이었다. 둘째가 생기면 아내가 얼마나 고생할지 불 보듯 뻔했다. 내 마음도 미안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아이 둘이 생기면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도 많겠지만, 지금 당장 견뎌내야 하는 고통의 무게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내도 내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둘째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도 분명했다. 아내의 입술은 천천히, 그리고 다부지게 움직였다. 


아니, 그래도 둘째는 있어야 돼


외동딸인 아내의 둘째 사랑은 각별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초등학생 시절에도 혼자서 TV를 보며 잠드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울 나이에 밤을 혼자 보내야 했던 아내는 자매가 있는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맘 편히 나누고, 좋아하는 떡볶이도 언제든 같이 먹을 수 있는 그런 언니, 동생의 존재를 막연히 그리워했다. 아내의 마음 한켠에 그림자처럼 오랫동안 드리워진 그리움이다. 



자녀에게는 ‘혼자여서 외로운 삶’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아내는 한 번도 외동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둘째가 딸이면 좋을지, 아들이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만도 힘든 과제였다. 아내는 길을 가다 예쁜 옷을 입은 여자 아이만 봐도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여자 아이 옷 너무 이쁘지 않아? 나도 저렇게 이쁜 옷 사서 입혀보고 싶어. 머리핀도 귀엽고 이쁜 게 얼마나 많은데... 둘째는 꼭 딸을 낳아서 엄청 이쁘게 꾸며줄 거야!”

아내는 첫째가 남자아이여서 해줄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고, 둘째는 꼭 딸을 낳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뒤엉켜 노는 모습을 보고서는 금세 다른 감흥에 젖어 이렇게 이야기했다.

“역시 동성이 좋으려나? 서로 공감대도 많고 남매보다는 형제가 더 친하게 지내고 의지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도 늘 언니가 있었으면 했거든. 자기 생각은 어때?”

사실 아내에게 딸이든 아들이든 성별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혼자가 아닌 것이 중요했다.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내에게 중요했다. 아내의 단호한 태도 앞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둘째를 가지지 말자고, 난 어떻게 아내를 설득할 수 있을까? 눈 딱 감고 둘째를 가져볼까?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내의 단단한 눈빛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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