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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24. 2019

둘째 계획은 없느냐는 말

둘째복음 전도사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

둘째는 아직이에요?


접시에 있던 연어초밥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던 순간,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슬그머니 고개를 드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오래된 지인의 결혼식에서는 예기치 못한 만남들이 종종 있다. 혹은 피하고 싶은 만남도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기대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응. 오랜만이에요. 애기 너무 이쁘다. 둘째 계획은 없어요?”

둘째에 대한 질문은 이제 익숙하다. 꼭 둘째 소식이 궁금해서 묻는 것은 아니다. 아이 있는 부모와 함께 있을 때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윤활제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둘째 계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때문에 대답은 간단히 넘어가기 일쑤다.

“에... 뭐 하나만 잘 키우려고요. 요즘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들잖아요^^”

이만하면 다음 화제로 넘어가도 충분한 수준이다. 그런데 간혹 아이가 둘 이상 있는 집의 부모님들은 이 대답을 가벼이 넘기지 않는다. 둘째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 같다. 지하철 역 앞에서 휴대용 티슈를 나눠주는 전도자들처럼 그들도 늘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둘째가 얼마나 이쁜데~ 꼭 둘째 낳아서 키워봐. 안 낳았으면 어쩔뻔했나 싶다니까. 처음엔 힘들어도 나중엔 지들끼리 놀아서 또 얼마나 편한데. 둘째 추천~”

모두가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째복음’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 우리 엄마 역시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나에게도 가끔씩 말씀하신다. ‘우리 막내 안 낳았으면 우짤 뻔했노!’ 하지만 둘째복음을 전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왠지 미간이 움찔거린다. 마치 공짜 휴지를 나눠주며 전도하시는 아주머님의 눈길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비슷하다.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면 누가 좋아할까.



우리 부부가 그랬듯이, 대부분의 부부들은 첫째를 낳고 기르면서 자연스레 둘째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둘째를 선택하든, 외동아이를 선택하든 그 고민의 수준은 만만치가 않다. 맞벌이가 보편화되고 자녀 양육 비용은 하늘 높은 줄 모르지만, 국가의 돌봄 시스템은 여전히 부실한 우리 시대에 한 명의 자녀를 더 선택하는 일은 어마어마한 용기와 희생을 필요로 한다.

자녀를 선택하기까지 치열한 욕망의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부부 사이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양육을 도와주시는 시댁과 처가로까지 확전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런데 이 엄혹한 전투를 벌이는 사람들에게 같은 전투를 거쳤던 동지로서 동지애를 보여주지는 못할 망정, ‘둘째 추천~’ 한 마디만 남기는 것은 참으로 얄미운 일이다. 둘째를 추천하고 싶은 그들의 선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둘째를 선택하지 않은 혹은 선택하지 못한 삶의 꺼칠꺼칠한 이유들에 대해 먼저 공감해주면 어땠을까 싶다.

100명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100가지의 삶이, 100가지의 행복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삶의 법칙은 없다. 아이를 원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부부가 있고, 아이를 원치 않았는데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에게 자녀는 축복이지만 누군가에겐 자녀가 고통이다. 둘째도 마찬가지다. 우리 부부는 늘 둘째를 원했고 외동아이를 키우는 상상은 해보지 않았다. 우리에게 둘째는 축복이었다. 하지만 삶은 밑그림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진하게 그었던 선을 지우개로 다시 지워야 하는 순간도 있다. 축복의 선택을 퉁퉁 부르튼 마음으로 내려놓아야 그런 순간.




둘째복음의 전도사는 어느새 남편과 함께 유모차를 끌며 총총히 사라졌다. 안타깝게도 전도에는 실패했지만 내 속을 뒤집어 놓기는 했다. 난 마음을 가다듬고서 눈 앞에 있는 연어초밥에 바라봤다. 탄력을 잃고 축 늘어진 연어초밥을 다시 집어 들어 입 안에 넣었다. 차마 전도사에게 꺼내지 못했던 한 마디를 목구멍으로 함께 삼키며.

‘둘째를 포기해야 하는 내 마음을 알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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