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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의 꿈

내 영혼을 세우는 이곳, 브런치

by 소원상자

병이 내 삶을 집어삼켰다.

아무 힘도 나지 않았다. 눈을 떠도 하루가 시작되지 않았고, 몸을 움직여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냥 버티는 것 같았다.

버티다 쓰러지고, 버티다 또 일어나는, 끝나지 않는 싸움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잠식했다.


그때 우연히 알게 된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하게 됐고 감사하게도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학창 시절부터 써온 일기는 내게 억지로 하는 하기 싫은 숙제가 아니라 감정을 해소하는 창구 같은 역할을 해왔다.

내 일기장이 이제 브런치로 옮겨갔다.

일상의 파편이 하나하나 기록으로 변해가며, 나는 더 천천히 걸어가고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화가 치밀었던 순간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그 분노의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된다.

외로움에 잠긴 밤, 그 고요를 문장으로 옮겨내다 보면, 그것이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내 삶에 필요한 침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기쁨조차 글 속에 남겨두면 더 선명해진다.

글은 감정을 풀어내는 통로이자, 나를 다시 만나게 하는 거울이다.

혼자서만 끌어안고 있을 때는 감당할 수 없이 무겁던 고통이, 글자가 되는 순간 조금은 견딜 만해졌다.


통증수치를 숫자로 매일 메모해 놓고. 어제와 오늘의 증상 변화 등으로 간단히 써오던 글들이 점점 확장하면서 원래의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증상을 글로 써놓는다고 덜 아픈 건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겪은 고통이 헛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을 쓰면, 그건 단순히 나만의 짐이 아니라 세상에 남겨진 기록이 되었다. 무기력에 휩쓸릴 때마다 “그래, 그래도 오늘은 썼다”라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붙잡을 수 있었다.


병이 내 삶을 무너뜨린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글은 그 무너진 자리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병에만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는 환자가 아니라 기록하는 사람이고 바라보는 사람이며 살아 있는 사람이다.

글 속에서는 여전히 느끼고, 생각하고, 증언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브런치에 글을 쓴다.

쓰지 않으면 나는 병에 삼켜진다.

쓰면 내 영혼이 조금이라도 지켜지는 느낌이 든다.

글은 내게 치료제도, 해답도 아니다.

그러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 순간은 내가 이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마지막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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