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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ke Aug 19. 2024

루틴 속에서 도망치기

흑백 일상 속 작은 변화

전역 2개월이 지난 지금,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이 루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한 달 동안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독하게 공부만 해보기로 결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람이 있는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작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주는 동기부여로 인해 조금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공부에 지친 저에게 작은 보상을 주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치킨을 먹으러 자주 가던 치킨집으로 향했습니다.

 

“옛날 치킨 1마리 포장할게요!”

 

“10분 뒤에 오세요”

 

이것도 역시 제 일상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반복적인 일상을 잠시 벗어나고 싶어 졌습니다. 한 번은 공부를 하다가 타이밍을 놓쳐 30분 뒤에 치킨집에 도착했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항상 루틴 같은 '10분 뒤에.오세요'의 의미를 알아버렸습니다.  갓 튀긴 뜨끈뜨끈한 치킨을 바로 가져가서 먹으라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아이고,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겠네. 매일 똑같이 반복되니까.”

 

저는 이모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흘러가 있지만,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을 저는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맛있게 먹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3개월이 지났습니다. 더 이상은 제 세상이 흑백영화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일 조금씩 다른 것들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매일 가는 김밥집에서  야채김밥 말고 참치김밥, 불고기김밥, 계란말이 김밥을 시캬보았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매일 도서관의 앉는 자리를 바꿔보아도 비슷했습니다. 3개월 동안 올라가지 않은 토익 점수와, 체력 평가 등급이 오히려 내려가면서, 계속해서 실패하는 듯한 기분에 중독될 것만 같았습니다. 거울 속 자신감 넘치던 제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망가 보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 앱에 접속했습니다. 오랜만이었습니다. 날짜를 설정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 자신을 멋있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혼성 외국인 친구들과 풋살 하기?”

 

키워드는 총 3가지였습니다.

 

혼성, 외국인, 풋살.

 

세 가지다 제가 참여하고 싶은 이유로 가득 찼습니다.

 

혼성. 이성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골 때리는 그녀’라는 프로그램에서 봤던 여성 축구단처럼 실력이 뛰어날지 궁금했... 아니, 그보다 더 솔직한 이유는 이성이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외국인. 토익공부가 지겨웠던 시간들. 오르지 않는 점수. 새로운 동기가 필요했습니다. 다양한 문화에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게 될 미래를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까요?

 

풋살. 실패에 중독되었던 제가 하루 만에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활동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축구를 해왔고, 풋살은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었습니다. 보통 3~4팀이 3점 내기로 리그전을 하는데, 한 번 지면 1시간을 기다리기 때문에 1골 1골이 중요한 게임입니다. 예전처럼 중요한 순간 골을 넣어 지켜보는 관객들의 환호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세 가지 키워드를 확인하고, 저는 무작정 신청 버튼을 눌렀습니다. 게임 시작 2시간 전이었지만, 곧바로 수락될 것을 예상하고 짐을 챙겨 서울에 있는 한 풋살장으로 했습니다. 부랴부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축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습니다. 한 게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모임을 주최한 호스트가 노련하게 팀을 다시 재배정했습니다. 이때, 저는 한 외국인 선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호명되었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조금 거만한 건지’

 

속으로 혼란스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빠르게 팀에 지명된 것에 외국인이 저의 실력을 알아본 것 같아 우쭐해지며 기분이 좋기도 했습니다.

 

게임이 시작되었지만,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이 외국인들의 국적은 무엇이며,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호기심과 의심이 교차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잡생각이 마구 끼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승부욕이 되살아났습니다. 외국인들이 자신감이 넘쳐 보였는데, 한국인으로서 실력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팀의 실력은 비등비등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의 리더인 한 외국인 선수의 리드는 처참했습니다. 자신이 공격을 볼 테니 알아서 포지션을 정하고 퍼지라는 지시에 남은 4명의 선수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저는 미드필드를 보겠다며 가운데에서 팀의 패스를 뿌려주는 중책의 역할을 재빨리 선점했습니다. 나머지 인원들은 수비를 보겠다며, 백업을 해주었습니다.

 

리더 선수는 몇 차례 중요한 기회를 날렸습니다. 그리고, 여러 지시를 하며 팀을 조율하였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골을 허용하는 것은 우리 팀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 골키퍼가 되어 있었고, 강력한 여성 외국인 선수가 슛을 날렸습니다.

 

‘강슛’

 

‘여성 외국인 선수가 게임에 참여하기 때문에 경기를 살살해달라며’ 당부하던 호스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공은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다칠까 봐 고개를 돌린 저의 모습이 우스워졌을 것 같아 창피했습니다. 허무하게 골을 헌납하게 되어 팀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5 대 1로 대패한 우리 팀은 기다리고 있던 팀과 교체하여 휴식 타임을 가졌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외국인은 약 12명 정도 있었는데, 서로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서 이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영어가 아니었습니다. 간혹 영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했습니다. 대화에 참여할 기회가 생길 때까지 저는 팀의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리더가 자리를 비웠고, 저는 남아있는 한국인처럼 보이는 선수한테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사람이죠?”

 

“아니요, 한국말 잘 못해요.”

 

‘한국 사람처럼 보였는데,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말 잘 못해요.”

 

“Where are... you from?”

 

“기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처음 들어보는 국가였습니다. 당황한 저는 가장 필요했던 정보인 이름을 물었습니다.

 

“What’s your name?”

 

“gang jun”

 

“강준?”

 

한국 이름을 알려준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도 한국 사람처럼 생겼지만 키르기스스탄 사람이었습니다. 나라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았다면 추가 질문을 이어갔겠지만, 무작정 물어볼 수 없어서 이내 대화가 어색하게 종료되었습니다.

 

다음 타깃을 몰색 했습니다. 뒤에서 몸을 풀고 있던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팀원에게 대화를 시도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습니다. 무조건 한국 사람이겠다 생각하고 타이밍만을 찾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몸을 푸는 그의 모습에 5분 정도 기다렸다가 다가갔습니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아니요, 중국 사람이에요.”

 

당황했습니다. 이번에도 한국 사람이 아니면, 대체 어디에 한국 사람이 있을까? 중국에 대해서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정확한 정보 없이 섣부르게 질문을 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추가 질문을 망설이다가 옆에서 정말로 한국인처럼 보이는 팀원이 벤치에 앉았습니다. 저는 머쓱하게 대화를 종료하고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한국 사람인가요?”

 

“네, 한국 사람이에요.”

 

“아, 한국 사람이었네요. 한국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아, 네.”

 

이대로 대화를 끝내고 싶지 않아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축구 좋아하세요?”

 

“아뇨, 저는 헬스를 좋아해요. 축구는 잘 안 해요”

 

“어? 아까 보니까 처음 한 실력이 절대 아니시던데?”

 

“(약간의 웃음과 함께) 아, 어렸을 때 조금씩은 했었어요. 축구 자주 하세요?”

 

“아니요, 최근에는 준비하는 게 있어서 못했어요. 안 한 지 한 3년?”

 

“엄청 오래됐네요.”

 

“네, 원래 축구를 엄청 좋아해서 오늘 급하게 나왔어요.”

 

“축구를 좋아하세요. 풋살을 좋아하세요?”

 

티키타카가 생겼습니다. 추가 질문을 할지, 말지 고민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 내심 기분 좋게 대화를 지속하였습니다.

 

“저는 풋살을 좋아해요. 5명만 모이면 친구들이랑 할 수 있어서 예전에 엄청 재밌게 했어요.”

 

옆에 있던 리더 외국인이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포착하여 말을 걸었습니다.

 

“Where are you from?”

 

“이라크”

 

“이라크?”

 

“네, 이라크에서 왔어요,”

 

“한국어 잘하시네요?”

 

“대학교에서 한국어 공부하고 있어요.”

 

수준급이었습니다.

 

“이라크 축구 잘하잖아요.”

(집에 와서 찾아보니 이라크 피파랭킹 70위, 대한민국은 28위였습니다.)

 

사실, 이라크가 축구를 잘하는지는 정확히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던 리더는 “네, 좀 잘해요.” 하며 머쓱 웃었습니다. 알고 보니 순둥순둥한 외국인이었습니다. 경기장 안에서는 독재자 유형이었는데, 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을 보면 저보다 동생이었습니다.

 

“동생도 있어요. 영국 유니폼을 입고 있어요.”

 

“아 그래요? 동생도 축구를 좋아하나 보네요”

 

영국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그의 말에 경기를 뛰고 있는 동생을 직접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저기 경기장 안에 보세요. 저 친구가 제 동생이에요.”

대화가 본격적으로 흥미진진해지려는 찰나, 게임이 종료되어 경기에 바로 입장하게 되었습니다. 시작 전 약간의 시간이 좀 더 필요했습니다.

 

골키퍼를 하겠다는 중국인 팀원에게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었던 한국인을 소개해 줬습니다.

 

“his name is 에릭. I’m 블레이크. what’s your name?”

 

“I’m 헨리”

 

외우기 쉬운 이름이었습니다. 중국인 헨리는 손가락으로 팀원들을 가리키며 이름을 불러봅니다.

 

“에릭, 블레이크”

 

옆에서 대화를 엿듣던 이라크 동생도 다가왔습니다.

 

“he is 아미르”

 

“아미르!, I’m blake, and, 에릭, 헨리”

 

‘아 기르기니스탄 친구!’

 

그에게도 이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강준. I’m 블레이크, and 에릭, 헨리, 아미르”

 

강준은 수줍게 웃었습니다.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 경기장 중앙에서는 상대팀 선수가 우리를 향해 손짓하며 경기를 시작하자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 손짓을 보며 저는 에릭에게 간단히 눈인사를 보내고,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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