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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밤

내키지 않는 동료 조종사와 함께

by Isol

꿈에 그리던 야간 비행이 이제는 익숙하다.

모두가 잠든 밤, 창현은 드디어 시동을 걸고 하늘로 오른다. 아름다운 도시의 불빛을 마주할 생각에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흠이 있었다.

내키지 않는 동료 조종사, 기석과 함께 한다는 것.


“저기 봐.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뛰는 남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석이 창밖을 가리켰다.

“저 사람, 뭔가 사연이 있어서 저기서 달리는 것 같지 않아?”


창현은 고개를 저었다.

“고도를 낮출 수는 없어. 단지 궁금하다고 그렇게 할 순 없잖아.”


역시, 기석은 관제사에게 요청했다.

“HL0531, descent to one thousand.”


순간 창현은 놀랐다. 보이지도 않는 이 밤에 1000ft까지 내려간다고?

관제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주변 장애물은 없으니 천천히 하강하라고 허가를 내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창밖을 내려다본 순간, 뛰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티셔츠에는 전투기 그림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저 남자, 이 시간에 왜저렇게 달리고 있는 걸까?” 기석이 다시 말을 꺼냈다.


전속력으로 달리다 지쳐서 숨을 벌떡이는 모습에

불안과 두려움을 달래려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 같았다.


기석의 물음에 답을 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고도를 상승했다.





창현의 마음속에는 오래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수없이 반복했던 실패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도 번복했던 시간들. 후회라는 감옥 속에 갇혀있던 나날들.


“한 번 내린 결정이라면 끝까지 가자.”

단 한번의 결심이 그를 지금의 조종사로 만들었음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내키지 않는 조종사 기석 덕분에.


10년동안 똑같은 비행 경로와 발전없는 나날들에 지쳐있던 그에게, 기석은 창현에게 여전히 내키지 않는 조종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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