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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익의 근접전

하늘 위에서 처음 부딪힌 사람들,

by Isol

처음엔, 그냥 하늘이 멋있어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너 초익이지?”
기지 첫날,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리도.
그는 이미 비행복이 몸에 익은 듯했다.
나보다 한 기수 위, 말수는 적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초익(初翼) — 처음 날개를 단 사람.
훈련을 마치고 막 실전에 투입된 신임 조종사들을 부르는 말이다.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불렀다.
“우린 아직 초익이야.”
그 말 속에는 미숙함과 자존심이 섞여 있었다.




리도와 나는 처음부터 잘 맞지 않았다.
그는 감으로 움직였고,
나는 계산으로 움직였다.

“너는 너무 머리로만 비행해.”
“너는 너무 감정적이야.”

브리핑실 공기는 늘 팽팽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늘에 오르면 그의 목소리가 제일 또렷이 들렸다.




그날은 훈련 마지막 날이었다.
적기와 근접선(近接線) 에 진입했다.
전투기들이 서로 스치듯 접근하는, 그 짧고도 긴 순간.

HUD(계기판) 위로 빨간 점 하나가 떴다.
리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 시 방향, 고도 두 천!”

나는 반사적으로 스틱을 당겼다.
기체가 떨리고, 하늘이 기울었다.
G가 온몸을 짓눌렀다.
그 와중에
그의 그림자가 내 오른쪽 날개 위로 스쳤다.

근접선이었다.
서로의 비행이 겹치고,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
공포 대신 이상한 평온이 찾아왔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비행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훈련이 끝나고,
노을이 기지 위로 기울었다.
리도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오늘은 꽤 괜찮았네.”
“너 덕분이지.”
“아니. 네가 없었으면 나 떨어졌을 거야.”

잠시 바람만 불었다.
그의 얼굴에 미묘한 미소가 걸렸다.




며칠 뒤, 고훈 중령이 말했다.

“계급은 높을수록 가볍게 들어야 한다.
진짜 무게는 신뢰에서 나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마찬가지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하늘을 난다는 건 결국 사람을 믿는 일이었다.




밤이 되자 기지 불이 하나둘 꺼졌다.
리도가 내 옆에서 말했다.

“야, 초익.
우린 왜 이렇게 미친 짓을 하고 있을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그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하늘엔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래도 결국,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야.
옆에 아무도 없으면,
그 하늘도 그냥 공허하더라.”




그날 이후,
우린 함께 떠올랐다.
서로의 불완전한 날개를 맞대고,
하나의 비행선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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