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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ke Sep 18. 2024

시간을 달리는 자전거

당근

자전거가 필요했다. 서울로 이사 온 후, 바삐 지내느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동 수단이 바로 자전거였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매물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에게 말을 걸며 네고를 시도하는 내 모습은 마치 여러 명과 썸을 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한 판매자가 눈에 띄었다. 닉네임은 ‘36계’.

"36계?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는 말인가?"

사기꾼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왠지 모를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물건—형광색 로드 자전거가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더는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만원 정도 깎아줄 수 있어요?”

“그러죠 뭐.”

의외로 쉽게 깎아준다는 답변에 잠시 고민이 들었다. 혹시 물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인터넷으로 알아보는 것이 귀찮아, 원가를 그에게 직접 물어봤다.

"이 자전거 원가가 얼마인가요?"

"35만 원 정도요."

외관은 너무나 깨끗해 보이는 자전거를 고작 7만 원에 준다니, 의심스러웠지만 매력적인 거래였다.

"서울대 입구로 오세요."

자연스레 거래 시간이 정해졌다. 급하게 자전거가 필요했던 터라,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와의 만남이 조금은 기대되었다.

그는 예상과 달랐다. 긴 파마머리에 마른 체형이었지만, 근육이 다부져 보이는 50대쯤 되는 남자였다. 그의 외모에서 뭔가 범상치 않은 느낌이 풍겼다.

자전거에 올라타 보니, 상태는 아주 좋았다. 그가 내 몸에 맞게 조정을 해주며 말했다.

“아무에게나 주는 물건은 아니에요. 안전하게 타세요.”

그때까지 나는 몰랐다. 이 자전거가 그저 평범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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