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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ke Sep 19. 2024

시간을 달리는 자전거

2화 : 여기서부터는 안양구입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이사 온 후 적응하느라 바빠 만나지 못했던 그와의 약속이었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자랑스럽게 새로 산 자전거 이야기를 꺼냈다.

“이거 봐, 형광색 로드 자전거야. 멋지지 않아?”

친구는 자전거를 유심히 보더니 피식 웃으며 물었다.

“기어 변경하는 법은 알아?”

순간 당황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아직 잘 모르겠어.”

친구는 고개를 흔들며 자전거의 어떤 상황에서 기어를 올리거나 내려야 하는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제야 제대로 자전거를 탈 준비가 된 기분이었다.

간단히 대화를 마친 후, 친구와 헤어졌다. 해가 지려는 오후, 그대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서울과 연결된 하천 옆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하천을 따라 나 있는 길은 한적했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끔씩 페달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무슨 하천이지?’

무심결에 하천을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햇빛이 물 위에서 반사되며 반짝이는 모습에 정신이 팔렸다. 마치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늘은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고, 나는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기어를 조정해 속도를 높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친구의 조언을 떠올리며, 오른쪽 레버를 돌렸다. 자전거는 한층 부드럽게 속도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강하게 불어왔다. 기어를 바꾼 덕분에 점점 속도가 붙었고, 나는 하천을 따라 내려갔다.

길 한쪽에 표지판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안양구입니다.”

그 순간, 주변의 풍경이 일렁이며 흐려졌다. 자전거의 속도는 계속 빨라졌고, 갑자기 하늘이 붉은빛에서 푸른빛으로 변해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흘러버린 듯했다.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있었지만, 옆에는 누군가가 함께 달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디서 본듯한 여자였다. 우리는 같은 길을 나란히 자전거를 타며 달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혼자였던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하늘빛이 예쁜 이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여보, 이 길 정말 예쁘지 않아?"

그녀가 미소 지으며 나에게 말을 했고,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바람이 다시 불어오고, 우리는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내 기분은 행복한 듯했다. 지금까지 느꼈던 어떤 감정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 다시 주변 모든 것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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