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박유하
뿌리와 이파리
2018년 6월
박유하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투쟁의 기억>이 (이하 <원저>) 위안부 할머니(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2014년 6월 피소된다. 저자는 소송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펼친 반박논리를 <제국의 위안부-지식인을 말한다>로, 소송과정을 <제국의 위안부-1460일의 기록>(이하 <본서>)으로 정리해 2018년 6월 발간한다.
피해자들은 저자가 ‘허위사실’로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였으므로 (1) <원저> 출판을 금지하거나 해당 표현을 삭제하고, (2) 훼손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며, (3)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요구한다. 2020년 6월 현재, 민사소송(1/2)에서는 출판금지 가처분이 인용되어 일부 표현을 삭제한 삭제판이 출간된 상태이고, 피해 보상금은 각 1천만 원으로 결정되었으며, 저자는 각각에 대해 상급심에 항소한다. 형사소송(3)은 1심에서 무죄로 판결했으나 2심에서 벌금 1천만 원 형이 선고되었으며, 저자가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여 계류 중이다.
저자는 이러한 내용을 정리한 <본서>를 피소 후 4년이 지난 상태에서 출간했지만, 출간하고 2년이 더 지났는데도 대법원 선고는 아직 내려지지 않았고, 상급심에 항소한 민사소송 역시 중단된 상태이다.
소송이란 법률적인 행위이기는 하지만 <원저>의 내용이 주요쟁점인 만큼 반박이나 대응 논리는 오롯이 저자의 몫이었다. <본서>는 저자가 소송과정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반박과 대응논리를 묶은 것으로, 문제 삼은 내용이 “사실인가 허위인가, 사실적시인가 의견표명인가”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여기서는 이 부분 외에도 이 표현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출판물 일부 표현 삭제를 요구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아울러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본서>와 함께 저자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각종 소송 관련 자료를 참고했다.
<원저>가 소송의 대상이 된 만큼 <원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학술서와 대중서가 일반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같을 수 없고, 역사서냐 문학서냐에 따라 허용되는 해석의 폭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저>는 학술적인 내용을 담기는 했지만 저자 스스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대중에게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을 알리기 위해 저술하였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상정한 대중서라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학계’를 독자로 하는 학술서보다는 사회적인 파장이 클 수 있겠다.
<원저>가 문학서가 아닌 건 분명해 보이는데, 과연 역사서로 분류할 수 있는지 애매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를 둘러싼 사회현상과 담론에 대해 고찰한 메타역사서’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저자가 <본서>에서 인용한 역사학자 헤이든 화이트는 자신의 저서 ‘메타역사(Meta-history)’에서 “역사는 언어로 시대와 사건의 상을 전달하는 만큼 본질적으로 ‘수사적(rhetorical)’이고 ‘시적(poetic)’이며, 따라서 역사가가 역사적 사실을 전할 때 메시지나 이데올로기가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역사’라는 것 자체가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하지만 결국 해석의 학문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역사’와 ‘메타역사’를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옥스퍼드 사전은 메타역사를 ‘역사철학(the study of the philosophy of history)’ 또는 ‘역사서술방식(study of the structure of historical narrative)’으로 정의한다. 이는 ‘역사’에 대한 서술 중 ‘해석’에 방점을 둔 것이 아닌가 한다. 저자 스스로도 ‘위안부 역사를 마주하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할 생각으로 저술했다고 밝히고 있으니 ‘메타역사’는 ‘역사해석’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결국 <원저>는 ‘역사에 대한 해석’이니 ‘사실적시’보다는 ‘의견표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법하다. 민사1심 및 형사2심 재판부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받아들였다면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기 때문에 해당 표현을 삭제하고, 손해를 배상하고, 범죄에 상응한 벌금을 선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저자가 항소/상고 한 상태이니 아직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가. 민사소송
<원저>의 표현 중 109곳을 문제 삼아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4개월 후 이를 53곳으로 변경하고, “허위사실을 전파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당초 소송 사유를 “왜곡해 표현했다, 상반되는 주장을 했다, 진실한 사실이 아니다”고 변경한다. 아울러 ‘출판금지’ 요청을 ‘문제표현 삭제 후 출판’하는 것으로 변경한다. 재판부는 이 중 34곳에 대한 삭제요청을 인용한다.
당초 삭제요청한 표현은 전체 109곳이었으나 가처분 변경신청 과정에서 69곳을 삭제하고 13곳을 새로 추가해 최종 53곳이 된다. 제외한 곳은 강제연행에 대해 언급했거나, 위안부 피해자와 직접 관련이 없거나, 근거가 확실하거나, 위안부를 오히려 차별의 대상으로 표현했거나, 정대협 운동방식을 비판한 내용이었다. 분명한 근거 없이 졸속으로 소송이 제기되었다 증명이 아닐 수 없다.
가처분 변경신청서에서 “진실한 사실이 아니다”라고 표현한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결국 “허위사실을 적시한 게 아니라 사실에 대한 의견표명”이라는 걸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피해자 스스로 소송의 논리를 허물었는데도 재판부는 문제표현 중 일부에 대한 삭제요청을 인용한다. 저자로서는 패소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해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영역에 해당하고, 저술 동기는 피해자들을 직접 비방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일 양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나름의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법적인 국가책임이나 청구권협정에 대한 서술은 구체적 사실의 적시라기보다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저자의 단순한 의견표명으로서, 헌법상 보장되는 학문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있다. 따라서 법원이 사전적으로 그 표현을 금지하기 보다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 등을 통해 시민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건전하게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은 이러한 해결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히 성숙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원저>의 저술의도를 제대로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견해가 ‘출판금지 가처분 일부 인용’과 어떻게 한 결정문 안에 존재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손해배상 소송과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은 서로 연관된 건이어서 저자 측에서 병합심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별개로 재판이 속행되었다. 저자가 판결에 불복해 상급심에 항소하였으며, 형사소송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심리를 보류한 상태이다.
나. 형사소송
명예훼손은 그 출발이 “사실적시냐, 허위사실이냐”, “단순 명예훼손이냐, 출판물에 의한 것이냐”에 따라 처벌 수위가 크게 다르다. 저자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원저> 때문일 것이니 당연히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형법 309조)에 해당한다. 그러나 검사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단순 명예훼손’(형법 307조)으로 기소한다. 이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도 ‘비방목적’이 없으면 ‘단순 명예훼손’으로 처벌한다는 대법원 판례(1998년)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원저>의 표현을 ‘허위사실’로 인정해 형사1심 및 형사2심에서 모두 이에 해당하는 형량인 ‘징역 3년’을 구형한다.
형사1심 재판부는 “검사가 ‘진술이 …이므로 그 본질이 …이었다’라고 추론하는 것을 볼 때 검사의 주장은 ‘사실적시’가 아닌 ‘의견표명’을 문제 삼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저자가 서술한 내용이 허위가 아니고, 설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을 적시했더라도 이는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위법이 아니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허위가 아닐 뿐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저술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형사2심 재판부는 문제의 표현 35곳 중 24곳은 ‘의견표명’으로 판단한다. ‘사실적시’로 판단한 것은 11곳에 지나지 않는다. ‘의견표명’이라는 것은 ‘허위사실’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 재판부는 문제표현 대다수를 ‘의견표명’으로 판단하고도 전체적으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1천만 원 벌금형’을 선고한다. ‘사실적시’ 판단을 위해서는 35곳의 표현 하나하나를 살폈으면서도 형량의 결정적 요소인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뭉뚱그려 판단한다.
“많은 조선인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했고, 애국적으로 일본군에 협력하고 함께 전쟁을 수행했으며, 일본국과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하거나 강제연행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독자들이 받아들이도록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원저>에서 “‘강요된 자발성’에 의해 위안부가 되었고, 당시 실정법에 의하면 ‘강제연행’이 아닐 수 있으나 이는 제국에 ‘구조적인 책임’이 있다”고 누누이 서술한다. 결코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다고 서술하지 않으며, ‘제국’이라는 ‘구조적 강제’가 위안부를 실질적으로 연행했다고 일관되게 서술한다. 저자가 그렇게 서술하고, 그렇게 서술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하고, (나 또한 그렇게 읽은 것으로 미루어) 그것이 객관적 사실로 보이는데,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울러 독자의 오독 책임을 저자에게 묻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해자들이 가처분 변경 신청을 통해 스스로 ‘허위사실’이라는 표현을 철회했다. 그런데도 형사2심 재판부에서는 이를 ‘허위사실’로 판단하고 벌금형을 선고한 것이다. 물론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은 별개의 건이기는 하다.
‘명예훼손’을 형사처벌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며, 미국은 민사적인 방법으로 규율하고 있고, 독일은 명예훼손을 일으킨 표현이 진실임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허위인 경우에 한정해서 형사처벌하고 있다.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형사처벌보다는 손해배상(민사적 제재)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많은 나라에서 명예훼손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여기지 않거나 최소한 비구금형으로 다루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명예훼손’을 형사처벌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일단 ‘명예훼손’으로 피소되면 최종적으로 불기소되거나 무죄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까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며, 이러한 위협이 강력한 위축효과를 발휘해 표현의 자유나 학문발달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지금 저자의 상황이 그렇다)
피해자들은 저자가 “진실한 사실이 아닌 것으로, 공공의 이익과 무관하게,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형사 고소할 뿐 아니라 출판금지 가처분과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검사의 기소내용과 형사1심과 형사2심에서 인용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명예훼손’은 (1)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지, (2)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인지, (3) 명예의 주체를 특정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피고발인의 행위가 이에 해당하더라도 그것이 ‘가치판단’ 또는 ‘의견표명’에 해당하거나 공공의 이익에 합하는 등의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된다(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
형사1심과 형사2심에서 이 기준 중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으며, 명예의 주체를 특정할 수 있다”는 데 판단을 같이 한다. 그러나 형사1심은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지 않는다고 판단한 반면, 형사2심은 저자가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저자의 고의를 인정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건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데도 검사가 ‘단순 명예훼손’으로 기소한 것은 저자에게 ‘비방목적(고의)’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형사2심에서는 저자의 고의를 인정하고 있다. 물론 재판부에서 검사가 구형한 것보다 더 엄격한 법률을 적용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다만, 판결문에서 저자의 죄질이 특히 나쁘다고 판단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상적인 판결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위법성 조각과 관련해서는 아래와 같이 상반되게 판단한다.
형사1심 재판부는 “(1) 표현 내용을 전체적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취지가 불분명한 일부 내용만 떼 내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 (2) 표현 내용이 ‘사실적시’가 아닌 ‘의견표명’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도 비판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로 이를 ‘명예훼손’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3) ‘사실적시’로 보이는 경우라도 그 표현의 앞뒤 문맥과 그 표현이 이루어진 당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그 표현이 비유적이거나 상상적이고, 일반적으로 핵심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독자에 따라 달리 볼 여지가 있는 경우라면 그 표현은 ‘사실적시’가 아니고 ‘의견표명’이다”라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한다.
형사2심 재판부는 본 표현이 ‘의견표명’이 아닌 ‘허위사실적시’로 판단한 후 “(1)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적시한 사실이 허위인 점과, 그 사실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것을 (저자가) 인식하고 있으면 성립한다, (2) 그 표현이 허위인 것을 인식하였는지 여부는 타인이 이를 알기 어려우므로 사실의 출처와 인지 경위를 토대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및 그로 말미암아 예상되는 파급효과 등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한다.
판례(判例)란 법원이 어떠한 법적 사안에 대한 해석을 내린 것으로, 판결로서의 선례를 뜻한다. 특히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와 같이 종국적 판단을 내리는 사법기관에서 동일한 법해석이 반복되어 판례를 형성하게 되면 ‘사실상의 강제력’이 발생한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법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것처럼 같은 사안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있으니, 법을 아는 일은 참 멀고도 험하다.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문에서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고 있다.
“출판물 발행금지는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억제에 해당하므로 원칙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되지만, 피해자에게 중대하고 현저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학문 연구는 기존 사상이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을 가함으로써 이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노력이므로, 사회에서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존의 사상이나 가치체계와 상반되거나 저촉된다 해도 용인해야 한다.”
“개인이나 단체의 명예보호라는 법익과 학문의 자유 보장이라는 법익이 충돌할 경우, 학문의 자유로 얻어지는 가치와 명예보호로 얻어지는 가치를 비교해 규제의 폭과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공적관심사가 된 역사적 사실에 관한 표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명예 못지않게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 또는 표현의 자유 역시 보호해야 한다. 또한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에도 한계가 있어 진실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벌과는 별개로 ‘출판물 표현삭제’ 결정은 평생 보고서 쓰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살아온 내게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보고서라는 것이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특정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명예훼손’을 이유로 보고서 표현 일부에 대해 삭제 결정을 받은 경우도 아직 보지 못했다.
<원저>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서이므로 이런 보고서보다는 사회적 파장이 클 수 있다. 그렇기는 해도 재판부가 인용한 대법원 판례와 같이 “학문 연구는 기존의 사상이나 가치체계와 상반되거나 저촉된다 해도 용인해야 한다.” 나는 <원저>의 표현에서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를 입히고, 명예보호라는 가치를 훼손했다”는 부분을 찾지 못했다. 물론 피해자가 불편하게 여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위와 같은 판례를 스스로 인용했음에도 재판부가 피해자들이 요청한 표현의 ‘일부삭제’를 인용했다는 점이다. 누군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출판물에 이의를 제기했다면, 그 결론은 출판금지이거나 출판허용 둘 중 하나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판물 한 문단 한 단어를 떼 내어 이를 평가하고 비판하고 재단한다면 세상 어떤 저자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작가가 이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조여 온다. 나는 출판금지보다 ‘일부삭제’가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더 압박할 것으로 생각한다.
소송을 제기한 위안부 할머니들 중 누군가 <원저>를 읽고 모욕을 느껴 분개하셨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 같은 마음으로 위안부 할머니들께 알려드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분노를 소송으로 이어가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청했을 수도 있고, 주변에 누군가가 먼저 소송을 제안했을 수도 있다. 물론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생각해서 제소하지 않았으면 좋았기는 했겠다. 그렇다고 위안부 할머니 스스로가 되었든 주변에서 제안을 한 것이든 제소한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소송을 제기한 할머니들은 모두 ‘나눔의 집’에 거주하셨고, 그곳 관계자가 할머니들이 고령으로 책을 읽을 수 없어 일부분을 발췌해 반복해서 읽어드렸다고 발언한 바 있다.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서에는 출판금지 외에 저자가 피해자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접근금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저자가 피소되기 전에 할머니들을 만나고 지원단체의 운동방식을 비판한 점을 감안한다면, 소송을 제기한 데는 지원단체의 의도가 들어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지원단체 의도에 맞추어 ‘왜곡된 책읽기’를 했다고 추정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일부 피해자들은 자신이 고소인에 들어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원저>와 관련한 모든 소송은 피해 당사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지원단체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으며, 결국 이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원단체의 운동방식에 비판적인 저자를 제재하기 위한 수단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겠다.
가. 피해자의 반론 기회 보장
한국사를 전공한 ‘젊은 학자들’이 <원저>를 비평한 집담회 기록을 읽으면서 백승덕의 발언에 눈길이 끌렸다.
“학자들은 학술서가 학문의 장에서 논쟁이 되어야지 법정으로 가면 안 된다는 원칙론을 내놓고 있어요. 그런데 학자의 대중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나 역사성이 규정되는 사람이 거기에 대해 반론을 할 수 없을 경우에 이러한 원칙론은 문제가 됩니다. 어떠한 주장에 대해 되물을 수 있는 구조에서나 민주적인 것이지요. 사실 이 책은 대중서로 나온 건데요. 대중들을 상대로 나온 이 책에 대해 명예훼손 고발은 결코 안 되는 것일까요?”
나는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소송에 반대한다. 표현은 표현의 장에서, 학문은 학문의 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데 이의가 없다. 그런데 누군가 출판물로 인해 명예가 훼손된 것으로 느끼는데도 자신이 그 논의에 장에 설 수 없는 상태라면 과연 그것이 민주적인 것일까? 그들에게 뭔가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그런 피해를 구제할 방법으로 소송을 선택하는 걸 동의하는 게 아니다. 나로서도 처음 부딪치는 질문이라 답을 찾기 어렵지만,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면에 그런 허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모두가 인식하고, 함께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예술적 서사 차용
저자는 <원저> 몇 곳에서 예술적 서사를 차용하고 있다. 1965년 정창화 감독의 영화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를 인용하면서 1990년대의 위안부에 대한 기억이 1960년대와 같지 않을 수 있음을, 1940년에 징집되어 중국 북부지방에서 병사로서 전쟁을 경험했던 다무라 다이지로의 소설 <춘부전>에서 위안부들이 본인 희망에 따라 이동할 수 있었음을, 같은 작가의 소설 <메뚜기>에서 ‘위안부’가 국가에 의해 윤간이 허용된 존재였으며 일본군이 위안부를 관리했을 가능성을 살핀다.
저자가 <원저>를 메타역사서로 규정한 만큼, 역사해석을 위한 이러한 차용은 그에 걸맞은 시도로 보인다. 얼마 전에 흥미 있게 읽었던 송은영 교수의 <서울 탄생기>는 작가 16인의 소설 110편에서 서울의 ‘도시형성사(都市形成史)’를 그려내고 있는데, 그 또한 일종의 메타역사서로 분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원저>처럼 논쟁으로 비화될 휘발성 높은 주제를 다루는 경우라면 이런 해석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위험부담을 무릅써야 하겠지만. 아무튼 앞으로 이런 서술방식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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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올린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투쟁의 기억>, <제국의 위안부-지식인을 말한다>에 이은 세 번째 서평입니다. 이달 안으로 이 저서들의 출발점이었던 <화해를 위하여>를 마지막으로 길었던 서평 작업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매번 짧게 쓰려고 애쓰고, 써놓고 나서도 여러 번 덜어내고 줄였는데도 글이 이렇게 깁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서평 전체를 읽으신 것일 테니 그 수고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