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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14. 2024

그리스도를 본받아

허락하신 것을 포기하는 게 영적 군사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면

토마스 아 켐피스

유재덕 옮김

브니엘

2018년 8월 16일     


제목만으로도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다. 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고, 여러 번 읽으려고도 했지만 끝까지 제대로 읽은 일은 없었고, 그래서 마음속에 늘 빚으로 남아 있는 책이었다. 얼마 전에 그동안 못 보던 번역본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겠다 싶어 다시 읽기에 도전했다. 몇 장 읽기도 전에 왜 끝까지 읽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시 마음의 빚으로 남겨 놓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읽고 빚에서 놓여나기로 했다.     


15세기에 출간된 책이라니 새로울 게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기독교 성인들이 앞다투어 칭송한 책인데도 별다른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수없이 들은 내용일 뿐 아니라 수없이 전한 내용이기도 해서 그럴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고전으로서 빛나는 글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예컨대,     


“성경이 너무 어렵다거나 수준이 낮다고 평가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계속 읽어 가면서 진리에 관한 사랑이 자신을 이끌어 가게 하라. 성경에 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면 겸손하고 단순하게 믿음을 가지고 읽어라. 성경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당대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던 모양이다. 진리에 관한 사랑이 자신을 이끌어가게 해야한다거나 겸손하고 단순하게 읽어야 할 것은 성경이 그런 방식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인데, 어째 내게는 읽으라면 그냥 읽지 웬 잔소리가 그렇게 많으냐는 교부들의 짜증으로 들려 슬며시 웃음이 난다.     


이렇게 빛나는 글이 많은 데도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것은 그 중 상당수가 자기개발서에 실릴만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신앙서적이라고 하는 책 대부분이 그렇고 심지어는 설교에서도 삼강오륜을 설파하는 목회자도 있더라만, 고전도 예외가 아니구나 싶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평안을 누리는 복을 받는다. 간혹 선한 의도와 관계 없이 남에게 오해받을 수 있지만 걱정하지 말라. 그 경험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과 교만으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이다. 우리 내면의 삶은 외적으로 비난 받을 때 가장 크게 성장한다. 다른 이들의 결점을 끈기 있게 감당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이들의 태도를 바로잡는 걸 그렇게 급하게 요구하면서 우리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어째서 그토록 느린가? 우리는 이웃과 자신을 같은 자로 재지도 않고 스스로 기대하는 만큼 관대하지도 않다. 요즘은 죄를 짓지 않고 맡은 바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조차 대단하게 생각한다. 평안을 누리고 싶다면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행동하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바로 지금 하라,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기회가 언제 죽음으로 막을 내리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개발서라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신앙을 빼고도 얼마든지 성립하는 이런 이야기를 과연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되라는 말이니 읽는 게 전혀 쓸데없지는 않겠다. 정작 불편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원리주의라고 할 정도로 지나친 절제와 금욕을 요구하는 흐름 때문이었다.     


‘준주성범(遵主聖範)’이라고도 알려진 이 책은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신앙 서적으로, 최초의 책은 1418년-1427년경에 라틴어로 간행되었으며 저자가 동참하였던 데보티오 모데르나 운동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위한 영성 서적이었다. 혹자는 워낙 오래된 책이고 원래는 수도사들을 교육하기 위한 용도였기 때문에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는 거리가 느껴질 수 있지만, 진리라는 건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오히려 더욱 살아서 빛을 내며 더욱 깊고 진한 향기를 낸다며 극찬하기도 한다.     


이 책이 이처럼 금욕을 강조하는 책이기만 하다면 문제랄 것까지는 없겠다. 하지만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분방한 현대인의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과 상충하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유익을 해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다른 사람의 위로는 필요 없다. 영적인 건강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 일 이외에는 달리 관심을 두지 말라.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피난민으로 살라. 이 땅의 일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으로 살라. 삶 가운데 그리스도만 들어오게 하고 어떤 것도 들어오지 말게 하라.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 그분은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하시니 그분 외에 다른 존재를 의지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외에 그 어떤 중요한 것도 귀한 것도 즐거운 것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피조물이 주는 위로는 에너지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해 아래 수고하는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것”이라는 전도서의 말씀을 떠올리는 구절이다. 수도사들의 영성 수련을 위한 책이었다고도 하고 하나님께 좀 더 집중하는 삶을 살라는 뜻으로 새기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같은 책에서 “가장 작은 선물에도 감사하라. 주시는 분을 생각하면 하찮은 선물이란 없고 어느 것도 볼품없는 게 없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가 좋은 것을 영원히 누리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난 후 “보기에 참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망가지기는 했어도 세상은 선하게 창조되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물이라면, 그것을 영원히 누리기를 바라실 것이라는 이와 같은 저자의 해석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다면 저자의 “네게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으며 부끄러움을 당할 것뿐이라. 영원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단한 것도, 소중한 것도, 존경할 것도, 정교한 것도, 가치를 지니는 것도 없다”는 또 다른 해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저자는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나를 위해 당하는 고난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면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는 마태복음의 말씀을 인용한다. 그러고 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지 못하면 영적 전쟁의 군사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못 박는다. 그렇다면 나는 ‘영적 전쟁의 군사 되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할 이유도 못 찾겠고. 저자가 말한 대로 “언제나 우리가 좋은 것을 영원히 누리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허락하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영적 군사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 루터교회는 매 주일 성찬을 베푼다. 성찬을 포함한 예전이 마지막까지 루터교회에 출석을 망설이게 만든 이유였지만, 지금은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 오히려 예배를 드리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일상이 되었다. 나름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그 의미를 온전히 깨닫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 내게 이 책의 마지막 한 파트를 온전히 성찬의 의미에 할애한 것은 아주 반가웠다.     


제목만으로도 은혜가 된다. 그중 몇몇은,     


- 얼마나 큰 경외심을 지니고서 그리스도를 받아야 하는가

-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선하심이 성찬에서 사람들에게 나타남

- 경건한 마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많은 선한 은사들이 주어짐

-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하여야 하는가

-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와 자기 포기

-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함

- 성찬 거르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함

-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하기 위하여 정성을 다해 준비함

- 경건한 심령은 성찬에서 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를 열망함

- 믿음의 큰 은혜는 겸손함과 자기 부인에 의해서 얻어짐

- 무엇이 필요한지를 그리스도께 밝히고 은혜를 구함     


성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으되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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