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정 서정환
시대의창
2011년 10월 5일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스라엘이라는 존재를 ‘성경 예언의 성취’로 여겼고 아랍국가에 둘러싸여 고군분투하는 민주국가이자 우리의 우방으로 생각했다. 십수 년을 팔레스타인 인접국에서 팔레스타인 직원들과 일하는 동안에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년 전에 일어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경제개발을 위해 협력이 필요했던 사우디와 시아파 벨트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이스라엘이 수교를 앞둔 상황”에서 존재감이 지워질까 염려한 팔레스타인이 판을 흔들기 위해 선택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렇기는 해도 당사자나 주변 국가 누구도 달가울 게 없는 상황이어서 몇 달 지나지 않아 마무리될 줄 알았지만, 국지전으로 그칠 줄 알았던 전쟁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확산일로를 걸었다. 하마스도 그렇고 이후 헤즈볼라나 후티 같은 비국가 행위자들이 전쟁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이제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쟁의 목적을 승리에 둔 게 아니라 상대를 절멸시키는데 두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즈음에 비로소 분쟁의 깊은 뿌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스라엘이라면 대체로 유대인과 ‘홀로코스트’를 떠올리지만, 그것을 피해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세우면서 시작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향과 이산의 고통을 일컫는 ‘나크바’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저자는 이스라엘 건국사가 팔레스타인 학살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무장세력이 건국을 전후해 곳곳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을 상대로 학살과 인종청소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곳이 자기들이 돌아갈 자기들의 땅이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내쫓고 유대국가를 세웠는데, 그 땅은 638년 칼리프 우마르 1세 이후 1917년 영국이 점령할 때까지 십자군 전쟁을 치르던 150년을 제외하고는 내내 이슬람 제국이었다. 그런데 이천 년 가까이 그곳을 떠나있던 사람들이 무슨 권리로 거기 돌아와 살겠다는 것이며, 그것도 그들과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폭력으로 내쫓겠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2천 년 전에 그곳에서 쫓겨난 이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 땅이 자기들 소유이고, 자기 땅에서 자기 나라를 세우는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인들을 포함한 대다수 유대인은 바빌론 시대나 로마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한 유대인과 혈통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을 ‘성경 예언의 성취’로 이해하고 있는 내 생각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유대인들은 중세시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 즉 기원후 6세기에 아라비아반도 남부 지역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힘야르제국의 힘야르(Himyarite)족과 8세기 중반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카자르제국의 카자르(Khazar)족의 후손이 대부분이다. 특히 카자르 후손이 유대인들은 현재 세계 유대인의 80% 이상을 구성하는 아쉬케나짐(Ashkenazim)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향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 즉 현대 유대인의 선조들이 바빌론 유수나 로마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 아더 케스틀러는 “카자르제국 영토인 코카서스 지방 주민들이 740년 유대교로 개종한 후 이동해 러시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폴란드, 벨라루스로 이동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언어학자인 폴 웩슬러는 “현대 이스라엘 히브리어는 이디시어의 파생어이며, 이디시어는 문장과 음운체계 상으로 슬라브어족에 속한다”면서 아더 케스틀러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더욱이 폴 웩슬러는 기원후 1세기에 로마가 점령하던 팔레스타인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대규모 이민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결국 이스라엘 건국 당시 다수를 차지하던 아쉬케나짐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과 무관한 사람들이 아닌가. 혹시 그랬기 때문에 처음에 영국이 추천한 우간다를 유대국가를 세울 후보지로 고려했던 건 아니었을까? 유대국가가 꼭 팔레스타인이어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동안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을 어떻게 차지한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그 땅에 사는 유대인들이 말하는 대로 그곳이 ‘정착촌(settlements)’이라면 설령 강제로 토지를 사들였다고 해도 최소한 대가는 치르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정착촌’이라는 이름에 강제성이 들어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유대인들이 막무가내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땅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서안지구 아무 곳에서나 막무가내로 컨테이너 같은 것을 가져다 놓고 자기 시작했다. 그러고 이스라엘 정부에 팔레스타인인에게서 신변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군대를 보내 경비를 서주고, 점점 사람들이 모여 진짜 집을 짓고 기반을 건설했다. 군사시설도 만들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인은 접근이 금지됐다.”
물론 대가를 치르겠다고 제안한 경우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거래를 하자는 게 아니라 먼저 땅을 몰수하고 몰수한 재산에 대해 보상금을 제시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2002년까지 확장한 동예루살렘 토지 중 34%는 공공 용도를 위해, 9%는 점령촌 확장을 위해 몰수했으며, 44%는 녹색지대로 두어 쓰지 못하게 했다. 13%만 팔레스타인인에게 남긴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몰수한 재산에 대해 500~3,000달러 보상금을 제시했으나 팔레스타인 소유주들은 오늘날까지도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 네타냐후 정부가 들어선 2009년 초부터는 동예루살렘에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집을 몰수해 철거하거나 유대인에게 불하했다.”
말하자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서 땅을 강탈한 것인데, 그 배후에는 이스라엘 군대가 있었다. 저자는 화를 참지 못한 청년이 돌을 던지는 시늉을 했을 뿐인데 감시카메라로 이를 지켜본 이스라엘군이 즉시 그 청년을 체포해가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정착촌 시장 주변 건물에는 어김없이 감시초소와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눈앞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이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사우디에서 사는 동안 ‘아랍의 대의(Arab Cause)’라는 말에 매우 익숙해졌다. 그리고 아랍의 대의로 돌봐야 할 대상은 대부분 팔레스타인을 가리켰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난민에게 구호 물품(Humanitarian Aid)을 보낸다는 기사는 한 달에도 몇 번씩 눈에 띄었다. 그래서 아랍에서도 난민에 대한 푸대접이 만만치 않다는 저자의 설명에 매우 놀랐다.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면 구조적이든 결과가 그렇다면 아랍의 대의를 주장하는 아랍국가들의 속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2004년 10월 사우디는 귀화법을 제정해 사우디에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 100만 명에게 시민권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이 법은 아랍연맹 지침에 따라 50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은 배제했다. 아랍연맹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아랍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요르단을 제외한 어떤 아랍국가도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는다. 1990년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당시 PLO가 이라크와 동맹을 맺었다는 이유로 쿠웨이트와 아랍왕국은 팔레스타인인 40만 명 이상을 일제히 추방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팔레스타인이 겪은 고난의 역사에서 출발해 현재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팔레스타인의 현재 상황보다는 고난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읽었는데, 그것은 현재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중동지역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싸움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 주먹을 날리는 것으로 싸움이 시작되지만 일단 주먹질이 오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이전투구가 되어 잘잘못을 가리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하물며 주먹질 오가는 싸움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어야 하는 전쟁이라면 피해자가 언제까지 피해자의 자리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작년 10월 일어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하마스를 가해자로 여기고 그들의 행위를 비난한다. 그런데 하마스를 가해자로 여기는 것이 합리적인가?
그럴 때는 한 발 떨어져서 상황이 시작된 지점을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새롭게 팔레스타인을 바라보게 되고 나서 현재의 복잡다단한 상황이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일컫는 ‘니크바’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자가 열거한 ‘니크바’ 사례 중 몇 개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내 소감을 갈음하고자 한다.
“1948년 4월 9일 메나헴 베긴이 이끄는 무장단체인 이르군과 이츠하크 샤미르가 이끄는 스턴갱이 서예루살렘에 인접한 디르야신을 공격해 245명을 학살했다. 5월 22일 밤, 이스라엘 북부 탄투라 마을에 이스라엘 육군 알렉산드로니 여단 소속 군인들이 들이닥쳐 13~30세 사이 남자 200여 명을 해안으로 몰아놓고 모조리 총살했다.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인종청소와 1948년 1차 중동전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전체 마을의 50%가 넘는 531개 마을과 도시를 완전히 파괴했다. 그리고 마침내 팔레스타인 영토의 78%를 점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