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저널리즘 뉴스 같이 읽기 - 3
2020년 9월 11일|사회
‘한국을 취소한다(Cancel Korea).’ 필리핀에서 이런 해시태그를 단 온라인 게시물이 확산되고 있다. 동영상 소셜 미디어 틱톡의 필리핀인 인플루언서가 제국주의 일본의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문신을 보여 주는 영상을 업로드한 후 “키가 작다”, “교육받지 못했다”는 등의 인종 차별적 비난을 받자 필리핀 네티즌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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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는 즉각 영상을 삭제하고 “미국의 가수에게 영감 받은 것인데 기분이 상했다면 죄송하다”, “이 문신을 다른 문신으로 덮겠다”는 내용의 새로운 게시물을 올렸다.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용서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일부 한국 네티즌들은 필리핀인에 대해 “교육받지 못했다”, “키가 작다”, “못생겼다”, “가난하다”는 등의 인종 차별적 비난을 이어 갔다. 필리핀 네티즌들은 #cancelkorea #apologizekorea 등의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리면서 한국에서의 인종 차별적 경험 등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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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태 성공회대 교수는 이런 현상을 ‘한국형 인종주의’로 정의한다. 백인을 정점에, 흑인을 최하위로 두는 서양의 인종주의를 학습해 우리 버전으로 만들면서 우리는 상위 어디쯤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인 차별 역사, 욱일기 문양에는 분노하면서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인종의 위계질서라는 틀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MY COMMENT]
기사를 읽고 마음이 복잡하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 어떤 점이 문제라고 바로 정확히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는 나 자신도 형편없는 사람 같다.
일본의 모든 것에 예민한 한국 정서,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닿는 날 선 비난, 뉘우치는 사람에게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용서, 차별받는(은) 건 분노하지만 차별하는(했던) 것은 외면하는 이중성. 모든 단어가 아프다.
1) 욱일기 논란
이번 논란의 시작이었던 욱일기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욱일(旭日)은 '아침에 떠오르는 밝은 해'를 뜻하는 단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국기인 일장기 대신 태양 주위로 퍼져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욱일기를 사용했다. 지금도 일본 자위대가 사용하고 있으며, 침략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극우파 혹은 스포츠 경기 응원에 종종 사용되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니까 욱일기는 국가가 아니라 군대를 대표하는 깃발이다. 그리고 이것은 2차 세계대전을 발발한 일본의 군국주의와 침략 역사를 상징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즉 일본이 지난날 우리에게 가한 폭력과 억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인 것이다.
자, 그럼 이제 한국 여론이 왜 이렇게까지 욱일기에 예민한 것인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욱일기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은 사람이 구설수에 오르고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하는 일이 허다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상처'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에게는 일본에게 폭력을 당하고 억압받았던 과거가 있다. 그것은 기록되었고 각인되었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으며, 이 시절 전쟁과 폭력을 일삼은 대상이 과거 자신의 행적을 당당히 드러내던 상징물을 보게 되었을 때 분노하고 지적한다. 이번에도 분노와 지적의 한 사건이었을 뿐이다.
2) 쉬운 비난과 어려운 용서
당사자인 벨라 포치(Bella Poarch)는 자신의 행동이 논란거리가 되자 기존 영상을 삭제하고 새로운 영상을 올렸다.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쳤으며 용서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의 분노는 식지 않았다.
사람은 두 가지의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1) 화를 낸다. 상대가 바로 사과한다. 기분이 풀린다.
2) 화를 낸다. 상대가 바로 사과한다.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화를 낸다. 비난한다.
이번엔 후자의 분위기였다. 왜 그들은 벨라의 사과에도 화가 풀리지 않았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다. 그의 사과가 진실되어 보이지 않았나. 빠르고 경쾌한 사과로는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나. 그의 행동이 어떤 형태의 사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종류의 잘못이었나.
분노는 비난이 되었는데, 그건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벨라의 무지를 지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의 외모와 나라와 환경을 비웃었다. 비난은 쉬웠고 용서는 어려웠다.
어불성설이 아닌가. "우리가 겪는 차별과 탄압의 역사에 대한 저항을 앞세워 또 다른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지적은 받아 마땅하다.
3) 분노와 무지는 한 끗 차이
박경태 교수님께서 이 현상을 한 단어로 짚으셨다. '한국형 인종주의'.
"백인을 정점에, 흑인을 최하위로 두는 서양의 인종주의를 학습해 우리 버전으로 만들면서 우리는 상위 어디쯤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인 차별 역사, 욱일기 문양에는 분노하면서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인종의 위계질서라는 틀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벨라가 자신의 타투 모양이 욱일기를 연상시켜서 한국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듯', 벨라가 '동남아인이라서 모를 거'라고 말하는 것 또한 '몰라서'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모르는 것을 알게 된 이후의 행동이다. 내 행동이 누군가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서 비롯되었으며 또 다른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변해야 한다.
이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며 오기 부리지 말고, 지적하는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났냐고 속 좁게 굴지 말고, 가만히 그리고 차분히 내가 어떤 점에서 실수를 저질렀는지 돌아보고, 내가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란 걸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차별과 탄압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것은 기록되었고 각인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아픈 과거에 무지한 누군가 앞에서 우리의 각인은 자주 낙인이 되는 과정을 밟는다. '또 다른 차별의 정당화'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상처'라고 부르고 싶다.
꼭 읽어 봤으면 하는 기사 두 개를 첨부한다.
1 - 결국 도려내진 샘 오취리…참담하고 부끄러웠던 한 달 /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20년 9월 10일
2 - 가난한 나라서 왔다고 홀대… 백인보다 같은 아시아인 더 차별 [한국형 외국인 혐오 보고서] /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 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 20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