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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Jan 28. 2022

엄마에게 받은 상처 소화될 수 있을까<모녀의 세계>

사실 모녀관계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고민과 주저함이 있었다. 엄마를 비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감이 올라왔고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엄마를 향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나 자신을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가까운 관계에서도 이 문제는 대화가 쉽지 않은 주제다. 다행히 이해심 깊은 사람이라면 약간의 경청을 기대할 수 있으나, 보통은 ‘배은망덕한 딸’ 소리 듣기가 쉽다. 엄마의 모든 말과 행동은 오직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된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낸다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누군가 엄마로 살고 있는 이에게 공격과 비난의 목소리처럼 들리면 어쩌나 두렵기도 했다. 그럼에도 글을 쓰게 된 것은 내가 겪고 있는 이 감정을 정리해보고 싶었고, 혹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확인을 어딘가 에서라도 받고 싶었다.


글로 써보고 정리를 해봐도 나 혼자서는 객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책과 분노를 오가는 시간들을 보내던 중, 김지윤 소장의 책 <모녀의 세계>를 만났다. 읽었다고 하기보다는 만났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이 책은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단숨에 읽어 나갔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안도했고, 안심할 수 있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있었다. 이런 주제가 책으로 나올 만큼 실은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아파하고 있었다.

작가는 모녀관계가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꼽고 있다.


 첫째 모녀관계가 갖는 정서적 밀착이 관계 속에서 문제를 인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둘째 문제가 있다고 느낄지라도 엄마의 사랑과 헌신이라는 아름다움 속에 문제적 부분은 교묘히 감춰진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부추기는 모녀관계의 각별함에도 원인이 있다.


“딸은 엄마에게 ‘내 맘 같은 존재’이기에 필요하다. 엄마는 영원한 자기편, 자기의 심리적인 분신이자 지지자,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할 사람이자 쉼터다. 그래서 엄마는 딸을 원하고 필요로 한다.”


작가는 모녀관계에도 조율이 필요하다고 했다. 먼저,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감을 조율하고, 엄마의 간섭과 요구에 주체적이지 못했던 행동과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봐야 하며 엄마가 쏟아 놓는 감정에 말려드는 것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모든 관계에도 기술이 필요하듯, 모녀관계에도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탐색과정을 통해 문제를 인지해야만 건강한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내가 모녀관계의 문제를 인식해가며 가장 많이 느낀 감정 역시 자책감이었다. 조금씩 느꼈던 불편한 감정들을 표현하지 못한 나, 선을 넘어오는 엄마를 밀어내지 못한 나, 엄마와의 안전거리를 두지 못한 나, 엄마의 감정에 말려든 나. 모두가 다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이런 내게 작가는 다시 한번 위안의 말을 건넨다.


“우리는 표현하지 않는 민족이다. 체면을 차려야 하는 양반 문화의 영향으로 많은 감정을 고이 접어 넣고 살았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중략. 이런 놀라운 유산을 물려받은 환경에서 자신의 화나 슬픔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소화할 수 있다면 도리어 그런 사람이 희소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너무 자신을 탓하지는 말자. 안 그래도 말 못 하는 자신의 가슴에 스스로 비수를 꽂을 필요는 없으니까.”


복잡하게 엉켜버린 이 문제가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화해와 해결은 어려울 듯싶다. 오랫동안 고착화된 문제에서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작가는 ‘상처는 소화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표현을 썼다. 혼자만의 비밀이나 감추어 놓은 이야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받는 이야기가 될 때, 아픈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내 놓아 위로를 받을 때, 우리는 상처를 소화하고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의 주체가 엄마가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한번 더 환기했다. 꽉 막힌 내 마음의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해줄 빠른 해결책은 없다. 문제를 스스로 곱씹으며, 조금씩 천천히 소화시켜 나가 볼 뿐이다. 혹시나 이 긴 시간이 내게 어떤 성장이나 성숙의 시간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소망을 품어본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상처를 준 엄마도, 지극한 사랑을 준 엄마도 같은 사람이었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엄마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엄마가 주었던 그 사랑과 희생까지 잊어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부탁했다.


모녀 관계. 참 복합적이고, 복잡하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고 손을 놓고 싶어도 놓아지지가 않는다. 작가의 말이 맞다. 엄마가 나를 힘들게만 했을까. 나를 극진히 사랑해준 순간들도 있었다. 엄마로 인해 안도하고, 안심하고 엄마의 도움을 받았던 순간들도 많았다.

엄마가 나를 감정 쓰레기통처럼 여기고, 나를 조종하려고 하고, 엄마의 감정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해도 엄마가 나를 사랑해 주었던 순간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두 가지 면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엄마를 향한 가장 온당한 태도가 될 것이다.


과연 나의 상처도 소화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글을 들여다보고 공감을 표해주는 어떤 이들과 함께하며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 모두가 살아가는 가운데 일어나는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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