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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늘 Dec 24. 2020

애 낳고도 섹스가 하고 싶냐고?

<마더 퍼커 :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  21 

그렇다. 나는 애 낳고도 섹스가 하고 싶다. 


대다수 유자녀 기혼 여성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하룻밤에 몇 번이나 관계를 했는지 떠든 것도 아닌데 "스태미나가 대단하다"라거나, 한 침대 쓰는 남자와 잠자리까지 하고 싶다니 "아직도 뜨겁네"라는 식이었다. 


이상했다. 연애할 때는 기승전 섹스로 꼬시더니 결혼 후엔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냐"라고 말하는 남성들을 볼 때와는 또 다르게, 불편한 느낌. 그들이 배우자와 섹스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그래도 남편인데 자꾸 거절만 하는 게 미안해서, 친정 식구들을 잘 챙기는 게 고마워서, 정관수술을 하고 와서...


먹고, 자고, 섹스하는 건 자연스러운 욕구 아니었어? 너희들은 섹스가 즐겁지 않은 거야? 물으면 짐짓 어른의 말투로 "연애 때나 설레고 좋지", "여자는 남자처럼 성욕이 많지 않잖아"라고 했다. 잘 먹고, 잘 자면 됐지 뭘 또 섹스까지 하냐고. 


말도 안 돼. 우리가 무슨 새야? 생식을 위해서만 자웅이 가깝게? 




잘 먹고 잘 자면서 섹스도 잘하는 부부들  

나와 A는 엄마들 사이에서 '누가 더 힘든가?'로 100분 토론이 열리는 쌍둥이 엄마 대 연년생 엄마다. 나는 연애 10년 만에 결혼해 5년 만에 쌍둥이 엄마가 됐고, A는 연애 반년 만에 결혼해 3년 만에 연년생 엄마가 되었다. 나는 애 둘을 낳고도 여전히 신혼 같은 이 부부가 신기했는데, A는 연애와 신혼이 짧아서 그렇다고 했다. 흠, 정말 그런가? 우리 부부도 연애와 신혼이 짧았으면, 쌍둥이를 키우면서도 여전히 신혼 같을까?  


나와 나이 차이라고 해봐야 세네 살밖에 나지 않는데, 두 사람은 부부 관계가 왕성했다. 남의 집 부부 관계 현황을 알게 된 A의 질문 때문이었다. "언니는 애 낳고 얼마나 지나서 생리했어요?" 글쎄, 나는 수유 끊자마자 바로 한 것 같은데...라고 말하다 질문의 진짜 이유를 알아버렸다. "지금 둘째 낳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생리를 걱정하지? 걱정할 만한 이유가 있나 본데?" 그로부터 일주일 뒤, A가 환해진 얼굴로 말했다. "생리 시작했어요! 임신인 줄 알고 엄청 쫄았네." 


둘이 좋아 죽겠고, 아이도 예뻐 죽겠어하는 건 잘 알겠지만, 연년생으로 삼 남매는 좀 아니지 않아? 피임에 신경 쓰지 그래? 그때만 해도 이들은 아이를 한 명 더 낳을지 고민했는데, A가 복직을 결심하면서 열려 있던 가족계획은 정리됐다. 아이는 더 이상 갖지 않기로 했고, 그의 남편은 바로 정관수술에 들어갔다. 


그 또한 놀라웠다. 많은 남편들이 카더라로 들은 수술 통증과 만에 하나 부작용을 걱정하며 주저하는 정관수술 아니던가.   


한 지인은 아이를 더 원하지 않아 남편에게 정관수술을 권했는데, 막상 하고 보니 부부 관계를 하는 게 숙제라고 했다. 수술이 잘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적게는 열두 번에서 많게는 스무 번이 넘는 섹스를 한 뒤 검사를 받아야만 '안전성'이 확인된다고. 그건 마치 출근 도장을 찍어가며 평소엔 절대 안 먹을 메뉴까지 섭렵하는 스타벅스 프리퀀시 모으기보다 수십 배는 더 귀찮은 일 같았는데, A는 그렇지 않았다. "남편 공장 문 닫고 서비스업으로 전환했어요"라던 때가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안전 테스트까지 다 끝냈다고 했다. 하, 이 정열적인 커플...   


묘한 부러움이 확실한 패배감으로 이어진 건 영화 <82년생 김지영> 때문이었다. 부부가 같이 보면 싸우기 딱 좋은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부부가 나눈 대화는 '안 들은 귀 삽니다' 하고 싶을 정도로 닭살이었다. 남편이 "내가 공유보다 낫지 않아?"라고 묻자 A는 "당연하지"라고 했다던가. 


이 영화가 부부 싸움의 불씨가 된 건 7할이 공유 탓이었다. 그가 맡은 대현은 불이익이 생긴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육아 휴직을 고려할 정도로 아내의 경력 단절과 독박 육아를 걱정하는, 공감 능력 중급 이상의 남편이었다. 아내가 마음에 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모든 게 자신의 탓인 것 같아 툭하면 우는, 성찰하는 남성 말이다. 


나는 원작 소설과 달리 '남편 역시 딱하게' 바라보는 연출도 아쉬웠지만, 평범해서 더 공감이 가야 할 남편 역할을 왜 굳이 제일 잘 나가는 훈남 스타에게 맡겼는지 처음부터 의문이었다. 김지영의 전 직장 동료가 "넌 이렇게 맛이 가고 있는데 대현 씨는 왜 이렇게 때깔이 좋니?"라고 말하는 한 장면을 위해? 아무리 그래도 슬프고 아름다우신 도깨비까지 소화한 배우를? "남편이 저렇게 다정한데 여자가 배가 불렀네"라고 반응하는 어머니 세대를 볼 때면 그의 훤칠한 키와 처진 눈매와 다정한 말투가 원망스러웠다. 어머니, 제발 남편 얼굴 말고(어렵다는 건 잘 알지만요) 아내의 상황을 좀 보세요! 


어쨌거나 제삼자가 봤을 때, A의 남편이 '자뻑'인 건 아니었다. 그는 육아와 살림에 매우 성실한 남편이었다. 야근 후 새벽 2시에 들어와도 어린이집 도시락을 씻었고, 아내가 둘째와 자는 동안 출근길에 첫째를 등원시켰으며,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위해 금요일을 육아로 불태웠다. 아빠가 부엌에 있는 모습이 익숙한 첫째는 다른 남자애들보다 부엌놀이를 유난히 좋아했다. 자타공인 공유보다 괜찮은 이 집 남편이 간절하게 바란 한 가지는 아이들을 딴 방에서 재우는 것이었다.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을 따로 재우면 A도 아이들 방에서 자는 일이 많아질 거란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족 침대를 샀다. 


여기까지 듣고, 누군가는 본인들 말마따나 아직 신혼이며, 이 집 남편이 양성평등 의식은 물론이고 체력도 인간계가 아니니 열외로 두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 경우는 어떤가? 


쌍둥이 육아 선배이자 워킹맘인 B는 비글처럼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부 관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연애와 신혼 모두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부 사이가 뜨거운 비결을 물었더니 속 모르는 소리라고 했다. 자신은 분위기를 갖춰서 부부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남편은 시도 때도 없는 게 불만이라고. 그러면서 어느 주말 낮에 남편이 불쑥 안방에 들어와 분위기를 잡은 이야길 들려줬다. 거실의 아이들은 어쩌고? 500원짜리 <콩순이> VOD 결제를 해줬다면서 어깨를 으쓱하더라나. 


B는 식을 줄 모르는 남편의 스킨십 공세가 부담스럽다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건 정신적 교감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너무 부럽다나. 나는 그 말이 부모님이 사준 집 때문에 취득세 폭탄을 맞았다는 소리만큼이나 어이가 없었다. 지금 약 올리니? 


시작부터 섹스, 섹스했지만, 이건 단순히 섹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언젠가부터 서로의 손을 잡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나의 수면 의식은 남편의 손을 안대 삼아 눈 위에 올리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어쩌다 손이라도 부딪히면 "왜 이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것의 두 배가 아닌 제곱의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 쌍둥이 육아라고 하지만, 이건 정말이지 개미 손도 아쉬울 만큼 늘 손이 부족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우리는 언제나 그로기 상태였다. 직전까지 어린 인간들의 온기에 치인 덕에 서로의 온기는 갈급한 것이 아니었다. 금요일 밤이면 남편은 컴퓨터방에서 맥주를 마시며 미드를 봤고, 나는 침대에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남편의 손이 필요했던 수면 의식은 온열 안대가 대신했다. 




옥시토신도 충전이 되나요?

여성들은 몸만 아니라 마음에도 코르셋을 찬다. 아빠 말고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면서, 여자는 조신하고 또 조신해야 한다고 강조한 가정교육이 그 시작. 남성이 성욕을 제때 해소해야 당사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가 건강해진다며, 남성의 불필요한 성욕을 자극하지 않게 여성의 옷차림과 행동을 단속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20세기나 21세기나 큰 차이가 없다. 


방송의 주류인 남성들은 비혼이라도 자신의 번아웃 상태를 고백하며 "성욕조차 없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자신은 요즘 성욕이 있네 없네 말할 수 있는 비혼 여성은 거의 없으며, 성욕이 없다는 여성을 걱정스러워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다. 


정말 다들 여성은 남성보다 성욕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남성은 해소해야 하지만, 여성은 없는 대로 잘 사는 게 성욕이라고? 그래서 본인은 생각도 없고 즐거움도 모르겠지만, 시민이 납세의 의무를 다하듯 배우자로서 섹스의 의무를 다하는 걸까? 계속 내빼다가 남편이 바람이라도 나면 안 되니까? 아내가 임신했을 때 바람피우는 남자들이 많다거나 출산 과정을 지켜본 남편은 더 이상 아내를 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임신하면 뱃속의 아이만으로도 걱정할 게 태산인데, 여성은 왜 남편의 바람까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며 걱정해야 할까? 


나보다 다섯 살 많은 C는 그보다 다섯 살 많은 남자와 12년간 연애하고, 다섯 살 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여전히 부부 관계를 즐거워한다. 애 낳고도 여전히 섹스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밝히는 여자 겸 남편 바보가 됐다고 투덜대자 C가 말했다. "그 기쁨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건 아닐까? 일단 사정하면 느끼는 남자 패턴에 맞춰서 섹스를 하다 보면 여자는 진짜 오르가슴을 느끼기 힘들잖아.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안다면 그렇게 포기하고 살진 않을 것 같아." 그는 20년 가까이 섹스 한 남자와 요즘도 미지의 기쁨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기쁨, 너의 기쁨, 우리의 기쁨을 찾기 위해. 


C의 말을 듣고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섹스의 기쁨은 20대 연애 초반에나 느끼는 지나간 청춘의 한 조각이 아니니까. 식장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남자와 백 살까지 함께 살 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그의 체취가 좋고, 그의 온기가 좋으니까. 물론 육아의 기쁨에 섹스의 환희까지 더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없는 시간을 쪼개고, 바닥난 체력을 끌어올리고, 한때는 핵심기억이었으나 지금은 폐기 위기의 뜨거웠던 감정을 다시 찾아와야 하니까. 


언젠가 만난 정신과 전문의는 연애 호르몬 옥시토신을 설명하며 섹스리스 커플의 관계가 좋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알려진 것처럼 옥시토신은 2년 정도면 자연적인 분비가 멈추는데, 그때부터 옥시토신이 억제하던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의 분비가 늘어난다고 말이다. 그럼 옥시토신이 떨어진 커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비타민 D가 부족할 때처럼 주사라도 맞아야 할까? 다행히 방법은 있다. 바로 스킨십. 옥시토신은 스킨십을 통해 분비된다. 오래된 커플일수록 스킨십이 중요한 과학적 이유다. 


그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옥시토신이야! 


내가 옥시토신 충전을 위해 준비한 건, 다름 아닌 공포영화였다. 금요일 밤. 남편은 평소처럼 컴퓨터 방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나는 침대에서 요즘 무섭다고 소문난 공포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혼자서는 도저히 보기 힘든 한계점이 찾아왔을 때, 남편이 있는 방에 슬그머니 들어갔다.        


여보, 나 너무 무서워. 손 좀 잡아줄래? 

쓰담쓰담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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