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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팔로모짜렐라 Aug 29. 2021

남는 게 사진 인걸?

너와 나는 다르다


Biella


Biella


Orta San Giulio
Aieta
Pienza
Trentino
Monteriggioni



내 남편은 사진을 거의 안 찍는다. 나는 뭐든 찍기 바쁘다. 이탈리아의 풍경은 질릴 수가 없다. 매번 봐도 매번 새롭고, 매번 아름답다. 볼수록 매력적이다. 호주에서부터 같이 여행을 다니면 항상 사진 한두 장만 찍고 만다. 그래서 나는 "너는 왜 사진을 안 찍어? 남는 게 사진 아니야?"라고 물으면 남편은 한 마디 한다. "네가 찍잖아, 나는 그 시간에 사진이 못 담는 모든 것을 내 눈으로 담으며 즐기는 거지." 듣는데 짜증이 났다.

맞는 말이다. 사진은 일부밖에 담지를 못한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가 있다 한들, 그 장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향기, 온도까지 담지를 못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야, 그럼 네가 그렇게 즐길 시간에 나는 혼자 너를 위한 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거야?"라고 하니 남편은 "너는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서 즐기는 거고 나는 이런 식으로 즐기는 거지, 나한테서 사진은 한두 장이면 돼. 내가 여기에 왔고 이 장소가 이렇게 생겼다는 걸 보여주는 거. 사람들마다 다 즐기는 방식이 다른 거지. 너는 사진을 찍으면서 네가 그 순간을 맘껏 즐기는 거고, 나는 그렇지 못하기에 그냥 눈으로 담는 거지. 네가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그렇게 내 입 조동아리를 닫고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남편은 내 사진을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으며 나는 남편에게 내 사진을 찍어 달라고 수백 번 요구를 해도 남편은 한 번도 자신을 찍어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러니 나는 내 즐거움을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고 '너를 위한 사진을 찍어야 하느냐'라고 물어본 것도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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