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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슬 Feb 25. 2020

박문치와 시뮬라크르


박문치는 향후 조선반도 현대 음악의 미래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이다. 


과장하자면, 한국 현대음악의 꿈과 희망은 박문치 같은 아티스트가 얼마나 재능을 펼치고 발전할 수 있는 상업적 여건을 형성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본래 이 글은 '과장법 쾌락주의 리뷰' https://brunch.co.kr/magazine/exaggerated 에 담으려고 했는데 앞으로 순전히 개인적 감상이라는 틀에만 담기 힘든, 그러면서도 '한국', '현대', '대중', '문화'를 엮는 얘기를 해보려면 새로운 타이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새롭게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었다. 여러분께서는 서기슬씨의 '조선반도 현대 대중 문화' 매거진을 읽고 계십니다. 


볼수록 너무나 멋진 친구들.


한국의 현대 음악이 K-pop이라 불리며, 합숙형 사관학교식 혹은 학원형 사교육이라는 조선반도식 인재 양성 체계와 결합하여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동안, 한 편에서는 박문치 같은 인물이 자라고 있었다.


우선 우리는 '투자->상품'의 구조를 지닌 한국형 아이돌 양산 체계를 더 이상 평가절하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문제도 많지만, 과정이 어찌 되었든 그 양산 체계 안에서 재능있고 뛰어난 아티스트가 발굴된 것이 사실이기 떄문이다. BTS는 부정할 수 없는 세계적 문화 현상이다. 그리고 꼭 아티스트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고 해도, 상품화에 의한 결합과 해체를 겪었던 많은 아이돌 그룹도 K-pop이라는 이름에 지분을 갖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식 실용음악학원'은 다른 한 편에서 다양한 재능을 발굴하고 키우고 있었다. 그 한국식 실용음악학원은 몇몇 윗세대 아티스트들에게는 괜찮은 생계 유지 수단이 되었으며, 자라나는 새싹들에게는 조기 교육을 제공했다. 


이제 동아리 활동으로 밴드부 하다가 '인디'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대학가요제 같은 등용문은 없어졌다. 안 배우고 독학해서 '프로 지향'하는 아마추어 밴드를 PC통신에서 모집하여 메이저 데뷔를 꿈꾸는 스토리는 2020년대에 유효하지 않다. 


요즘 '인디'하는 젊은 친구들은 실용음악학원에서 기초를 배우고, 입시를 준비하고, 다시 각각 대학의 실용음악과에 진학하여 자신의 음악을 펼친다. 모든 친구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박문치는 그렇다. 


사교육과 고등교육의 콜라보레이션이 박문치를 키웠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홈레코딩'하여 EP랍시고,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듣기 어려운 연주와 녹음 퀄리티로 음반을 내며 '인디'에서 이름을 알리고자 했던 시대는 확실히 저문 것 같다. 지금은 원로급이 되었거나 조상님 즈음 되는 그 인디 뮤지션들의 첫 EP를 두고 퀄리티 운운하는 것은 마치 연구자들끼리 석사 논문을 건드는 것처럼 비매너인 일처럼 여겨지므로, 퀄리티가 어떻네 하는 표현은 빼야할 것 같다. 그 때에는 그 나름의 감성이 있었고, 그것이 최선이었으리라.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장비가 보급된 것뿐 아니라, 젊은 친구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홈 레코딩'이 불과 10여년 전과 전혀 다른 현실태가 되어버린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독자적인 색깔과, 프로듀싱의 창의성까지 발휘하는, 그리고 밈meme과 캐릭터의 연출을 아우르는 천재가 등장하여, 심지어 그것들을 직접 제작하여 세상에 내놓았으니, 그 이름이 바로 박문치이다. 


박문치가 누군지 몰랐던 분이라면, 이제 박문치를 만날 타이밍이다.

https://youtu.be/W50T9G-O7gU


위의 영상에서, 건반을 치며 그 와중에도 포인트 안무를 모두 소화하며 온 몸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는 여성분이 바로 박문치님이다. 


박문치의 음악은, 80년대에 태어나서 90년대에 소년기를 보낸 나같은 이들의 동년배 감성을 완벽하게 저격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는 96년생이다. 곡 '널 좋아하고 있어'는 90년대에 나온 곡보다 더욱 90년대스러운, 가사와 편곡의 디테일까지 집요하게 90년대 한국 가요 스타일을 모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걸 뉴트로(뉴-레트로)라거나 그런 유행성 키워드 같은 것으로 지칭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 강렬한 시뮬라크르는, 철학 교양 시간에나 배우던 '원본 없는 복제'의 완벽한 예시가 아닐까? 학부 시절에 박문치가 있었다면 시뮬라크르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에 훨씬 수월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 정도이다. 이게 바로 시뮬라크르다, 90년대를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은 20대 젊은이가 2020년대에 펼치는, 진짜 90년대 음악보다 더욱 90년대 음악 같은 음악. 


유튜브에서 접할 수 있는 많은 영상 중에서도 온스테이지의 위의 영상은, 연출까지 완벽한데, 여자 보컬인 Dala씨가 90년대에 생목으로 부르던 가수들은 낼 수 없는, 잘 트레이닝된 호흡과 발성을 감출 수 없다는 것만 빼면 역시나 시뮬라크르의 절정을 보여준다. 



자 그렇다면 박문치의 음악은 90년대를 재현했기 때문에 좋은 것인가? 독창적인 스타일이라서? 시뮬라크르라서? 그래서 가치있는 것인가? 그런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


첫째, 박문치는 음악을 잘 한다, 연주와 작편곡의 실력과 센스가 무척이나 뛰어나다. 둘째, 자유롭고 즐기고 갖고 노는, 그러면서도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보편적 감성을 갖고 있다. 박문치는 특이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흉내낸 것 같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더욱 독창적이었고, 매니악한 것 같았지만 아주 대중적 포용성을 지니고 있기에 좋은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d0CcFcBBMI

참고로 박문치의 연주자로서 역량은 위의 영상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건반 연주하며 리듬을 타고 있는 분이 물론 박문치님. (그 와중에 노래하는 민수님의 잘생긴 미모에 감탄하게 된다)



나는 아티스트를 두고 단지 현재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미래가 기대된다'는 수식을 붙이는 것이 종종 실례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마음 속으로 박문치! 박문치! 박문치! 를 외치게 되는 것은 그의 음악 세계는 이제 갓 시작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젊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의 얘기로 돌아와서, 박문치도 고등학교 시절 음악학원에서 미디를 배웠다고 한다. 사실 아이돌 양산체계 만큼이나, 실용음악학원-실용음악과의 교육 체계와 그 부작용도 그 껍질을 벗기고 문제점을 까보기 시작하면 곪은 부분이 한 둘이 아닐 것이나, 그럼에도 그 K스러움 안에서 천재들이 발굴된다는 점도 영 덮어둘 수는 없는 것 같다. 그 축에서 제 2, 제 3의 박문치가 계속 나오리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젊고 어린 친구들, 정말 음악 한다. 그들 중 다수가 다시, K-아이돌 콘서트의 세션 연주자가 되거나, 그들의 작편곡자가 되는 것이 또 이 K-culture 생태계이지만, 한 편으로는 그 와중에 스탠드-얼론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는 젊은 친구들이 이끌어 갈 K-인디음악의 다채로운 부흥을 기대해본다. 


직접 물어보지 않았으니 의중을 알기는 어렵겠지만, 당연히 박문치가 지금의 색깔에 영영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 90년대보다 90년대 같은 시뮬라크르를 만들어냈던 감각과 실력으로, 또 어떤 음악이 내놓을지 기대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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