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을 앞둔 중장년을 위한 영화 <인턴>
통계청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주된 일자리를 떠나는 평균 나이는 49.3세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속으로 일을 놓고 싶은 나이는 평균 73세라고 하죠. 이 20년이 넘는 차이 앞에서, 우리는 망설이게 됩니다.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젊은 친구들 틈에서 짐만 되는 건 아닐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작아지는 당신에게, 오늘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스펙보다 중요한 것은 인품이며,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임을 조용히 증명해 낸 70세 인턴의 이야기. 영화 <인턴 (The Intern)>입니다.
주인공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는 70세입니다. 40년간 한 회사에서 임원으로 일하며 성실히 살았지만, 은퇴와 사별 후 그에게 찾아온 건 무료함이었습니다. 그가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싶었던 건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갈 곳이 있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사회라는 거대한 시계 속에서 다시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는 아직 음악이 흐르고 있다고 믿는 벤. 어쩌면 진정한 은퇴란 일을 놓는 순간이 아니라, 세상과의 연결 고리를 스스로 놓아버리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벤이 시니어 인턴으로 들어간 곳은 창업 1년 반 만에 급성장한 온라인 의류 쇼핑몰 어바웃 더 핏. 24시간이 모자라게 돌아가는 이곳에서 양복 입은 70세 노인은 이방인이었습니다. 30세 CEO 줄스(앤 해서웨이) 조차 그를 어려워하며 업무 지시를 하지 않았죠.
사실 벤은 전 직장에서 40년간 근속하며 부사장까지 올랐던 베테랑이었습니다. 아무리 은퇴 후 재취업했다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손주뻘인 20대 동료들에게 고개 숙이고, 허드렛일을 도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왕년의 자존심이 불쑥 튀어나올 법한 상황이죠.
하지만 벤은 과거의 명함이 현재의 태도를 망치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그는 대우받아야 할 어른이 아니라, 팀에 녹아들어야 할 신입임을 스스로 되뇌며 조용히 움직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무실의 골칫덩이였던 쓰레기 더미 책상을 말끔히 치우고 바쁜 동료들을 위해 묵묵히 서포트합니다. 그의 이런 태도는 동료들의 경계심을 무장해제 시킵니다. 연애 문제로 고민하는 직원, 격무에 시달리는 비서 등 젊은 동료들은 권위의식 없이 다가오는 벤에게 마음을 엽니다.
어느새 그는 불편한 어른이 아니라, 동료들이 힘들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 기댈 수 있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진정한 연륜이란 높은 자리에 앉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동료의 빈틈을 채워주는 넉넉함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CEO 줄스의 마음을 여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듯한 벤을 부담스러워했고, 심지어 그를 다른 부서로 전출시키려까지 했었죠. 그녀에게 어른이란, 늘 자신을 평가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변곡점은 우연히 벤이 줄스의 운전기사를 맡게 되면서 찾아옵니다. 하루 24시간, 수백 개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줄스. 차 안에서조차 업무 전화로 예민해진 그녀에게, 벤은 섣불리 인생 선배 노릇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끼니를 거르는 그녀를 위해 조용히 수프를 챙기고, 복잡한 일정을 묵묵히 정리해 줍니다. 모든 직원이 그녀에게 "이거 어떻게 할까요?"(요구)라고 물을 때, 벤은 유일하게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쉴 틈(배려)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저분은… 그냥, 편해요."
줄스는 깨닫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성공한 CEO로만 대할 때, 벤 만이 자신을 지치고 바쁜 사람으로 바라보고 돌봐준다는 사실을요. 결정적으로 줄스가 남편의 외도와 경영권 문제로 샌프란시스코 호텔 방에서 무너져 내릴 때, 벤은 그녀의 옆을 지킵니다. 그는 "남자는 다 그렇다"거나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식의 뻔한 충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침대 맡에 앉아, 아이처럼 울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뿐입니다.
불안한 청춘에게 진짜 필요한 건, 섣부른 해결책을 쥐여주는 멘토가 아니라 흔들리는 등을 조용히 받쳐주는 단단한 의자 같은 어른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속도를 능력으로 오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이 무너지는 순간, 사람을 붙잡아주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벤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곁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두 사람은 상사와 부하가 아닌, 인생의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됩니다.
사실 벤은 알고 있었습니다. 줄스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만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당장 달려가 남편이 바람피웠다고 알리거나, 정의의 사도처럼 나서지 않습니다. 그 진실이 그녀에게 줄 상처와 그녀가 감당해야 할 무게를 알기에, 벤은 침묵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타인의 아픈 치부를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 어른의 깊은 배려였습니다.
줄스는 자신의 고민을 벤에게 털어놓습니다. 바쁜 자신 때문에 모든 상황이 이렇게 된 것만 같아 자책하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꿈(CEO 자리)을 포기하려 합니다. 하지만 벤은 눈앞의 슬픔에 가려진 진짜 문제를 스스로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는 남편을 비난하며 같이 흥분하지 않는 대신, 남편의 실수 때문에 당신이 이뤄낸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일과 사랑을 분리해서 볼 수 있도록 그녀의 시야를 넓혀줍니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후회할 선택을 하려는 젊은 CEO를, 인생을 길게 살아본 선배로서 꽉 붙잡아준 것입니다.
가장 감정적인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이성. 그것은 인생의 숲 전체를 조망할 줄 아는 넓은 시야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영화는 줄스가 벤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일어서는 해피엔딩을 맞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두 사람은 공원에서 나란히 태극권을 합니다. 빠르게 달리는 줄스와, 천천히 숨을 고르는 벤.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온 두 사람은 이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현실의 우리가 모두 영화 속 벤처럼 한없이 관용적이고 인자한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평생 숫자를 다루며 예리한 분석력을 키웠을 것이고, 누군가는 거친 현장에서 밀어붙이는 불도저 같은 돌파력을 쌓아왔을 테니까요. 괜찮습니다. 굳이 벤과 똑같은 성격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느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버텨왔든 그 치열했던 세월과 고유한 경험이 반드시 빛을 발할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재취업 시장 앞에 선, 혹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중장년 여러분. 세상이 너무 빠르다고, 내 자리가 없다고 주눅 들지 마십시오. 당신의 땀방울이 밴 그 경험은 낡은 것이 아니라, 어떤 트렌드에도 흔들리지 않는 클래식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쌓아 올린 당신만의 능력이 새로운 무대에서 멋지게 쓰임 받기를, 그 가슴 뛰는 제2의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당신의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