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이나 9월쯤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강아지는 2021년 4월 5일 식목일 현재 7.5킬로 되는 ‘시고르자브종’이다. 12월 27일 우리 집에 처음 와서 눈 오고 얼음 어는 겨울을 지나 꽃 피고 바람 부는 봄이 되어서야 예방접종이 끝났다. 그동안 내내 서른두 평짜리 집에서만 지낸 우리 강아지. 몸집은 커도 아직 1년도 안 된, 말 그대로 강아지다.
이 아이는 무엇이 그렇게도 두려운 걸까. 지난주에 시험 삼아 마당에 데리고 나갔는데 한 발도 떼지 않고 얼음이 되어 버렸다. 마지막 접종 때 수의사는 강아지에게 자꾸 좋은 기억을 심어줘야 한다고 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공원까지 안고 가서, 강아지가 안 움직이면 안 움직이는대로 옆에 그저 두고 30분씩이라도 바깥에 노출시켜주라고. 공원은 유동인구가 많을수록, 시끄러울수록 좋다고도 했다. 아, 이래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구나, 괜찮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많이 느껴야 산책에 한 발 더 가까워질 거라는 말이다.
어제, 비 온 뒤 깨끗한 공기와 맑은 햇살 속에 첫나들이를 감행했다. 우리의 7.5킬로 강아지는 하네스를 씌울 때부터 달달 떨더니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엄마 집까지 가는 동안 남편의 팔에 안긴 채 오줌을 살짝 지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 가스 빼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품에서 솟구쳐 오르는 바람에 남편도 강아지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좋은 기억을 심어줘야 하는데 첫 외출부터 날벼락같은 버스 방귀라니.
오늘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는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커피를 내리고, 책도 한 권 챙겼다. 어차피 움직이지 않을 테니 책이라도 읽을 요량이었다. 혹시 몰라 비닐봉지와 휴지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가방을 꾸리고 분주하게 움직일 때부터 강아지는 식탁 밑에 납작 엎드려 내 동태를 살피고 있다가 손에 든 하네스를 보자 귀를 있는 대로 붙이고 아예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그 모습이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싹싹 비는 것 같이 보여서 잠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읏차!!” 에코백을 멘 반대쪽 팔로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커다란 강아지는 내 팔에 바짝 매달려서 ‘서있었다’. 발톱이 누른 자리가 아프고 허리가 뻐근해졌다. 내 품에 서 있는 강아지를 안은 채로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는 등원하는 어린이들, 산책 나온 강아지들과 운동기구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어르신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북적거림이었다. 가장 따뜻해 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땅에 내려놓자, 강아지는 코를 벌름거리며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발이 순조로운데?
강아지는 벤치 뒤 화단을 조금 킁킁거리고 탐색하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발을 떼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펼치려다 말고 강아지의 움직임을 따라 화단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렇지, 민들레도 피어있고, 흙도 촉촉해 보이네. 좋다, 그치? 그쪽은 안돼, 거긴 담이 있잖아. 넘어가면 철조망이.... 아니 일단 울타리가... 자꾸만 화단 가장자리 울타리로 가서 그 사이로 코를 들이미는 강아지는 흙과 공기와 꽃과 풀을 즐기고 탐색하려는 게 아니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도망치려는 것이었다. 울타리만 통과하면 이 ‘바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한동안 강아지는 화단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동안 공원에는 골든 레트리버 한 마리, 보더콜리 한 마리, 갈색 푸들 두 마리와 시츄 한 마리, 손바닥만 한 치와와 한 마리, 여러 마리의 몰티즈가 가슴을 쫙 펴고 보무도 당당하게 지나갔다. 한 예쁘장한 시츄는 강아지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뒤로 돌아 뒷발로 흙을 잔뜩 끼얹고 가버렸다. 시츄의 주인은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잠깐씩이라도 매일 데리고 나오셔야 익숙해져요.”라며 내게 조언과 작은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그러는 동안에도 시츄는 계속 뒷발질로 나와 강아지에게 흙을 뿌리고...).
우리는 30분 정도밖에 앉아있다 들어왔다. 발을 씻기고 간식을 주자 강아지는 밖에서는 입도 대지 않던 간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책상 아래에 앉아 꼬박꼬박 졸기 시작했다. 아까 본 행복하고 당당해 보이던 개들을 떠올려 본다. 탁탁탁 발톱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걷던 작은 몰티즈와 주인을 질질 끌고 뛰어다니던 커다란 개들. 흙을 뿌려대던 시츄와 오랫동안 선 채로 강아지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던 푸들. 그리고 꼬리를 다리 사이로 철저히 숨기고 그 시선을 외면하던 우리 강아지(꼬리 없어진 줄 알았다).
언젠가 너도 가슴 펴고 걸을 수 있게 되겠지? 흙을 뒤집어 보고, 풀 끝도 물어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문 앞에 서서 나가자고 조르기도 하겠지? ‘갈까’ 소리만 들어도 귀를 쫑긋 세우고 펄쩍거리며 스스로 하네스를 물어오는 날도 오겠지? 무엇이 너의 꼬리를 그렇게 잡아 내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천천히 같이 연습해 보자. 바깥엔 좋은 것도 아주 많이 있단다. 몇 년 후에 너한테 이 쭈구리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