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하다고 토라져 버렸다.

결혼 13년 차에도 부부의 시간을 원한다면, 그린라이트...?

by 다카포

생일날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했다. 생일인 줄 모르고 수업을 두 개나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채용 위원 일이 들어와서 기존 수업을 변경해야 했는데 아뿔싸... 남편은 내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 이른 귀가를 했는데 내 일정이 저녁 8시에 끝나 어쩔 수 없이 먼저 가족들과 저녁을 해야 했다. 생일자 없는 저녁을 먹고 뒤늦게 생일 초를 불었다. 바로 다음 날 9시 출근을 해야 했기에 밖에 나가자는 남편의 제안도 마다한 채 저녁도 먹는 중 마는 둥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감사하게 사흘 일정이 이틀로 줄어들어 나머지 수업들을 일정대로 잘 소화할 수 있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남편이 생일날 일찍은 왔지만 이렇다 할 대화도 하지 못한 게 아쉬워 내 딴에는 용기를 내 둘이 저녁 먹으러 가자고 얘기를 꺼냈다. 늘 이런 얘기는 내 쪽에서 해야 하는 게 내심 서운할 때도 있지만 표현해야 알 테니까 날이 더 지나가기 전에 이야기했다.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시간 내 주기를 기다린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결혼기념일이 있는 다음 날도 출장을 간다는 비행 스케줄을 받아 들고는 이번엔 쉽지 않겠네 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월요일부터 홍익인간이 되어 돌아온 그에게 무심코 건넨 한 마디가 도화선에 불을 댕기고야 말았다.


"오늘은 누구랑 저녁 했어?"

"..."

"어머? 왜 말을 못 해? 수상한데?"

"... 학군단 모임 있었어."


왜 망설인 걸까? 이유는 묻지 않아 지금도 모른다. 아마도 비즈니스 미팅이 아니니 목요일에 1주일 출장 가는 입장에서 본인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는 다른 면에서 펑 터지고야 말았다.

"와 진짜 너무하다. 내가 저녁 먹자고 한 게 언젠데. 기억은 하는 거지?"

"그럼!"

"그런데 모임 갈 시간은 있고 나한테 낼 시간은 없는 거야?

나도 자존심이란 게 있어. 매번 내가 먼저 데이트하자고 이야기해야 하고.

이젠 너한테 이런 말 먼저 절대 안 해!"


남편이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평소에 안 하던 애교 공세(?)도 펼쳤지만 거세게 저항했다. 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다 쑥 올라왔다.

'너는 일이 먼저고 나는 제일 맨 나중인거지?'

다년간의 부부싸움 신공이 있기에 이런 말은 모두 욱여 삼키고 화를 식히기 위해 거실로 나와 다음 날 아침 준비를 위해 쿠팡프레쉬 장바구니를 부지런히 담았다. 이렇게 화가 날 때도 내 새끼 밥 걱정하는 나도 이제 프로 어미구나. 플러스 남편이랑 같은 공간에 잠시라도 더 있기가 싫었다.


새벽에 수영 가면서 괜스레 자기 간다고 깨워서 인사를 다 한다. 한 번 깨면 다시 잠 못 드는 걸 알아서 매번 고양이처럼 나가는 사람이 이 정도면 꽤 많이 미안했던 게 분명하다.

"꺼져!"

"너무 심한 거 아니니?"

"더 심한 말 하기 전에 빨리 나가."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솔직히 자존심이 상해 거절할까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튕겼다간 서로 얼굴 붉힌 채로 1주일이 지나서 만날 텐데 져 주는 게 낫다.

"애들이랑 일정 없나 보고 알려줄게. 빨리 가."


그러고는 일부러 먼저 연락도 안 했다. 점심 즈음에 저녁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그에게 담백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옆구리 찔러서 절 받는 거 같지만 이번엔 받을게."


그러다 도서관에서 나의 상황에 딱 맞는 동화책을 만나게 됐다.

⌜올챙이의 약속⌟

올챙이와 애벌레가 사랑에 빠졌다. 올챙이는 흑진주, 애벌레는 무지개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연인 사이였다. 그런데 흑진주가 자꾸 다리가 나고 꼬리가 없어지자 애벌레가 흑진주가 변했다며 서운해했다. 흑진주는 변하지 않겠다고 계속 약속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어찌 거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무지개가 아름다운 나비로 변했다. 그 모습으로 흑진주를 만나고 싶어서 연못에 날아갔는데 그만 흑진... 개구리씨에게 잡혀 먹혔다. 개구리는 그 사실도 모른 채 무지개씨를 기다렸다.

작가는 사랑은 불가피하게 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과거에 머물러 변할 수밖에 없는 상대가 변하지 않길 무리하게 요구하는 애벌레를 꼬집고 싶었던 걸까? 너 그러다 잡아먹혀...? 내가 너무 내 입장에만 매몰된 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동화책을 보고 성찰을 하게 됐다. 남편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연애 시절처럼 나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동화가 너무 험악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싶어 바로 반납 처리했다.)

오오 글쓴 다음 날 아침, 둘레길 연못에서 흑진주 씨를 만났다!

그리고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앞으로 내 생일날은 송금하지 말고 운동화 사줘."

"운동화 있잖아!"

"... 예전처럼 꼭 생일날 아니더라도 운동화 같이 사러 가고 둘이 식사하자."

"아, 알겠어."

"그런데 우리 결혼기념일은 언제 데이트할 거야?"

"응?"

"내 생일, 결기, 자기 생일, 크리스마스는 둘이 데이트 하자."

"내 생일은 난 안 챙겨줘도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 그래."


결국 난 올챙이씨에게 앞발, 뒷발, 꼬리 사라진 거 다 인정해 줄 테니 잡아먹지 말아 달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꼭 너 인냥 생각하지 말고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갖자고. 부부에게도 부부만의 시간이 분명히 필요하다. 이리 얘기했는데도 까먹고 친구들 만나러 가면 그땐 내가 황소개구리가 되어버릴지도.

메뉴는 센스 만점! 그런데 사진을 또 나만 찍어줘서 "같이 찍어야지" 핀잔 주니 그제서야 상황 파악... 어쨌든 생일 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