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촌장입니다.
최근 《프로젝트 헤일메리》란 영화가 1,500만명이 넘은 《왕과 사는 남자》를 따돌리고 박스오피스 선두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주인공을 맡아서 흥행에 더 탄력을 받는 것 같기도 하구요. 워낙에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두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마션》으로 유명한 앤디 위어의 세 번째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마션》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어서 앤디 위어의 최고의 작품라고 생각하는 아주 멋진 SF 소설입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외계인과의 소통입니다. 소설 《마션》에서도 금성에 홀로 남은 주인공이 지구의 관제탑과 어떻게 소통을 해나가는 지에 대한 정말 흥미로운 장면들이 나옵니다 . 감동적이기까지 한 그런 소통의 장면이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는 한층 더 흥미로워 집니다. 이번엔 아예 종족이 다른 존재가 어떻게 소통을 나눌 수 있을까인데요.
완전히 다른 존재인 두 생명체가 만나서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때 소통과 교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아주 흥미로운 화두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요레터에서는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 나눠볼까 합니다.
먼저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을 소개해 드리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태양과 금성 사이에 이상한 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페트로바선'이라고 명명된 이 선을 조사한 결과, 광선의 세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는 반면 태양의 빛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죠. 태양 에너지의 10%만 줄어도 지구의 생명체는 멸망한다는 보고서가 나오게 되고 인류는 비상 상황에 들어갑니다.
금성에 탐사선을 보내서 '페트로바선'을 검사한 결과 '아스트로파지' 라고 불리는 미생물체들의 군집임을 알아냅니다. 이 미생물들이 태양의 에너지를 흡수해서 개체를 급격히 번식시키고 있음이 밝혀자고, 이 생명체는 주변 8광년 이내의 별들을 감염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11.9 광년 떨어진 '타우세티' 만 밝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죠. 지구의 과학자들은 아스트로파지의 번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겠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아스트로파지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타우세티에 우주선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프로젝트 헤일메리이죠.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탑승하게 된 그레이스는 혼자 살아남아 미션을 수행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거대한 비행체를 만나게 되죠.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 알고보니 이 외계인들도 아스트로파지에 공격을 받아 자신들의 행성도 멸망의 위기에 처한 상태였죠. 이들도 생존을 위해 타우세티에 우주선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지구인과 외계인이 우연히 만났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서로를 도와 자신들의 고향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여기에 커뮤니케이션, 소통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제대로 펼쳐지게 됩니다.
완전히 다른 존재인 지구인 그레이스와 외계인 록키 (그레이스가 록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의 조우는 지구에서 11.9 광년 떨어진 우주 한복판에서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레이스가 탄 우주선에 거대한 비행체가 다가오더니 연결을 시도합니다. 통로 같은게 연결되더니 정체불명의 존재가 그레이스의 우주선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그레이스는 너무 두려웠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그 두드림에 어떤 패턴이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건 공격이 아니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걸 그레이스는 알아채게 되죠.
일단 외계인 록키가 얼마나 인간과 비슷한 점이 거의 없는 존재인지를 설명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록키는 일단 눈이 없습니다. 시각이라는 감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죠.
다리는 다섯 개이고, 바위처럼 단단한 외골격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딱딱한 표피를 가진 거대한 거미. 이렇게 상상하면 그리 틀리지 않을 겁니다. (영화에서도 예고편에 보니 록키의 이런 외모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더군다나 섭씨 200도가 넘는 고온 고압 환경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인데요. 별도의 발성기관이 없이 몸 전체로 진동을 감지하고, 음계의 조합으로 의사를 표현합니다. 표정도 읽을 수 없고, 몸짓의 의미도 알 수 없습니다. 악수도, 고개 끄덕임도, 미소도 통하지 않습니다.
언어는 커녕 감각의 체계 자체가 완전히 다른 두 존재 사이에서 어떻게 ’소통’이라는 게 가능할까요?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바로 인간과 외계인이 어떻게 소통을 만들어가는가에 있습니다.
둘이 처음 시작한 대화는 숫자를 주고받은 것이었습니다. 벽을 사이에 두고 한쪽이 세 번 두드리면 다른 쪽도 세 번 두드리는 식으로요.
숫자가 통하자 그 다음은 물질이었습니다. 그레이스가 록키에게 물을 보여주고, 록키가 음계로 반응합니다. 그 음이 곧 ’물’이라는 단어임을 알죠.
록키는 음계로 말하는 종족이거든요. 음높이의 조합이 곧 그들의 단어이고 문장입니다. 그레이스는 이 사실을 알아내고, 하나하나 음과 의미를 대응시켜 나갑니다.
숫자부터 시작해서 물질의 이름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물, 금속, 공기에 대한 음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동사로 넘어가죠. 예를 들어 가다, 보다, 만들다 같은.
그리고 마침내 감정의 단어들을 찾아내려 노력합니다. 좋다, 두렵다, 걱정하다. 같은 느낌의 단어들.
이런 과정이 놀랍도록 느릴 수 밖에 없죠. 소설의 상당 부분이 이 느린 언어 구축에 할애됩니다. 하루에 단어 몇 개를 겨우 합의하고, 다음 날 다시 확인하고, 오해가 생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느린 과정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둘 사이에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 집니다. 그리고 그 언어로 록키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 외계인의 말투에 푹 빠질 수 밖에 없게 되는데요.
록키의 말투는 아주 독특합니다. 관사도 없고, 접속사도 거의 없고, 문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죠. 어린아이가 처음 말을 배울 때처럼 핵심만 남긴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기쁠 때는 “좋다좋다좋다”를 연발하고 걱정이 되면 “너 괜찮아?”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무언가를 이해하면 “나 이해”라고 짧게 말합니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면 “의문의문의문!”을 반복합니다. 궁금하다는 거죠.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몇 개의 문장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둘 사이엔 깊은 대화가 가능하게 됩니다. 왜냐면 너무 절박하기 때문이죠. 서로 너무 외롭기도 하구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전심을 다해 노력하기 때문에 이런 단순한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진실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겁니다.
처음에는 이 서툰 말투가 웃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 투박한 문장들이 어떤 세련된 대사보다 더 정확하게 감정을 전달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군더더기가 없으니까요. 의도를 포장할 줄도 모르고, 에둘러 말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록키의 말에는 거짓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쓰는 세련된 언어에는 혹시 너무 많은 포장 지가 붙어 있는 건 아닐까. 록키처럼 “나 걱정”이라고 직접 말하는 게, 때로는 장문의 위로 메시지보다 더 진심에 가까운 건 아닐까 하고요. 소통이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인내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겠다는 의지가 먼저이고, 도구와 방법은 그 의지 위에서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로키와 그레이스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됩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너무나 편리합니다. 그런데 그 편리함이 오히려 소통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지 않나 싶어요.
카톡 한 줄에도 상대의 감정을 오독합니다. 회의실에서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서로 다른 입장으로 다투기도 하구요.
수십 년을 함께 산 가족 사이에서도 “네가 그때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라고 묻을 때가 많습니다.
문법적으로는 완벽한 문장이 오가지만, 상대가 왜 그 말을 하는지에 대한 관심 없이 내 대답을 준비하는 데 바쁜 대화. 듣는 척하면서 판단하고, 공감하는 척하면서 반박을 구상하는 대화. 같은 언어라는 고속도로 위에서 우리는 종종 서로를 스쳐 지나갑니다.
반면 그레이스와 록키 사이에는 고속도로가 없습니다. 비포장도로조차 없습니다. 길 자체를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둘의 소통은 더 정직합니다. 오해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단어가 합의를 거쳐야 하고 모든 문장이 확인을 필요로 합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네가 말한 것이 맞는가?”
이 질문이 그들 사이에서는 절대 생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질문이야말로 모든 진정한 소통의 출발점이 아닐까 합니다.
소설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순간들은 대부분 이 불완전한 언어가 마침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하는 장면들입니다.
록키가 그레이스에게 처음으로 걱정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레이스가 위험한 실험을 하려 하자 록키가 말합니다. “너 걱정. 나 너 걱정.” 관사도 없고 동사 활용도 없는, 겨우 단어 몇 개를 이어붙인 문장입니다. 그런데 이 한 마디가 수백 페이지에 걸쳐 쌓아온 두 존재의 관계를 단번에 증명합니다. 처음에 숫자를 주고받던 낯선 존재가, 이제 상대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이가 된 거니까요.
소설 후반에는 더 결정적인 장면이 옵니다. 스포라서 여기서 다 말하긴 그렇지만, 그레이스가 로키에게 이렇게 말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나 여기. 나 돕다 너.”
이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 복잡한 수사도 없고 긴 독백도 없습니다. 음계 몇 개, 짧은 단어 몇 마디. 그것이기에 충분합니다. 군더더기가 벗겨진 언어는 오히려 감정의 밀도를 높이더군요.
외계 종족의 언어가 음계라는 설정은 과학적 합리성을 위한 선택이었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소설의 주제와 아름답게 공명합니다.
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소리는 닿습니다. 의미 이전에, 진동이 먼저 도착합니다.
영화 개봉 이후 소설에 대한 관심이 다시 올라가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집어든 사람도, 소설을 읽고 영화관을 찾은 사람도 아마 같은 장면에서 울컥할 겁니다. 록키가 전하는 짧은 음계 한 마디. 그리고 그것을 알아듣는 그레이스의 표정만으로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질 겁니다.
그 순간, 우리는 직감합니다. 소통이란 결국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쪽’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11.9광년의 거리, 200도의 온도 차이, 완전히 다른 감각 체계. 이 모든 장벽에도 불구하고 두 존재를 연결한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의지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이 있고 글자가 있습니다. 대화의 수단도 다양하죠. 록키와 그레이스보다 훨씬 풍요로운 소통의 도구를 갖고 있는 셈이지만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도구의 풍요가 아닐지 모릅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한 번만 멈춰서 물어봐도 좋겠습니다.
내가 이해한 게 네가 말하려는 것이 맞아?
가장 먼 우주에서 온 이 이야기가, 결국 가장 가까운 곳을 돌아보게 만들더군요.
이번 주말엔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러가봐야 겠습니다.
촌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