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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녕 Jul 11. 2021

실수 투성이 하루였지만 대단한 사회인인 척을 했다

수고했다는 말보다 잘했다는 말이 듣고 싶어서



오늘 힘들었는데 그래도 좋았어. 보람도 있었고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일한 후 들어와 늦은 저녁을 먹으며 부모님께 한 말이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솔직한 것도 아니었다. 힘든 하루였다. 공간을 대여하고 시간을 스케줄링하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한 데 불러 모아 진행하는 그날의 일은 나에게 정말 힘든 부분이었다. 물론 혼자서 부담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팀으로서 함께 하는 것이었지만, 내가 느낀 부담감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를 부모님께는 하지 못했다. 오늘 하루 실수투성이였고 일이 지독히도 꼬였으며 평소 같았으면 유유히 흘러갔을 일도 유난스럽게 마무리되었다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고, 앞으로 도움이 될 새롭고 좋은 경험을 한 하루였다는 말도 안 되는 교과서적인 멘트를 날렸다. 



사실은 오늘 하루 정말 열심히는 했지만, 엉망진창이었어. 
다 말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뭐야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또 포장했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봤다. 왜 솔직하지 못할까. 아무래도 이유는 그날의 일이 정말 나에게 타격감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하루는 이랬다. 


새벽 5시부터 대관을 해 놓은 공간은 5시 30분이 되어도 전타임 사용자들이 철수를 하지 않았다. 세팅팀이 5시부터 세팅해도 빠듯할 것이라 신신당부하셨기에 몇 번이나 확인을 한 터였다. 어딘지 불안한 마음에 잠도 오지 않아 사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공간 담당자와 밤새 문자를 나누다 4시 40분에도 철수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분노해 제대로 씻지도 않고 현장으로 향했다. 결국 전타임 사용자들은 7시가 돼서야 철수하는 기염을 토할 노릇을 보여주었다. 내리 3시간을 화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 당장 해명하고, 저 사람들을 이 공간에서 내쫓으라고. 몇 년 만에 한 인간에게 그리도 심한 화를 내 보았다. 그 사람도 참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눈앞에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무사히 일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내 마음 한편은 이미 구멍이 나 있었다. '화'는 그 화를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는 사람에게도 같은 크기의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준비한 것들을 차근차근 진행해가며 몇 번의 부침이 있었다. 준비한 순서가 바뀌고, 이에 따라 준비사항이 바뀌는 변수 속에서 나라는 사람의 부족함을 느꼈다. '아직도 이런 것에 대처가 이렇게도 안 되는가'하는 생각을 곱씹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나를 옭마 맨 하루였다. 


온 힘으로 견뎌낸 하루의 끝.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오늘 정말 힘들었다고. 사람들이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건넸지만 들리지 않았다. 항상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언제나 "수고했어"라는 답을 듣는 기분을 알까. 난 항상 그렇게 열심히만 하는 사람인 것 같아 싫었다. 왜냐하면 난 잘하고 싶거든. 못 돼 처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을지언정 잘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기에 솔직하지 못했다. 나를 둘러싼 내가 만든 열등감 안에서 나는 나를 또 포장했다. 이런 의미 없는 포장지가 이제 스스로 풀기도 너무 힘들 만큼 단단해졌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솔직해지려 한다. 포장지의 끈을 끊어내서라도 한 꺼풀을 벝겨내려 한다. 더욱 건강한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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