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해결
깊은 어둠이 묘지를 덮으면,
해골들의 기이한 축제가 시작된다.
어둠의 공기를 가르고,
살아 있던 흔적은 모두 사라진 채
앙상한 뼈만 남은 존재들.
그들은 절망조차 잊은 얼굴로
뼈와 묘석이 부딪히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며, 춤을 춘다.
공포와 전율은 어느새
우아한 멜로디가 되어
무덤가를 떠돌고,
그렇게 죽음 앞에선 모두가 평등했다.
괴기스럽기 짝이 없는 이 풍경을
선율로 옮긴 음악이 있다.
아름다움 뒤에 처절한 고통과 희열이 묻어나는
이 작품은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다.
이 곡은 우리에게 ‘동물의 사육제’로 익숙한 생상스가,
시인 앙리 카잘리스(Henri Cazalis)의 시집 '착각'에 수록된
평등, 박애…(Égalité, Fraternité…)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된 작품이다.
곡의 도입부는 마치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듯
날카로운 화음들로 시작되는데,
필자는 방금 그 기이한 긴장감의 시를
변주해 보았다.
(원작자의 시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카잘리스는 중세부터 전해 내려온
기괴한 ‘죽음의 무도’ 전설을 시로 옮겼고,
생상스는 그 으스스한 텍스트 위에
선율이라는 숨결을 불어넣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는 그 찰나의 순간,
생상스가 선택한 도구는
다름 아닌 ‘트라이톤(Tritone)’이었다.
굉장히 괴기스러운 질감과
우아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트라이톤’은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등장한다.
트라이톤은 작곡에 필요한
화성이론의 하나로,
듣는 이의 감정을 뒤흔드는
불편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지독히 불안정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게 만들지만,
결국 안식처 같은 음정으로 넘어가며
안정을 되찾게 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불협 화음’이 아닌,
해소되지 못한 긴장을 에너지 삼아
다음 마디의 평온을 향해
우리를 거칠게 밀어붙이는 음악적 장치이며,
이 불협처럼 느껴지는 감각은
삶의 어떤 순간과 많이 닮아 있었다.
중세 시대,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고
세상은 공포와 상실로 가득 찼다.
살아남은 이들의 슬픔 뒤에는
처절한 고독과 우울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점차
안전과 평화를 갈망하는
본능적인 욕구로 바뀌어 갔다.
역설적이게도 불안과 긴장의 끝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으로
넘어가려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광기의 멜로디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했고,
사회적 질서를 흔들었다.
교회 음악의 신성함을 해친다는 이유로
중세 음악가들 사이에서 ‘트라이톤’은
‘음악 안의 악마(Diabolus in Musica)’라 불리며
오랫동안 금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금지하면 할수록,
본능적 자극은 더 선명해지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 불협화음 속에 숨겨진 매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간의 삶에는 거스를 수 없는
결핍의 긴장과 해결이
음악의 구조처럼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전염병으로 물들어
인류의 역사가 고통으로 울부짖는다 해도,
그 안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속에서는
다시 제자리를 찾으려는 욕구가 꿈틀댄다.
고통을 딛고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인류의 삶을 맞이해야 하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결핍이 던지는 숙제를
끝없이 해결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니체가 말한
‘비극의 탄생’과도 닮아 있다.
디오니소스적인 광기와 본능,
무질서와 결핍이라는 파괴의 힘은
아폴론적인 이성과 질서,
그리고 해결의 힘과
늘 맞물려 충돌한다.
인생이란 결국
이 두 힘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내는,
거룩한 ‘비극의 반복’인 셈이다.
고통을 연료 삼아야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질서와 균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불완전함 속에서
끊임없이 완전함을 갈망하는 이유는
그 갈증 자체가
우리를 살아내게 하기 때문이다.
즉, 완전함이
멈춰 있는 하나의 ‘상태’라면
불완전함은 끊임없이 흐르는 ‘운동’이자
‘생명의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결핍이 가진 이 역동적인 힘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불안이라는 얕은 겉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음악의 긴장이 해결을 부르듯,
삶의 결핍 또한
하나의 동력이 되어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생존의 조건임에도,
그 불쾌한 자극 탓에 늘 기피하고 싶지만
불완전함에서 갈망이 태어나고,
갈망은 채움을 부르며,
그 채움은 다시
새로운 불완전함을 만들어낸다.
이 끝없는 ‘비극의 탄생’을
우리는 매일 살아가는 것이다.
불완전한 결핍은
자신을 갉아먹는
악마의 이빨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음 마디의 아름다운 화음을 향해
내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뜨거운 맥박 같은 것이다.
오늘의 내 삶이 지치고 힘든 것은
어쩌면 내일의 완성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필연적인 흐름을
먼저 의식하고 인정한다면,
불쾌한 결핍의 긴장마저도
조금은 더 의연하게 마주하며
해결해 나갈 수 있다.
1. 트라이톤(Tri-tone)'이란?
3개(Tri)의 온음(Tone)'으로 이루어진 간격을 뜻합니다.
증 4도 또는 감 5도의 간격을 가진 음을 말하는데,
음과 음 사이의 거리가 불안정해서 우리 귀에는
어느 한쪽으로도 정착하지 못한 채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2. 트라이톤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시(B)'와 '파(F)' 음입니다. 이 두 음이 부딪히면서 긴장이 발생하는데,
이 긴장감은 본능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음으로 가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 불안정한 '시'는 가장 가까운 안정음인 '도'로 올라가려 하고,
- 날카로운 '파'는 아래인 '미'로 내려가는 성질입니다.
이렇듯 변화하는 짧은 찰나가 음악의 가장 극적인 희열을 만들어냅니다.
* 교향시(Symphonic Poem)란?
시, 소설, 회화, 혹은 전설 같은 표제를 가진(대상이 있는 음악적 묘사)
'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관현악으로 표현한 단악장 형태의 곡을 말합니다.
기존의 정형화된 형식을 벗어나,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고 회화적으로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유온의 열여섯 번째 이야기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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