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하늘로 보낸 뒤 2

소천 후 7개월, 제주도의 푸른 밤에 든 어떤 기분

by 황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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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워크숍 2박 3일을 다녀와서 쓴다. 공항에서 저녁 8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도착한 지 불과 몇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서울과는 다른 하늘인 제주 서쪽 협재의 바닷가에서 저녁 바람을 맞으며 고즈넉한 '어떤 기분'에 잠긴 것이 꿈만 같다.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을 대여섯 번은 들었다. 원곡의 동화 같은 그 분위기가 여러 리메이크들보다 훨씬 좋다. "너무 많이 지쳤기 때문"이라는 가사의 진정성이 가장 큰 울림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문득문득 어머니 간호에 매달리던 시절이 생각났다. 돌아가신 지 7개월 반이 흘렀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즐겨 듣던 들국화와 최성원의 노래를 들으면, 94년도에 복학하고 건축설계에 힘들어하면서 어머니를 위해 멋진 집을 지어드리고 싶었던 그때가 떠오르는 <건축학개론>을 보면, 현재의 하늘과 바다에서 어떤 향수를 느끼면...

시간이 흘러도 그리움은 더 커져가고 가끔 가슴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기억 덩이에 꾹꾹 찔린다. 그 음악과 그 영화는 모두 어머님이 건강하신 모습으로 곁에 있을 때였고, 나는 그 존재의 혜택 속에 꿈을 꾸고 돌아갈 포근한 품이 있어 안심하며 살았다.


오랜 병간호하면서 바다를 보아도 아름다운지 잘 몰랐고, 하늘을 보아도 시원하지 않았다. 어머니 소천 후 아내와 아이들 데리고 속초에 갔을 때, 사춘기 첫째를 데리고 제주도에 갔을 때, 처음으로 출판계 선배의 도움을 받아 도쿄 2박 3일이라는 해외여행에 갔을 때 내가 사는 세상이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는 걸 알았다.


사회연대은행 육성가과정 8기와 함께 '쉼'과 '즐거움'의 테마로 2박 3일 동안 잘 누리면서 어머니와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하고 하늘로 보내드린 아쉬움이 가슴을 적셨다. 비가 촉촉이 내리는 비자림 길의 환상적인 기분도 좋았고, 현지 가이드가 인도해 주신 맛집들도 좋았고, 함께 소셜 미션을 가진 이들과 대화한 시간도 좋았다. 마지막 코스였던 자전거 타기도 천천히 음미하는 '어떤 기분'들이 감미롭고 신선했다. 그 좋은 풍경 속에서 그리움은 더 도드라졌다.


마지막 날 3시에 해산하고 8시 30분 비행기 시간 전까지 모닝을 빌려서 애월해안도로를 드라이브했다. 예승이와 지난 4월 강풍이 불던 날 갔던 화산암의 바위에 앉아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을 또 들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그 순간에 불어오는 바람과 공기 속에 파묻히고 싶은 기분을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아련한 슬픔 같은 게 차올랐다.


협재 바닷가 부근 유명한 국숫집은 일찍 문을 닫아서, 다른 고기 국숫집을 찾아 저녁을 먹고 비행기 시간에 맞춰 제주공항에 왔을 때 짧은 여행은 어젯밤 꿈같이 붙잡고 싶어도 멀어져 갈 기억의 조각으로 보내야 했다.

부디 너무 좋은 기억이 나의 현실을 방해하지 않기를.


김포공항에 내리면서 전의를 가다듬어야 하는 마음이 살짝 아프게 밀려왔다. 즐거움과 쉼의 자리에서 머리 쓰고 행동하고 부딪쳐야 할 일상으로 바뀌는 순간, 그렇게 전투적으로 살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법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가정을 위해, 미션을 위해, 삶은 늘 부서지게 일해야 하는 자리로 모든 상념을 다시 배열한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내게 에너지가 참 부족하다는 불안함이 있다. 너무 오랫동안 다 떨어진 배터리로 살고 있다. 콘센트에 꽂아야 할 코드를 잃어버린 거 알면서도 방전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다.


그 가운데 잠시 가족들과 떨어져 좋은 소풍을 다녀온 것이 감사하다. <어머니는 소풍 중>이란 책 제목처럼 어머니는 지금 하늘에서 더 좋은 소풍 중이실 거다. 다시 만날 때까지 이 땅의 소풍을 나도 잘 누리고 선택하련다. 일은 밀려 있고, 밤잠을 줄여야 할 벌이의 일상이 눈앞에 있어도 함덕, 협재, 애월의 바닷바람이 귓가에 남는다. 그 '어떤 기분'을 며칠 더 가지고 도시의 빡빡함을 견뎌갈 수 있겠지.

2018.05.30





(제주도 풍경이 담겨 있는 최성원의 노래 링크)
https://youtu.be/4vQSwav-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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