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의 고통 1

칼날 위의 삶을 견뎌내던 때

by 황교진


메르스 사태 3주째다.

어머니 병원에서 보호자 통제를 해제한단 문자는 오지 않았다. 물티슈, 각티슈, 비닐장갑 등 소모품도 다 떨어졌을 텐데... 병원 매점에서 외상으로 조달해달란 부탁을 드려놓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내겐 무겁디 무거운 고통이다.
요즘 같이 더운 날, 꼼짝없이 누워계신 침상에서 엉덩이가 짓무르는 것을 넘어 욕창이 생기진 않을지, 가장 큰 걱정이다. 어머니 표정만 보면 어느 쪽이 불편한지 감지가 되는 나의 감각 세포는 일상의 평안을 깨트리고 온갖 통증을 일으킨다. 19년에 이르는 동안 욕창이 없도록 보호해드린 노력이 무슨 의미일까.
아, 나는 곤고한 자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평안과 쉼을 찾을 수 없다.

오늘 마스크 쓰고 일단 병원에 운전해 가보려다가 내일로 미뤘다. 실업급여 신청 마지막 달이어서 고용센터에 서류 접수를 해야 한다. 내일 차를 몰고 일산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 그 일정 마치고 부천에 가서 병간호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리고 나와 소통이 잘 되는 간병인 분이 내일 출근하신다.
의료용품 들고 부천 성주산에 있는 병원에 갔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오면 마음 아플 것이다. 제발 내일엔 뵐 수 있기를 빈다. (그러나 입구에서 병원 관계자 외 보호자 출입은 한 달간 통제되었다.)

어제저녁에는 안 좋은 일이 있어 <쥬라기 월드>를 보았다. 극장에는 적지 않은 젊은이가 메르스와 상관없이 영화를 감상하러 왔다. 지금 고용센터에서 번호표 뽑고 실업급여 창구 앞에서 기다리는 실내에도 많은 사람이 대기 중이다. 마스크 쓴 사람이 별로 없다. 메르스 공포는 뉴스에서 느끼는 두려움과는 온도차가 달라 보인다. 그렇다고 안심이 된다는 건 아니고.

이제 마지막 실업급여 신청하여서 고용센터 다시 올 일이 없다. 마지막 직장을 찾는데 쉽지가 않다. 종이책이 화장품 같은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 시대가 되지 않으면, 외벌이 출판 편집자로 어머니 병간호비까지 충당해야 하는 가장에게는 너무 외롭고 힘든 인생이다.

<너무>가 부정 의미에서 긍정, 부정 다 쓰이는 부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너무 많은 짐을 지고 너무나 괴로운 고통의 현재 진행형을 살며, 하늘 소망을 바라는 이 삶이 너무 아프다. 긍정의 문장에 너무를 너무나 바라지만...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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