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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느 Jan 29. 2022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집에

암환자와 사는 법

어느날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집 문을 두드렸다. 그 낯선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현재 지금 이 순간, 그리고 5년 뒤쯤의 금보다 조금은 나아져있을 나의 형편들을 꿈꿔왔다.

내 꿈은 사실 소박하다. 내 이름의 집을 갖는 것, 들들이 조금 더 공부를 잘하는 것. 그래서 제법 괜찮은 대학에 가는 것, 안되면 할 수 없고...그리고 나와 가족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내는 것.


작년 여름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은 동네 같은 아파트, 즉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시는 시부모님도 주사를 맞으셨다. 나는 그 당시까지 '시'로 시작하는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무감각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기에 그의 근황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의 걱정스런 탄식이 내귀에 계속하여 들려왔다. 무래도 시아버지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것 같다는 것이다. 백신 부작용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동서와 의논해서- 대체로 이 집은 여자들이 없으면 추진력이 거의 없는 셈이다- 시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기로 했다.  


병원이란 곳은 무언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제나 사람들로 넘쳐나고 시끌벅적하며 때로는 활기찬 분위기마저 감돈다. 아픈 사람들은 우울한 얼굴을 감고 희망만을 보려하고, 적당히 아픈 사람들은 동네 마트 들르듯이 지나쳐간다.


시아버지의 병명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의사를 만나고 각종 검사 예약을 하고 온 날 저녁 갑자기 숨이 차다는 말에 다시 응급실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은 그야말로 초비상이었다. 흰색 보호복을 입은 간호사들과 의료진들은 마치 우주비행사를 연상케했다.  들은 기중에 떠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호자는 한명만 허락됬다. 시어머니는 당당히 코를 찔리는 짧은 고통을 인내하고 수십년을 지지고 볶고 살아온 남편의 곁으로 갔다. 앞으로의 험난한 동행을 예감했는지 알수 없지만.

며칠이 지난 후 퇴근길 운전 중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다급히 차를 세웠다. 서럽게 우는 목소리, 최악의 병명을 듣고서 잠깐 충격에 빠졌다. 그때 숨이 찬것은 폐에 물이 차서 호흡이 곤란했던 것이고 폐에 물이 찬것은 아주 나쁜 징조였던 것이다.  

누구도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았던 병명, 죽음이 연상되는 그 단어를 가까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우리 가족에게 다가왔다.

췌장암 4기.. 췌장암은 발견하면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 암세포는 폐와 간에도 전이된 상태였다. 수술도 불가능하고 남은 선택지는 항암치료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온 가족이 암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환자 자신은 몸에 폭탄을 안고서 사투를 벌여야했고 가족들은 그런 환자를 엄호하며  전방위에서 원 공세를 펼쳐야 했다.

우리는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집을 엿보지 않도록 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여지껏 살아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였다. 마치 평범한 일상의 한 페이지를 덮고 조금의 공포와 스릴, 피땀 눈물이 얼룩진 알 수 없는 미래가 펼쳐지는 새로운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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