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青春) : 만물이 푸른 봄철
<드라마 '청춘시대'를 보고>
'청춘(青春): 만물이 푸른 봄철'
청춘시대 각 회차별 소제목 정리
1회 : 출발선 상의 두려움
2회 : 이 팬티가 네 팬티냐?
3회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4회 : 내 꿈은 회사원이다
5회 :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 혹은 사랑하지 않으려는 이유
6회 : 알고 나면 그 날 일은 복선이 된다
7회 : 나는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8회 : 희망, 그 빌어먹을 놈의 희망
9회 : 제 자리에 서 있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10회 : 우리는 믿고 싶어서 믿는다
11회 : 알고 보면 모두가 특별한 사연을
12회 :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청춘시대'. 진부할 것만 같은 드라마 제목. 어딘가 모르게 청춘청춘함을 바탕으로 촌스러운 내용이 전개될 것만 같은 제목. 하지만 모두의 편견을 깨고, 현재 '인생 드라마', '시즌제 가주세요' 등의 여러 사람의 찬사와 사랑을 받은 드라마이다. 나 역시, 1회가 시작될 당시부터 챙겨본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에서 조금씩 화제가 되는 것을 보고, 우연히 1회를 보았는데, 웬걸. 잔잔한 물이 흐르는 듯한 전개에 나도 모르게 60분을 모두 시청해버렸다. 생신인 박혜수를 중점으로 전개되는 '신입생의 첫 시작' 스토리. 1회부터 휘몰아치며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요즘 드라마의 태세와는 정 반대로, 청춘시대의 1회는 조심스럽고 차분했다.
"새 출발, 새 시작, 새 학기"라는 유은재(박혜수)의 나래이션과 함께, 갓 대학에 와서, 쉐어하우스에서 독립의 삶을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낯선 땅에서, 낯선 시간 속에서 방황을 하다, 마지막 장면에는 하우스메이트들에게 하고 싶었던 속마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1회는 어찌 보면 지루했다. 하지만 유은재라는 인물을 빗대어 나의 신입생 시절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60분 방영이 끝나 있었다. 나 역시, 스무 살 때부터 독립을 한 케이스인데, 그때를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다. 혼자 산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학교 강의실을 잘 찾지 못해 수업 30분 전부터 건물을 헤매었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어디서 누구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낯설어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며, 온전히 혼자 있는 법을 깨달았고, 혼자 사는 법을 터득했다. 유은재는 하우스메이트들이 있기 때문에 온전한 혼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과 녹아 함께 생활한다는 점이 그녀에게 당연히 새로운 시도이자 새로운 방법이었을 터.
2회부터는 5명의 하우스메이트들의 사연과 캐릭터가 돋보이는 회차가 등장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잘 꺼내지 못하는 스무 살 유은재(박혜수), 초반에는 밉상같이 보일 수 있지만 남자친구에게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치는 정예은(한승연), 23년 모태솔로 유쾌 발랄 성격의 끝판왕 송지원(박은빈), (송지원은 어떻게 해야 사랑받고 인기를 얻는지 방법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정작 본인은 본인 모습 그대로를 사랑받기를 원하는 캐릭터였다.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쉽게 산다고 틀린 게 아니잖아?라고 사고하는 강이나(류화영), 청춘이라는 시간에 이보다도 더한 시련이 계속될 수 있을까 싶은 윤진명(한예리).
귀신을 본다는 송지원(박은빈)의 거짓말을 시작으로, 정예은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인물은, 그 귀신에 대해 각자의 사연을 대입하기 시작했고, 그 각자의 사연과 고민이 각 회차마다 등장한다. 이 드라마가 재밌는 점은 공감 스토리를 토대로, 우리 사회에서 여자가 겪는 불편함, 데이트 폭력 등의 사회성까지 담고 있기 때문에 가끔 장르가 청춘물인지 미스테리 물인지 헷갈리게 만든다는 점.
이 중 가장 담고 싶은 회차는 9회와 10회
9회
어딘가를 가려고 하니까 길을 잃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표 같은걸 세우니까 힘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같은자리에 있어도 길을 잃나 보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그 물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계속 계속 가라앉으면서
나를 잡고 있었던 건 누구였을까
그건 바로 본인 스스로였음을 보여준다
10회
이해해요
믿고 싶었겠죠
믿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믿고 싶어서
믿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으니까
니들 잘못이 아니야.
난 그냥 믿고 싶어서 믿은 거야,
믿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오늘도 그대가 건네준 이 온기를 신고서
그 어떤 슬픔도
그 어떤 눈물도
넉넉히 견뎌 걸어간다
(해당 장면 삽입곡, 강아솔 - 매일의 고백)
이 드라마는 OST까지 완벽하다. 해당 장면에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가사를 지닌 곡을 배치해 놓았다. 위의 장면에는 '그대가 건네준 온기를 신고서' '넉넉히 걸어간다'라는,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지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노래가 등장한다. 강아솔 - 매일의 고백 외에도, 안녕의 온도 - 겨울로 가기 위해 사는 밤, 소규모아카시아밴드 - 나비, 순간 등의 다른 삽입곡들 역시 완벽하다.
그리고, 마지막회
사실은 나 요새 조금 이상해요.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길을 잃은 것 같은데, 어디서 길을 잃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부럽다, 한 달이래.
드디어, 윤진명(한예리)이 웃었다.
그렇게 끝난, 마지막회의 소제목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마지막회에서 여느 드라마처럼 모든 의문점이 다 풀린 것은 아니다.(송지원 귀에서 나는 소리, 그럼 유은재 아빠가 진짜 약물을 넣었던 것인지, 정예은의 계속되는 트라우마 등) 그래도 드라마 속에서 해결된 것이 있다면, 윤진명이 웃었다는 것이다. 6년째 식물인간인 남동생, 어머니의 감옥행, 생계형 아르바이트, 좋아하는 남자를 붙잡지도 못하는 상황 등 최악일 수 있는 최악이라는 상황은 다 집어넣은 듯한 캐릭터, 윤진명. 그런 그녀가 마지막 회에서 전재산 170만 원을 들고 중국으로 한 달을 떠나며 웃었다는 것. 길을 잃은 것 같고, 중국에 가서도 한 달 동안 무엇을 할지, 귀국하고서는 어떻게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는 그녀는 '일단'이라는 부사를 붙이며, 떠났다. 소제목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가 말해주듯, 어찌 되었건 윤진명의 삶은 계속될 것이고, 계속되는 삶 속에서 또 이렇게 웃는 날이 올 것이고, 이는 나머지 하메 4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드라마가 전달하고 싶었듯, 평범해 보이지만 마냥 평범한 사람은 없다. 각자가 각자의 사연이 있으며, 어찌 보면 진짜 평범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부한 드라마 제목 아래, 역대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안겨준 드라마, 청춘시대.
'청춘'이라는 뜻을 사전 검색해보았다.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푸르르고 마냥 따뜻할 것만 같은 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수많은 청춘들은 봄을 걷기보단, 겨울을 걷는 나날들이 더 많을 것이다. 좌절하고, 부딪히고, 아파하고. 꿈을 꾸다가도 이게 내 길이 맞는 건가 싶을 것이고, 사랑을 하다가도 주저앉아 울 것이고, 인간관계, 학교생활 등등 우리에게 아픔을 제공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드라마가 매 회 지속되며 게시판에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은 "윤진명 좀 행복하게 해줘라"이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행복하길 바라듯, 청춘다운 청춘을 보내길 바라는 그 마음 그대로를 아마 우리 스스로에게 적용시키면 될 것 같다. 힘든 순간에도 그만 좀 힘들게 해주라! 웃게 좀 해주라!라고 바라며, 그 믿음이 그저 본인이 그러고 싶어서 믿는 믿음일지언정, 그러다가 또 길을 잃을지언정, 계속해서 고민하며 나아가면 될 것 같다. 고민하다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소리 내어 웃으면 될 것 같다. 딱, 그러기만 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