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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중심 치료 ABT
by 김덕성 Feb 08. 2017

자아의 정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바치는 선물

                                                  

많은 경우 우리는 수행, 수련, 심리치료적 이론과 테크닉의 숙달, 권력 가지기, 부자 되기, 유명해지기, 똑똑해지기, 외모 가꾸기 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세계를 통제하려 노력합니다. 싫은 일은 안 일어나도록 하고, 좋은 일은 많이 일어나도록 취사 선택하는 역할이 자아(아트만)에게 부여되어 있으며, 자아가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그 통제 능력이 충분히 강해져서 그 뒤부터는 쭉 안전하고 만족스럽게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아가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삶을 본질적으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 믿는 것은 거대한 착각입니다. 자아는 늘 경험합니다. 타인을 통제하는 것이 늘 실패한다는 것을. 세상의 일들이 내 구미에 맞게 벌어지도록 하는 데 늘 실패한다는 것을. 심지어 자아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조차 늘 실패한다는 것을. 


자아는 그 실패를 통해 배워야만 합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타인과 세상이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지요.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계발로 자신을 더욱 잘나게 만들고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믿고 있는 우리의 순진무구한 자아들은.. 자신이 한계에 부딪쳤을 때 그것이 진정으로 한계라는 것. 그것이 막다른 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노력의 강도를 증대시키거나, 기교의 종류를 바꾸거나, 기교의 숙련도를 높이려는 시도를 거듭하며 끊임없는 자기 소외와 자기 소진의 길을 걷곤 하지요. 혹은.. 이토록 노력했는데도 통제에 따라주지 않는 자기 자신, 혹은 타인과 세상을 '잘못된 것'으로 규정지으며 분노와 경멸의 길을 걷기도 합니다.


이제 자아는 진정 깨달아야 합니다. 그 스스로에게 정말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요. 자아는 삶의 모든 것들을 일일이 파악하고 챙기는 주재자의 자리, 이른바 왕좌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앉아 자신의 것이 아닌 위업을 달성하려 애를 썼기에 마땅히 실패했을뿐, 자아에게는 본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자아는 또한 깨달아야 합니다. 타인과 이 세상에도 또한 잘못이 없다는 것을요. 내가 타인과 세상을 통제하려는 대신 진정으로 관계맺고자 손 내밀 때, 이기고 지고의 자존심 싸움을 벗어나 나를 낮추며 도움을 청할 때, 두렵고 떨리지만 취약한 나인 채로 상대에게 고백할 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친절한 응답이 되돌온다는 사실을 자아는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에 진정으로 한계가 있음을 실감해보지 못한 자아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접해도 대개는 개념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여전히 노력과 분석과 통제를 지속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아의 노력에 한계가 있음을, 사전에 언어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언젠가 한계에 부딪쳤을 때, 바로 지금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이것이 예전에 들었던 바로 그 '한계'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한계의 인식으로 인해 그는 자아로서 노력하며 통제하는 것을 멈추고, 실제로 삶을 추동해가며 자신과 세상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자아 이전부터 존재해왔음을, 뿐만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자아를 포함하고 양육하며 도도히 흘러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힘의 이름은 다름 아닌 '생명'입니다.


삶과 세상을 책임지는 것은 바로 그 힘, 생생히 살아있는 생명의 역할이지, 결코 자아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아니었음을.. 그 사실을 자아는 깨닫습니다. 그 믿을 수 없을만치 든든하고 강대하며, 동시에 한없이 안온하고 따스한 힘. 이 우주에 생겨난 이래 한 번도 죽어 없어진 적 없이 '늘 살아있었던' 그렇기에 '생명'이라는 이름이 더할나위 없이 어울리는 그 불가사의한 힘에 의지해 자아는 탄생했으며, 그  힘에 의지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아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책임져야 한다 믿었기에 짊어져왔던 무겁고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흐느껴 울 수 있게 됩니다.. 깊은 안도와 감사함 속에서 말이지요.


그렇다면 자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생명의 아름다움과 당당함, 외로움과 애틋함, 두려움과 불안함, 기쁨과 행복 등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자아에게 주어진 몫입니다. 

 

생명이 스스로를 노래하고 생명 자신을 경험하기를 원했기에 생겨난 주체가 바로 자아이며, 그것이 생명을 기쁘게 했기에 세상에 이토록 많은 자아들이 꽃피어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아란 본래 생명이 생명 자신에게,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바친 선물인 셈입니다.


우리 자신이 선물이기에, 우리는 이제 우리에게 부과되었다 믿었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우리는 그 힘(생명)을 자신의 내부 & 배후에서뿐만 아니라 타인의 내부 & 배후에서도 보고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지지하며 함께 흐르고 있는 하나의 생명임을 실감하기에, 그는 더이상 어느 누구보다도 우월하지 않고, 어느 누구보다도 열등하지 않음을 압니다. 


때문에 그는 존엄하며 동시에 그지없이 평범한 이로서 이웃들과 더불어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생명에 봉사하고 생명을 누리며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며, 자아는 더이상 강박적인 통제욕에 이끌려 한계를 모르는 노력에 자신을 내몰지 않게 됩니다.


통제가 무의미하다면, 노력과 기교는 버려져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 삶에서 아무 짝에 쓸모가 없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노력과 기교가 자아에 의해 사용되며 자아에 봉사되는 대신.. 생명에 의해 사용되며 생명에 봉사될 때.. 자아는 생명과 더불어 그 노력과 기교의 덕분으로 생생히 살아가며 만족할 수 있게 됩니다. 


자아가 자신의 한계를, 자신의 역할을, 혹은 자신의 정체를 깨닫기만 한다면, 그동안 자아가 노력을 통해 얻어왔고 이룩해왔던 모든 종류의 능력과 자원들은 통째로 구원되어 정말로 귀하게 생명을 위해 쓰이게 됩니다. 자아가 100%의 만족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드디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항상 애씀없는 행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Alchemic Linguist-



※ 매주 한 자리에 모여 ABT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실습하면서 끈끈한 지지 그룹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ABT 멤버십>의 멤버를 상시 모집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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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학의 관점에서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심리학 놀이터, 마음과 시선>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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