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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중심 치료 ABT
By 김덕성 . Apr 13. 2017

나밖에 없는 세상의 완성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내가 준비되면 기회가 나타난다, 스승이 나타난다는 식의, 혹은 나는 결국은 이렇게 잘 될 운명이었다는 식의,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일들이 이제 때가 되어 일어나고 있다는 식의 내러티브를 받아들일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런 내러티브를 우선시 할 때 우리는 내 앞에 옆에 주변에 있는 이들의 '존재성'을 무의식적으로 폄하 무시하게 된다.


미리 채택하고 있던 스토리가 원래 잘 될 스토리였다면, 내게 도움을 주거나 이끌어 준 사람은 원래 나타날 사람이었고, 그 사람으로 인해 알게 되고 얻게 된 것들 역시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마땅히 내가 얻게 될 것들이었다는 식의 감수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자기애적 경향성)


즉 나를 위해 혹은 나와 더불어 그것을 함께 해준 타인은 일종의 NPC와 같이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럴 경우 타인이 내게 해준 것들, 나로 인해 타인이 겪어야 했던 것들, 나를 위해 해줘야 했던 것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대한 감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이는 타인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밖에는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NPC의 존재감이 희미하듯이.


어차피 망하고 고통스러워질 거였어. 라는 내러티브를 가진 경우라면 어떨까? 내게 어떤 정성과 도움을 주었던 이라도 그것을 쳐내고 좌절시킨 뒤, 거봐 너도 날 결국 떠날 거였잖아, 어차피 너도 내편이 아니라 네편이었잖아, 그래 어차피 우린 타인이잖아 라고 말한다.(이 역시도 자기애적-자기도취적 경향성)


나의 내러티브가 잘 풀리는 내러티브인 경우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당연히 여김으로써 타인의 존재감을 무화한다. 그 결과는 나밖에 없는 세상.


나의 내러티브가 안 풀리는 내러티브인 경우 타인의 도움과 호의를 불신하고 거부하고 꺾음으로써 타인의 존재감을 무화한다. 도착지는 역시 나밖에 없는 세상.


내가 내러티브를 채택할 때 존재감이 무화되고 NPC가 되어버리는 것은 타인들뿐일까? 당연히 나 자신도 그렇게 된다. 이미 정해져 있는 내러티브 속에서 어떠한 다른 가능성도 없이, 즉 자유도가 없이 정해진 스토리대로만 따라가야 하므로 나 역시 NPC와 다르지 않다.


또한 나 빼고 다들 NPC인 세상이므로, 홀로 이 넓은 맵을 살아있지 않은 NPC들과 더불어 걸을 수밖에 없다. 내가 살아있음을 입증해 줄, 알아봐 줄 어떠한 증인도 가질 수가 없으므로 내가 NPC가 아님을 결코 실감할 수가 없다.


자신의 존재감을 실감할 수 없고 외로우므로 본래의 내러티브를 반복-강화하거나, 수정 변경된 다른 내러티브로의 환승을 시도하게 된다. 이는 내러티브의 소비인 동시에 타인을 소비하는 일이며 자신을 소비하는 일인 셈이다.


그렇게 남겨진 세상은 나밖에 없는 세상이며, 나밖에 없는데 그 나마저 소비해야 하므로 참으로 슬픈 세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러티브 안에서 살기보다 실제 세상을 살기를 소망한다. 관념과 판타지를 붙잡고 의지해 현실을 살아가려 하기보다, 다소 낯설어도 생생히 살아있는 현실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타인이라는 존재가 두려울지라도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말을 들으며, 마음을 나누는 길을 걷기를 원한다.


누구도 외롭지 않고 우리 모두가 함께 존재하기 위해서. 살아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끼며 참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살기 위해서.



항상 애씀없는 행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Alchemic Lingu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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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학의 관점에서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음과 시선 공동대표 / 모든마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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