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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이모저모
By 이야기꽃 . Feb 01. 2016

[그림책 이모저모] 그림을 읽자. 글 없는 그림책

'글 없는 그림책'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그림을 읽자. 글 없는 그림책


안녕하세요? 그림책 이모저모의 이모입니다. (아직 저모는 없습니다.)
오늘은 글 없는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없는 그림책이란 키워드를 검색하시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창의력을 길러 주므로 어린이들의 교육상 더 좋다, 유아의 발달 과정에 영향을 끼친다 등등. 아플 때 딱 맞게 처방되는 약처럼, 책도 '창의력을 길러주는 책', '예의를 길러주는 책', '착한 아이가 되는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좋긴 할까요? 그런 책은 존재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제가 책을 읽어 왔던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였지요.

글에 너무 익숙해진 어른들이 '글 없는 그림책'을 먼저 펼쳐봤을 땐 어떤 기분이 들까요? 저는 처음 글 없는 그림책을 접했을 때, 괜찮은 그림을 모아놓은 책 정도로 밖에 생각을 안 했어요. 거기에 어떤 다른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죠. 대부분의 어른, 아이들을 위해 책을 고르는 부모님들도 그럴 것 같아요. 

"이게 무슨 책이야?"
"너무 성의가 없는 건 아닐까?"
"그림 밖에 없는데 살 필요가 없잖아."


그건 우리가 너무 글을 읽는데만 익숙해져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림을 읽는 법은 어른들도 어렸을 때는 알았지만, 피터팬이 커버린 것처럼 우리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인 독자를 설득할 때 '어린이 창의력 발달에 유용하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수도 있겠어요) 
그럼 어떻게 그림을 읽으면 되냐고요. 그냥 그림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좋은 책을 골라 천천히 천천히 읽어나가면 되는 것이지요. 나머지는 그림들이 다 이야기해줄 테니까요.

이미 다 알고 계실 책이라 생각하지만, 혹시 빠뜨렸을 수도 있는 글 없는 그림책들 몇 권 혹은 작가를 소개할게요. 기준은 그냥 제가 '읽고 좋았더라'입니다. :-)




안노 미쓰마사의 여행 그림책 시리즈           


안노 미쓰마사는 논픽션 책으로 유명한 작가지요. 84년도엔 일본인 최초로 안데르센 상까지 받은 작가랍니다. 여행 그림책 시리즈는 60년도부터 시작해 자신이 다녀온 여행지인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등을 꼼꼼히 그려낸 것이지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한국과는 달리 유럽은 그 변화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그래도 60~80년대의 유럽의 풍경은 지금과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서정적이다 못해 환상적 이기기까지 한 그림들은 마치 중세의 어딘가로 독자들을 데려다주는 것 같습니다. 


안노 미쓰마사 <여행 그림책 스페인 편>

            

안노 미쓰마사 <여행 그림책 이탈리아 편>

                                     

여행 그림책이 사진기로 찍어놓은 풍경 사진과 다른 이유는 바로 건물 사이사이, 나무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인물들 때문입니다. 확대를 해서 보면 이렇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남자, 빗자루를 들고 있는 여자, 그 와중에 응원을 하고 있는 어린이도 보입니다. 손을 번쩍 든 사람, 깃발을 든 사람 응원을 하는 모습도 가지가지지요. 그림마다 이런 인물들이 가득하니, 이들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벨기에의 화가 브뤼겔의 그림들도 떠오르고 말입니다. 

피터 브뤼겔의 그림

              

여행 그림책의 한가지 단점이라면, 똑같은 장소를 실제로 가도 그림책에 있는 그림보다 더 큰 생동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안노 미쓰마사 <여행 그림책> 한림출판사

                    


이슈트반 바녀이, Zoom




Istvan Banyai 출처 : http://blog.cccevents.co.uk/2013/05/28/easy-office-based-team-building-ideas-8/

               


이슈트반 바녀이의 ZOOM은 제목에 책의 내용과 형식이 다 들어 있습니다. 
화면의 왼편은 검은색입니다. 오른 편은 수탉의 볏에서 부터 시작하지요. 다음 장을 넘기면 수탉이 보입니다. 그다음 장은 그 수탉을 보고 있는 어린이들, 그리고 그다음 장은 더 멀리 보이는 아이들과 문...... 


이렇게 이어진 연속의 사진으로는 한눈에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지만, 처음 그 장면을 책으로 맞닥뜨렸을 때는 다음 장에는 무엇이 이어질까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나무는 나중에 알고 보면 액자 속에 있는 나무일까? 이 집은 혹시 텔레비전 안의 화면이 아닐까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다음 장면의 궁금증 그 하나만으로도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장면을 넘겨보았을 때는 뭐가 있었냐고요. 왠지 다른 그림책이 아니라 <줌, 그림 속의 그림>에서는 알려주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네요. 어쨌든 책장을 아직 안 넘겨보신 분은 꼭 찾아서 읽어보세요. 거기엔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있으니까요. 저는 그 마지막 장면이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니까요.


이슈트반 바녀이, <줌, 그림 속의 그림> 보물창고

                                     




데이비드 위즈너의 작업들



데이비드 위즈너는 그 이름 자체로 '글 없는 그림책'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작가죠. 이미 많은 상을 수상해 그 이름과 위상을 널리 알린 바 있습니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들은 초현실적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아요. 상식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믿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건 그의 섬세하고 꼼꼼하고 사실적인 그림체가 한몫을 하고 있지요. 물론 그 그림체를 바탕으로 이끌고 가는 스토리텔링 능력은 두말하면 손가락이 아플 정도입니다.


출처 : http://www.davidwiesner.com


출처 : http://www.davidwiesner.com


출처 : http://www.davidwiesner.com

                                         

대표작인 <이상한 화요일>의 한 장면입니다. 8시 정각이 되자 약속을 한 것처럼 늪지대에 있던 개구리들이 올라가 있던 연잎이 둥실 떠오릅니다. 그리고는 나는 양탄자처럼 개구리를 태우고 날아가지요. 사람들이 사는 동네로 가는 개구리들, 그리고 개구리와 만난 사람들, 동물들. 왠지 지구촌 토픽에서 있었던 일 같기도 하고,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 같기도 한 착각이 드는 책입니다. 어쩌면 정말 화요일 8시에 내가 봤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어쩌면 다음 주 화요일에 볼 것 같기도 하고......

데이비드 위즈너의 다른 책들 역시 글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습니다. 그의 대부분의 그림책은 풍부하고 거대한 상상력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큰 줄기라 마치 팀 버튼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지요. 놓친 책들이 있으면 한 번 한꺼번에 모아 봐도 좋겠어요. 극장에 다녀온 기분이 들 테니까요.


데이비드 위즈너, <이상한 화요일> 비룡소
데이비드 위즈너, <시간 상자> 베틀북




숀탠, 도착


숀탠, <도착>

                                  

'글 없는 그림책'을 정리하면서 숀탠의 <도착>이 나중에 떠오른 이유는, 이 책에 글이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으로 쳐도 페이지가 많은 책이지만, 만약에 작은 그림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크게 그렸다면 백과사전보다 더 두꺼운 책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만큼 압축적으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아, 또 잊었던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의 장르가 판타지였다는 것을요.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세계는 현실세계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지만, 설정상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실적이고 단단한 그림이 책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가 세상에 없는 곳의 이야기라고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어요. 수 십 년 전 흑백 사진과 흑백 필름에서 만났던 것 같은 이야기를 <도착>은 환상적인 그림으로 하지만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숀탠, <도착>

                      

숀탠, <도착> 사계절

                                       




이수지의 그림책



이수지의 경계 삼부작, <그림자 놀이>, <파도야 놀자>, <거울 속으로>.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리스트에서 뺄까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리스트에서 뺄 수 없는 책들입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지요. '그림'책이 아닌 그림'책'에 집중한 일련의 시리즈는 역시 글 없이도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해줍니다. 그림책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녀는 그림자로, 파도로, 거울로 놀이를 하고 있지만, 놀이를 하는 건 소녀뿐만 아니라 바로 이 책의 작가이기도 하죠. 반으로 나눠져 묶인 책의 물성을 이용해 마음껏 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출처 : 교보문고 웹사이트


한 날은 제가 어두운 방에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이수지의 그림자놀이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넘기다가 보니 흰 페이지 (소녀의 공간)에 앞 페이지의 괴물들(상상의 세계)이 비추는 게 아니겠어요? 흰색 배경이라 우연히 앞 페이지가 비친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우연의 효과마저 그림책의 의도와 맞아떨어져 참 재미있었습니다.


출처 : 교보문고 웹사이트

                                         

이수지 작가는 그림책의 소녀와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이 놀이에 참여시킵니다. 오른쪽 페이지에 있는 파도가 왼쪽 페이지로 넘어올 수 없으며, 실로 꿰맨 종이 반대편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되는 건 책장을 넘기는 독자들의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책을 읽는 이들도 책을 펼치는 순간 이 놀이에 기꺼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모두 말없이 조용히 말입니다.


이수지, <그림자 놀이> 비룡소

               

이수지, <파도야 놀자> 비룡소




이지현, 수영장



이지현, <수영장>

                 


이지현의 <수영장>이 해외에서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는 이유는 그의 그림이 따뜻하고 아름다워서인 까닭이 크겠지만, '글 없는 그림책'이라는 형식 역시 큰 몫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아'와 '어'는 너무나 달라, 조금만 달리 번역을 해도 뉘앙스는 물론이거니와 그 뜻까지 다르게 전달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수영장은 글이 없이 이야기가 진행이 되므로 애초에 그런 오류가 발생할 원인이 없습니다. 그림은 만국 공용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이지현, <수영장>

                        

이지현, <수영장>

                                    

반대로 <수영장>에 글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수영장에 풍덩 빠져들어 유영을 하는 소년의 모습을 묘사할까요? 소년과 소녀가 만난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속 생물들을 설명할까요? 글이 붙었다면 이 환상의 세계의 신비함이 반감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신비로움을 글이라는 틀 안에 넣어버리고 말았을 테니까요.  

이지현, <수영장> 이야기꽃




조원희, 이빨 사냥꾼



<이빨 사냥꾼>은 엄밀히 말하면 글 없는 그림책은 아닙니다. 뒷부분에 글이 아주 조금 들어가지요. 그렇지만, 면지부터 시작해 절정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부분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물론 글 하나 없어도 긴박하고 짜임새가 있습니다. 처음 이 책을 더미 북 상태에서 봤을 때도 그랬지만, 완성하고 나서도 영화의 한 장면을 따온 것 같은 그 느낌은 변함이 없더군요(이 책은 더미 북 상태에서는 아예 글이 없었습니다. 출간을 하면서 편집인이 독자에게 어려울 수도 있으니 글을 넣자고 작가를 설득해 글을 넣은 상태로 출간을 했다는 뒷이야기를 살짝 밝힙니다)

그림책의 '사냥 장면' 중 세 장면을 붙여서 보여드리면 그 느낌을 받으실 수 있으려나요.


달리는 발 소리, 쏟아지는 화살, 거기에 쓰러지는 사람까지,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을 넘어서 그리지 않은 소리까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강렬한 색채 대비는 이 책의 내용을 더욱 잘 드러내주고 있지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책장을 너무 빨리 넘기게 돼서 다 읽고 난 다음에, 놓친 부분이 있을까 싶어 다시 읽게 될 거예요.


조원희, <이빨 사냥꾼> 이야기꽃





시작 다음 Before after


지금까지 언급했던 책들은 대부분 이야기 그림책이었죠(여행 그림책은 논픽션이라고 분류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드라마 같은 서사에 힘을 받아, 글이 없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는 픽션 그림책이 글 없는 그림책 형식으로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소개할 <시작 다음>은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논픽션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책입니다. 

안느 마르고 램스타인·마티아스 아르귀 그림 <시작 다음>


왼쪽 페이지엔 '시작'에 해당하는 장면이, 오른쪽엔 '다음'에 시작하는 장면이 있지요. 글 한자 없지만, 이 책은 제 귀에 대고 소리 내어 시를 읽어 주었답니다. '달이 떴어요. 달이 지면 해가 뜨지요.'처럼 말이에요. 새끼 고릴라가 자라면 킹콩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웠던 집은 폐허가 되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보통은 순리대로 또는 자연의 법칙대로 결과가 나타나지만,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는 결과가 오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장면을 반으로 나눠서 시작과 다음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펼침 면도 있어요. 그럼 넘길 때 훨씬 두근두근하답니다. 다음 장면을 맞출 때의 쾌감도 꽤 큰 책입니다. 이런 부분도 있었어요. 왼쪽엔 달걀이, 오른쪽엔 닭이 있는 장면이 있었어요. 달걀이 닭이 되었단 뜻이죠. 다음 장을 넘기면 왼쪽엔 닭이 오른쪽엔 달걀이 있습니다. 다시 그 닭이 달걀을 낳았다는 것이죠. 아, 왼쪽에 닭이 있었던 페이지가 먼저였던가? 갑자기 헷갈리네요. 역시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안느 마르고 램스타인·마티아스 아르귀 그림 <시작 다음>


안느 마르고 램스타인·마티아스 아르귀 그림 <시작 다음>

                

핑크색, 민트색, 연보라색 같은 파스텔 색상이 주로 쓰인 그림들이 감각적이고 세련되어서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작가 2명이 모두 젊은 작가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페이지에 이렇게 생각할 거리와 재미를 많이 던져두다니 내공만은 어리지 않은 작가들이 분명한 것 같아요.


<시작 다음> 한솔수북




글 없는 그림책들 어떠셨나요. 너무 유명한 책들만 이야기했지요.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숨겨진 책들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회엔 명절에 관련된 책을 찾아볼까요? 어떤가요? 그럼 곧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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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출판사 이야기꽃의 브런치입니다. 그림책에 대한 여러가지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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