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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바토 Nov 25. 2019

엄마의 만병통치약

따뜻한 뜨거운 엄마의 식혜

  아무리 아파도 한 대접만 먹고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뿐해지는 음식이 있다. 엄마표 식혜다. “이거 먹고 빨리 나아.” 우리 집에선 아플 때 항상 엄마가 식혜를 해주셨다. 먹고 나서 하루 정도면 다 나았던 것 같다. 임신기간엔 임산부한테 안 좋다고 하여 못 먹고 수유할 때도 젖 마른다고 못 먹고 요즘은 다이어트 하느라 음식 자체를 줄이다 보니 식혜를 먹을 일이 없었다.  


  심하게 아플 때면 언제나 “식혜 해줄까?” 하며 긴 시간을 들여 끓여 주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는 물었다. “1번? 2번? 3번?” 정해진 3번이라는 대답과 함께 뜨거운 식혜 한 대접을 가져다주셨다. 3솥을 끓여 각 솥에 번호를 붙여 원하는 식혜를 고르는 것이다. 미리 끓여 조금 식힌 식혜도 있고, 팔팔 끓고 있는 식혜도 있고, 가끔 설탕이 듬뿍 들어간 달고 단 식혜도 있다. 정해진 건 없다. 끓자마자 먹는 고소한 아침밥. 우리 집에선 밥을 많이 넣는 편이라 한 끼 식사로 먹을 때도 있었다. 달콤하고 고소한 밥이 술술 넘어가는 게 좋았다.


  엿기름을 두 세 시간 물에 불려 짜내고 가만히 두어 가라앉힌다. 맑은 물을 곱게 따라낸다. 엄마는 식혜가 살짝 탁한 것이 좋다며 맑은 물에 딸려오는 가라앉은 엿기름을 조금 더 섞어서 만들었다. 엿기름 우러난 물과 갓 지은 밥을 섞어 두었다가 밥알이 조금씩 떠오르면 끓여 내고 원하는 당도까지 설탕을 녹여 내면 완성이다. 하루 걸리는 엄마의 수고가 달콤한 식혜가 되어 몸속의 세균과 바이러스를 물리쳐 주었다.


  혼자 밥을 해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랐고 식혜가 너무 먹고 싶은 날이었다. 엄마의 손을 빌리긴 미안한 마음에 혼자 사부작사부작 만들어 밥솥에 취사를 눌러 두고 나갔다 왔다. 한데 집에 식혜가 없었다. 이상한 마음에 엄마에게 물으니 집이 온통 식혜 밭이었단다. 밥알을 불리는 단계에서 끓이는 바람에 죽이 되고 끓어 넘치고 난리가 났었다. 엄마 손을 덜려던 일이 손을 더 들게 만들었었다. 미안하고 고맙다.


  아직도 식혜는 최애 음식이다. 당분이 높아서 참고 있는데 또 먹고 싶다.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아 아쉽다. 초코우유라고, 설탕물이라고, 사이다라고 좋아하는 음식으로 둘러대며 한입이라도 먹여보려 애를 써 한입을 겨우 먹여도 별로 인지 먹지를 않는다. 달콤하니 맛있는데 그 맛을 몰라준다. 집에서 만들어도 먹을 사람이 없어 양이 점점 줄어든다. 처음엔 큰 솥 3개를 끓이셨는데 이젠 한 솥. 그나마도 버리게 된다고. 그래서 그런지 요즘 자주 감기를 달고 사는 것 같다. 따듯한 식혜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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