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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서울> 나도 혼자서

by 김재용

"할머니, 나 진짜 정신병인가 봐. 다 너무 후회되고 걱정돼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 나도 나가야 되는 거 아는데, 다시 아무것도 아닌 때로 못 돌아가겠어. 거기밖에 돌아갈 데가 없는 것도 아는데, 내가 너무 초라하고 지겨워. 나한테 남은 날이 너무 길어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 할머니, 나 너무 쓰레기 같아." 미지는 삼 년을 집 안에서만 고립된 채 생활한다. 이 대사는 고립의 가운데 할머니에게 속을 털어놓는 미지의 말이다.

20250602055236523hzwz.jpg ⓒ 미지의 서울 of tv N. All right reserved.

고립을 선택한 원인을 하나만 꼽을 수는 없겠으나, 가장 중대한 것은 역시나 실패다. 미지는 4학년이 되어서야 구구단을 뗄 만큼 공부에 소질이 없었지만, 달리기만큼은 누구보다 빨랐다. 주변의 기대를 한껏 받았다. 그러나 중요한 시합에서 넘어지며 부상을 당했고, 선수 생활을 포기해야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변의 기대는 달리기 선수로서의 유미지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미지는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주변의 기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립을 선택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자기소개를 하게 된다. 그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직업이나 신분으로 나를 소개한다. 어렸을 때는 "안락초등학교 6학년 2반 김재용입니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복지사 김재용입니다."가 나를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직장을 그만둔 순간부터는 나를 소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직장에서 퇴사하고 반년을 집에서 보냈다. 수식어가 없는 나를 소개할 길이 없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예상되면 그곳에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유미지처럼 고립된 시간을 보냈다.


고립되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주변 사람은 각자 삶으로 바쁘다. 바쁜 것은 둘째고, 내가 말 거는 것이 상대에게 민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점차 아무 할 일이 없는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여긴다. 고립된 시간이 오래되면 상대와 대화를 멈추고, 오로지 자기 자신이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된다. 성적을 우선하는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는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부분 성장과정에서는 MBTI와 같은 심리성격유형 검사가 나를 알아가는 유일한 과정일 텐데, 고립의 상황에 놓이면 끝없이 스스로와 대화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이때 긍정적인 대화를 나눌 리가 없다. 특히 스스로를 쓸모없다 여기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과거 기억 속에서 내가 잘못한 것을 찾고,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달라졌을까 후회하고, 쓸모없음을 증명하는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좌절한다. 이렇게 고립은 너무나도 쉽게 외로움이, 우울이, 불안이 된다.


과거보다 현재에 고립된 사람이 문제로 여겨지는 것은 전문성에도 이유가 있다. 직업이 전문화되면서 중도에 포기하거나, 어떠한 이유로 전문가가 되기를 실패하거나, 더는 전문적인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고립의 위험에 놓인다. 우리나라는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듯하다. 북유럽 국가의 경우에는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게 취업과 그동안의 생활을 지원하고, 상대적으로 직업에 귀천을 두지 않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고, 공부 외에 다른 선택지를 배우며 자라서 직업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직업 실패뿐 아니라, 중대한 고립의 원인이지만 가볍게 여기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는 주변의 안전망 회복이 아닐까 싶다. 사회복지현장에서도 고립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 것이 익숙하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개인에게만 집중하면, 고립 당사자 역시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있다고 여긴다. 고립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프로그램은 상담, 취미, 직업 개발 등 대부분 개인에게서 해결책을 찾는다.


미지에게는 자신의 아픔을 내어 보일 수 있는 할머니가 있었고, 나에게는 후배가 있었다. 반년 동안 고립된 채로 살아갈 때, 나는 면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고립된 채 살아가다 보면 씻는 것이나 식사, 수면 등 기본적인 삶이 무너진다. 후배는 우리 집에 찾아오기도 했고, 때로는 나를 밖으로 불러내기도 했고, 걱정된다면서 종종 전화를 하기도 했다. 고립으로 인한 우울이 깊어질 때 즈음이면 언제나 그가 다시금 나를 끌어올렸다.


후배뿐 아니었다. 함께 사는 강아지는 하루에 적어도 두 번은 산책을 나가고 싶어 했고, 덕분에 나는 해를 쬘 수 있었다. 해를 쬐는 것은 우울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고립은 이미 말한 것처럼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혼자 벗어나기 어렵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무작정 밖으로의 외출을 강요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변에 고립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순간의 실패가 영원하지 않음을, 내가 다른 사람의 안녕에 포함되어 있음을, 고립에서 벗어나려 노력할 때 곁에 지지해 줄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나의 후배가,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가, 미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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