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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가 대기업 김 부장> 책임이 밥 먹여 준다.

by 김재용

"니 그거 어디서 났노?" 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응? 친구가 빌려줬다." 아버지는 내게 더 묻지 않았지만 얼른 친구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그러나 며칠 후에도 빌려온 것을 돌려주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어머니가 추궁하기 시작했다. 나는 태연하면서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친구가 빌려줬다니까."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나는 조립하던 레고를 해체해서 박스에 담아야 했다.


나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내 상반신 크기만 한 레고 박스를 들고 아버지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사실 레고는 훔친 것이었다. 문방구까지 가는 내도록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한편으로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1998년에는 CCTV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고, 문방구를 대체한 다이소처럼 바코드를 찍어서 판매하지 않았고, 아니라고 우기면 상대방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물론 나에게 그렇게 윽박지를 능력은 없었다.


요즘은 학교 앞에 문방구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오십 미터 정도 거리에도 여러 개의 문방구가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문방구부터 갔다. 문방구를 돌아다니며 아버지 탐문 수사에 응한 지 수차례 끝에 마지막 문방구에 도착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레고를 가지고 놀 시간이, 그리고 내 완벽 범죄가 완성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거 여기서 파는 겁니까?"라고 아버지가 물었고, 그 뒤로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삼십여 년 시간이 흐른 탓도 있겠지만, 그 뒤로 벌어진 일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새우깡이 사백 원쯤,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 아이스크림은 백 원, 나의 하루 용돈은 오백 원이었는데, 레고는 이만 원 정도 했던 듯하다. 물가가 그때보다 세 배정도 올랐으니 이만 원은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문방구 주인에게 사과했고 값을 치렀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문방구 주인에게 쓰레기 통이 어딨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레고 박스를 열어 쓰레기 통에 전부 버렸다. 값을 지불했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문방구 주인이 오히려 말릴 정도였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레고를 갖고 놀지 못할 것에 대한 아쉬움인지, 남의 물건을 훔친 것에 대한 죄책감인지,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곳에서 울었다. 물론 집에 가서 볼기짝을 신나게 맞았다.


문방구에서와 달리 집에서는 확실히 맞은 것이 아파서 울었다. 내 기억으로는 울다가 지쳐서 잠든 것이 태어나 처음이었다. 똑바로 눕지도 못하고 엎드려 잠을 잤는데, 엉덩이가 따끔거려 잠에서 깼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의 엉덩이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고 있었다. 역시나 확실한 것은 속옷이 내려진 채 자는 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낮에 보인 책임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수치심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죄책감이 내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된다면, 수치심은 내 존재에 대해 타인의 평가에 기반한다. 이를 테면 물건을 훔친 것이 옳지 못한 행동임을 스스로 깨닫는 것은 죄책감의 영역이지만, 나로 인해 아버지가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나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함께 느낄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개별로도 느낄 수 있다. 나는 '책임지는 어른의 모습'을 죄책감보다 수치심에서 배웠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드라마 김 부장도 그렇다. 그가 물건을 훔친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에게 책임을 회피한다. 그럼에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알량한 자존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그의 삶이 변하는 것은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도 '책임지는 어른의 모습'을 보이면서부터다. 자신의 행동으로 사랑하는 가족이 고통받고 위기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수치심을 느끼고 변화를 다짐한다.


나는 드라마 주인공인 김 부장과 우리 아버지가 겹쳐 보였다. 아들의 잘못을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는 것이 쉬운 선택임에도, 아버지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라는 어려운 선택을 했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사죄하며 문방구에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시선도 받았다. 그러나 수치심을 대가로 책임감을 아들에게 훈육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란 나는 책임감을 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아마도 내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에도, 일 하는 과정에서도, 일상의 삶에서도, 책임이라는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김 부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였을 때, 나는 문방구에서 버려진 레고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그날 내게 보여준 것은 단순한 훈육이라기보다 삶의 방식을 가르쳐 준 것에 가깝다. 그렇게 보면 상투적인 것이 아니라, 책임이야 말로 나를 올바르게 살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5102118025364488_l.jpg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of JTBC.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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