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부끄러움을 견디는 방법

5400원짜리 주스로는 살 수 없는 어른의 의무

by 제이

"선생님, 왜 이렇게 돼요?"


아이들의 질문만큼 선생님을 힘나게 하는 것도 없지만, 그만큼 선생님을 괴롭게 하는 것도 없다. 전자는 선생님이 스스로 답을 가지고 있을 때의 얘기고, 후자는 그렇지 않을 때다. 학생의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선생님은 사실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 답을 직접 제시하든, 아이들의 안에서 스스로 이끌어낼 수 있게 유도하든 간에, 무릇 선생님이란 존재는 항상 답을 알고 있는 존재여야만 한다.


그리고 난 오늘 그러지 못했다.


오늘 수업 때는 초등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실천한 사례에 관한 도서를 다뤘다. 하지만 오늘의 도서를 다룬 교안이 조금 이상했다. 문제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답안도 애매한 답이 쓰여있었다. 게다가 더 심하게는, 내가 그 문제를 연구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 평소보다 수업 준비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리고 아이들은 의문이 나는 점에 대해 사정 없이 질문을 해댔다. 원래 가장 영리하고, 가장 진리에 관해 가차없는 태도를 가진 반이었다. 나는 그저 엉성하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눈빛이 화살처럼 따가웠다. 등줄기로 식은땀 한 방울이 툭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찌어찌 수업이 끝났다. 업무를 모두 마친 뒤 나는 꿀꿀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학원을 나섰다. 이디야에 들러 달달한 딸기바나나 쥬스를 사서 마시며 퇴근길을 걸었다.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래도 부족했다. 지하철에 타서는 집에 가서 무엇을 시켜 먹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문득,


내가 지금 기분을 돈으로 사고 있구나, 깨달았다.


별로 독특한 깨달음도 아니다. 어딘가 책에서 본 듯한 문장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잠시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내 돈을 지불하고 있구나.


그럼 유튜브를 볼까. 아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건 시간으로 기분을 사는 행위였다. 이 모든 것들의 본질을,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그간 흔하게 했던 행위들, 즉 돈으로, 시간으로 좋은 기분을 사는 일들을 이젠 완전히 그만두자고. 아니,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주 그러지는 말자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고.


내 노력으로 기분을 변화시켜 보겠다고 결심했다. 공부하고, 일하고, 운동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인정과 성취감으로 인해 기분을 좋게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했다. 이건 아마도 힘든 일이겠지,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것이리라. 낭비하는 돈, 헛된 시간낭비로 인해 잠시 좋아지는 기분을 포기한다는 것, 그것들을 포기하는 쪽으로 날 움직여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건, 어른이 되는 과정 중의 일부가 아닐까. 비겁하게 타협하지 않고, 필요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 20대 시절의 나는, <의무론>을 쓴 키케로를 비웃었지만. 좋아하는 일과 해야하는 일 사이에서 고르라면, 항상 좋아하는 일을 고르던 나였지만.


이제는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하기로 한다. 힘든 몸을 이끌고, 내일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책을 펼치기로 한다. 기분 전환을 위해 유튜브를 켜는 대신 말이다. 내일 아이들에게 줄 '제대로 된 답'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른스러운 사과일 테니까.



202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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