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Park Nov 09. 2023

[커리어 성장] 분리(Detach)의 중요성

얼마 전에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후배가 SOS 미팅을 요청했어요. 만나보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성이 났더라고요. 멀리서 봐도 씩씩대고 있길래... 도망갈까? 살짝 고민했지만 눈이 마주쳐서 대화가 시작되었죠.


성이 난 이유는 다양했어요. 스타트업에 꼰대가 더 많다는 이야기부터, 체계가 부족한데 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직속 상사가 후배의 업무 영역을 잘 모르다 보니 자꾸 응원만 해준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은 자료에 자꾸 이상한 그림을 넣는다는 말까지.. 폭발 직전이더라고요.


누구나 활화산 같은 분노의 시기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열심히 들으면서 맞장구를 쳤는데 이 친구가 제 반응을 살피더니 의견을 묻더라고요. 자기 이직 잘한 거 맞냐고.


와? 갑자기 턴이 넘어오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단 거 좀 먹자고 디저트를 시켰어요. 제가 생각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벌어야 했거든요.


그날 이 친구에게 했던 조언을 한마디로 줄이면 분리(detach) 에요. 제가 느끼기에 그 당시 후배는 본인의 일과 상황에 너무 접착(attach)되어 있더라고요. 마치 세상 모든 걸 현미경으로 보는 셈인 거죠. 그러니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일 수밖에 없죠. 몰입은 정말 중요하지만 때로는 일에, 현실에서 나를 분리하고 적당히 거리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특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분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 의도적 노력이 없으면,


1. 본질을 놓칠 가능성이 있어요.

후배가 이직을 한 근본적 이유는 산업에 대한 매력 때문이었거든요. 전략 업무를 하는 친구라 매크로의 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소위 성장하는 산업군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 해 보겠다는 거였어요. 대화를 하다가 제가 이 부분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네가 이직을 한 본질적 이유가 훼손되었는지를 묻자 잠시 생각하더니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2. 나의 가치/에너지를 제한적으로 사용해요.

후배한테 본인이 이번주에 회사에서 가장 많이 말했거나 생각한 단어를 적어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본인 스스로 단어를 적으면서.. 뭔가 느끼는 게 있는 표정으로 절 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함께 일할 때 그 친구가 자주 썼던 단어들을 맞은편에서 적었어요. 놀랍게도 일치하는 뉘앙스의 단어가 거의 없었어요. 본인이 가진 장점이 하나도 발휘되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3. 변화와 혁신에 저항해요.

파워포인트에 그림을 넣어서 분노했다길래 팀원들이 왜 그림을 넣은 거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 회사는 텍스트보다 스케치로 대화를 하는 걸 선호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왜 스케치를 선호하냐고 했더니 관계도를 봐야 해서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그럼 너도 스케치를 사용해 보면 안 되냐고 했더니 그건 자신이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네가 잘하는 건 전략적 사고지 ppt 따위가 아니라 (그런데 진짜 잘 만들긴 해요)


4. 건강이 나빠져요.

저랑 만나기 전에 일주일 연속으로 술을 마셨더라고요.


소위 일잘러일수록 나와 일을 순식간에 접착시켜서 치고 나가는 건 참 잘하는데 나와 일을 분리시키는 건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도 늘 몰입을 강조하지 비몰입 반몰입을 이야기하진 않잖아요. 그래서인지 방향이 살짝 어긋난 채로 지나치게 몰입해 있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조직을 망치는 사람들도 몰입을 안 한 게 아니에요. 너무해서 문제지)


다행인 대부분의 몰입러들은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똑똑한 사람들이라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질문 몇 개 만으로도 잠깐의 분리(detach)를 거쳐 다시 접착(attach) 후 질주의 단계로 나아가더라고요. 수용력만 있다면요.


그래서 제 후배는요? 요새 그림으로 소통하는 게 젤 효율적이고 재밌다며... 자랑을 하더라고요.


내가 못 산다 진짜. 또 몰입했어..

작가의 이전글 [culture] 탑리더십의 캘린더로 알 수 있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