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 #1
캘리포니아의 여름은 저 하늘 위에 떠있는 태양이 날 잡아먹는 건가 싶을 정도로 덥고 또 덥다. 물론 습한 한국 여름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정말 더운 날에는 태양이 꼭 나만 향해 레이저를 쏘는 기분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낮에 겨울이(내 강아지)가 열병에 걸리거나 발이 델까 걱정돼, 주로 밤에 도그 파크에 갔다. 그날은 밤에 남편과 일이 있어 낮에 도그 파크를 갈 수밖에 없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놀아주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여름은 그렇다. 그렇게 따가운 햇살도 또 그늘 밑에 있음 괜찮은 게 캘리포니아 여름이다. 나랑 겨울이 둘이서 그늘 밑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데 입구에서 통통한 검은 라브라도 리트리버가 들어왔다. 오며 가며 자주 봤던 강아지다. 겨울이가 가서 같이 놀자고 하니 이 성격 좋은 녀석이 겨울이랑 신나게 놀아준다. 내가 '놀아준다'라고 표현 한 이유는 겨울이는 아직 아가 강아지여서 이 통통한 녀석보다는 에너지도 훨씬 넘치고 조금 더 러프하게 놀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착한 녀석은 겨울이에게 싫은 티 하나 없이 다 받아주고 놀아준다. 다른 강아지가 겨울이에게 시비를 걸면 이 듬직한 녀석이 우리 겨울이 편을 들어준다. 신기해하니 스카우트네 아빠가 스카우트는 원래 여자들에게 친절하다고 한다.
도그 파크에서는 강아지들끼리 놀면 자연스럽게 개부모들은 서로 스몰토크를 한다. 강아지들의 관한 얘기부터, 동물 병원, 날씨, 그냥 별별 얘기가 다 나온다. 검은 강아지의 주인이 자기 개를 소개해줬다 -- Scout, 남자아이, 6살, 라브라도 리트리버, 아빠랑 같이 일인용 소파에 앉아 티브이 보는 걸 좋아하고, 아빠 밖에 모르는 바보란다. 스카우트네 아빠는 캠핑과 사냥을 즐기는데 오리나 작은 동물들을 사냥하면 스카우트가 멀리 있는 것도 그렇게 기가 막히게 갖고 온다고 했다. 아이들이 노는 그동안 이 아저씨랑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물론 모든 개부모들과 친해지는 건 아니다. 그냥 잘 안 맞고 불편한 사람들도 있고, 약속하고 만나는 게 아니다 보니, 도그 파크에서 자주 마주치려면 오는 시간이 비슷해야 하고, 강아지들끼리도 잘 맞아야 한다.
스카우트네랑은 파크 오는 시간이 비슷해서 그 여름 낮 이후에도 자주 마주쳤다. 밤 8-9시 사이에 파크를 자주 갔던 나랑 겨울이는 그 시간에 오는 스카우트네랑 자주 놀았다. 그러다가 보니 스카우트네 아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 60대, General Contractor, 은퇴를 하면 애리조나로 이주해 살 계획이라고 했다. 아내와 의붓아들과 살고 있고, 재밌는 부분은 아내와 의붓 아들과 매주 목요일에 모노폴리 게임 나이트를 한다는 점 (그래서 목요일은 아저씨가 도그 파크에 평소보다 조금 늦게 왔다). 의붓 아들은 원래 함께 살지 않았는데 구조조정으로 일에서 해고 된 이후로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의붓 아들에 대한 걱정이 많은 아저씨였다. 이 동네로 이사온건 10년 전쯤인데 원래는 Laguna Beach(바닷가 도시)에서 살았는데 손녀를 갑자기 데리고 살게 되어 오게 됐다고 했다. 어떤 이유로 갑자기 손녀를 데리고 살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그 당시에는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
스카우트네 아빠 과거 연애 얘기부터 가족 얘기 (특히 자식들 자랑, 어느 나라든 자식 자랑은 공통 주제인 거 같다), 인생 얘기, 어렸을 때 사고 얘기, 당신이 어렸을 때 얼마나 사고뭉치였는지 별별 얘기를 다 해줬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미국 이야기를 해줬다. 난 원래 다른 사람 인생 얘기 듣는 걸 좋아해서 스카우트네 아빠랑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엄마, 아빠가 멕시코에서 걸어서 건너온 스카우트네 아빠 가족들은 South LA에서 살았다. 좋지 않은 동네였지만,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도록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다고 한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그때는 이웃 주민들끼리 서로 돌봐주고 서로 위해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아빠는 복싱 선수 출신, 엄마는 똑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했다. 엄마 젊었을 적 시절 사진을 봤는데 키도 크시고 미인이셨다. 키가 작은 편이고 땅땅한 아저씨는 엄마를 닮았어야 됐다고 곧 잘 농담을 하곤 했다.
젊은 시절 스카우트네 아빠는 연애와 여자에게 미쳐서 버는 돈을 다 여자에게 쓰곤 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건설 일을 시작한 아저씨는 꽤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좋은 차를 타고 비싼 꽃을 보내고, 근사한 레스토랑들을 데려가느라 쓴 돈이 어마무지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조금 후회하기도 하지만 정말 재밌었다고 한다. 연애를 좋아하고 로맨스를 사랑하는 게 남미 사람들의 특징인 거 같다. 그래서 스카우트가 여자들에게 친절한 건가 싶다. 이것도 부전자전인가?
자주 자식들 자랑을 하고, 걱정을 했던 스카우트네 아빠는 7살 때 아주 큰 교통사고를 겪었다고 했다. 아저씨 말에 의하면 2주 정도를 깨어나지 못하고, 온몸의 뼈가 망가질 정도의 사고였다고 한다. 갈비뼈, 골반뼈, 팔까지 크게 다친 사고였고, 그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음? 아저씨 아들 둘 있잖아요? 손녀도 키우셨다면서요?" 되물었다. 알고 보니 아들 둘은 전처가 첫 번째 결혼 때 얻은 자녀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오면서 아저씨와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전처는 그 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와 결혼했지만, 무섭고 난폭한 남편에게서 도망쳐 어린 두 아들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다고 한다. 아저씨는 이 두 아이들에게 아빠가 되어주었다. 친아빠가 돌아가신 날, 엄마가 그래도 베네수엘라로 장례식에 가보지 않겠냐고 했지만, 성인이 된 아이들은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아빠는 오직 한 분뿐이에요.' 그 얘기를 하면서 아저씨는 벅차 보이는 거 같았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 아들 둘을 가슴으로 낳은 아저씨는 작은 아들의 딸까지 5년 가까이 키웠다고 한다. 손녀랑은 거의 매일 통화를 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식 자랑들 5할을 이 손녀 자랑이었다. 작은 아들은 직업 군인인데 해외로 파병이 되어 있던 와중에 in-home care 요양사인 와이프가 본인이 돌보던 치매 환자의 돈을 훔친 걸로 체포가 되어 버려서, 이 아이가 오갈 곳이 없어지자 아저씨와 현 와이프 분 이 동네로 바로 이사를 와 이 아이를 키웠다고 한다. 이 일로 아들과 손녀의 생모는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2살 때 데리고 와서 7살까지 키웠는데 너무 똑똑하고 현명한 아이라고 한다. 현재는 18살이 된 손녀는 매년 할머니, 할아버지와 Disney Land를 가고, 학교에서, 재혼한 엄마와 그 새 가족들과 무슨 일이 있으면 할아버지를 제일 먼저 찾는다고 한다. 엄마가 재혼한 새 가족이 워낙 부자여서 아이에게 금전적으로는 부족함 없이 해주는 거 같지만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채워주지 못 하는 거 같다며 자주 불평을 하곤 했다. 이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이 아저씨는 아이가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똑똑한 아이니 잘 해결해 나갈 거야'라고는 하지만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감출 수가 없는 거 같다.
스카우트의 아빠를 만나면서 다시금 가족이라는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국은 여전히 입양률도 낮고, 혈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강하지만, 스카우트네 가족처럼 피가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가족들이 많을 것이다. 아저씨는 전처의 아이들을 친자식들처럼 키웠고, 이혼한 이후에도 계속 아이들을 자신의 아들들이라고 생각하고 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도 친아빠보다 아저씨를 아빠라고 여겼다. 아저씨네 가족은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가족의 의미와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가족이였다. 결국, 가족이라는건 함께한 시간과 사랑이 만든다고 믿는다. 피로 이어져 있다 해도 모든 가족들이 이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건 아니니까.
결론: 그 해 여름, 아저씨를 만나서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신 아저씨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