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심심해(深心解)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by 치유 컴패니언


우리에게는 잡초라는 것도, 모기에 물리는 것도, 원하지 않는 비도 없다. 바람과 비, 모기와 뱀이 모두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나면 겨울의 눈도 우리 자신이고, 여름의 꽃도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인디언 주술사》, 류시화 역, p.143-


어제 나는 병원 접수창구에서 담당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안 됩니다. 환자를 데려와야 합니다.’라는 그의 말투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들은 단박에 거절에 나의 몸과 마음은 소용돌이쳤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당혹스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주변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이게 뭐야?’‘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갑작스레 당했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어머니 허리 시술한 병원에 약을 타러 가서 맞닥뜨린 일이다. 시술 후 지금까지 가족관계 증명서를 가지고 아무런 문제 없이 약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안 된다는 것이다. 굉장히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 무례하다고 느꼈다. 사무적이고 고압적이고 기계적인 싸한 느낌이었다.


당장 어머니 약을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도 올라왔다. 참 무책임한 병원이라는 생각도 올라왔다. 지금 시골에서 허리가 아파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는 게 제정신인가? 무조건 안 된다는 사람 앞에서 당황스러웠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성을 높이자니 왜 안 되는지에 대해 따지는 말밖에 없었다. 책임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사정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다음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절차를 지키겠노라고 부탁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안 된다는 거였다. 그 순간에 내가 ‘내가 만만하게 보여서? 하찮아 보여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훅 올라왔다. 순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했다. 화의 감정이 올라왔다. 가슴이 꽉 조이는 느낌이 올라왔다.


3달 전에 약 처방받을 때는 예고도 없었다. 다음번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와야 한다는 말을 의사나 병원 직원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다. 병원 게시판에 이런 내용을 올려놓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느닷없이 담당 의사가 다른 병원으로 가서 안 된다는 것이다. ‘장난하나?’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당신이 나 같은 입장이면 무조건 안 된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라고 따지고 싶다는 충동이 목까지 차올라왔다. 숨을 크게 몇 번 쉬었다. 다시 한번 내 사정을 차분히 전달했다. 지금 환자가 ‘죽을 것 같다.’고 호소를 하는 데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는 대안은 없는지? 물었다. 그것까지도 모른다고 하면 병원을 한바탕 뒤집어 놓을 거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때서야 뒤에 앉아있던 직원이 다가왔다.


병원 규정을 들먹였다. 지키지 않으면 병원과 보호자인 나까지 벌금을 물게 된다고 협박성 발언까지 하면서 막아섰다. 지금 내가 범법자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이성적인 이야기로는 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몸에서 화의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한 번 뒤엎지 않으면 내가 타 죽을 것만 같아 온몸이 움직이는 느낌이 올라왔다. 가슴이 뻐근함을 느꼈다. 다시 심호흡을 몇 번 했다. 나는 이 상황에서 내 몸과 마음에서 일렁거리는 에너지 흐름을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잠시 가만히 침묵하면서 그 사람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이 사람이 ‘나는 절박한데 나를 그저 그런 민원인으로 보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 순간 갑자기 그 직원이 그런 느낌을 알아챘는지, 말투가 고분고분해졌다. ‘사정을 충분히 알겠지만, 병원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음을 양해해달라’‘사전에 알려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라고. 그리고 그가 대안을 제시했다. 지금까지의 처방전을 출력해서 드리겠다. 환자가 인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이 처방전을 참고해서 새 처방전을 받아 약을 타면 된다는 것이었다. 심호흡을 몇 번 크게 했다.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체국으로 가서 지방에 사는 동생에게 사정을 전화로 말한 후에 처방전을 보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혼자 1시간 정도 속마음 털어놓기 작업을 하겠다고. 아내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기다려 주었다.


방안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목을 천천히 이쪽저쪽으로 돌리면서 내 몸에서 보내주는 신호를 알아차렸다. 가슴이 뻐근한 느낌이 올라왔다. 오른쪽 눈이 뻑뻑하고 왼쪽 목 뒤가 딱딱하게 긴장된 느낌이 올라왔다. 나는 천천히 내 몸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를 지켜준다고 애썼다!’‘고생 많이 했다.’고 말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양손으로 살살 토닥였다. 눈을 살짝 감았다. 심호흡을 천천히 세 번 했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렸다. 내 마음의 무대(의식 공간)에 어머니의 아픈 모습, 병원 담당 직원 이미지와 목소리가 올라왔다. 올라오는 대로 이름을 불러주고 올라왔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올라온 것을 날것 그대로 올라왔다고 마음속으로 말을 했다(읊었다). 덧붙이거나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짜증 나는 감정이 올라왔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내가 이런 것도 하나 해결을 못 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올라왔다.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아무런 예고 없이 맞닥뜨린 직원의 매몰찬 거절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올라왔다. 병원에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왔다. ‘그래야 다음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을 테니까.’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내가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벌어진 일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래서 다시 화난 감정이 올라왔다. 내 마음의 무대에 무엇이 올라오든 이름을 불러주고 인정하고 올라왔음을 받아들였다.


나는 ‘오늘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 당황했구나’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났구나’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어릴 적 기억이 올라왔다. 동네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과자로 애들을 마음대로 부려 먹던 X의 이미지가 올라왔다. 나도 먹고 싶은 마음에 뺑뺑이도 돌고 그 애가 시키는 대로 다 했던 이미지가 올라왔다. 그 애는 과자를 주지 않고 나에게 욕설 같은 별명을 부르면서 골려대는 이미지가 올라왔다. 그 애의 아버지는 시골의 경찰관이었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화난 감정이 올라왔다. 참을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이 올라왔다. 때려주고 혼을 내주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왔다. 내가 그 애를 내 마음대로 혼내주고 통제하지 못해 아쉽다는 욕구가 올라왔다.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내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먼지를 찾았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내 마음의 무대에 무엇이 올라오든 이름을 불러주고 인정하고 올라왔음을 받아들였다. “그래, 그랬구나”“그렇게 억울해했구나, 몰랐다. 미안하고 잘못했다.”라고 말을 하면서 감싸 안고 다독였다. “그렇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그래, 그렇게 하고 싶었구나.”“그래도 되지, 뭐, 안 될 게 어디 있어.”“괜찮아, 마음속으로 실컷 외쳐봐!”라고 속으로 읊었다.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가슴이 꽉 조이는 느낌이 내 마음의 무대에 올라왔다.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가슴에서 보내주는 느낌을 몇 번을 더 마음속으로 이름을 부르면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내 마음의 무대에 숨 쉬는 것이 부드럽다는 느낌이 올라왔다. 들숨과 날숨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나는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의 에너지를 느꼈다. 지금은 그런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뿐이다. 오늘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일어난 사실은 완전히 받아들이고 항복했다. 그 기억에 묻어있던 생각, 감정, 감각, 욕구, 충동, 바람, 이미지, 연상 기억은 정리되었다. 한결 평온한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하는 데 더 단순하고 명료하다는 느낌이 올라왔다. 오늘 내가 경험했던 그 기억은 먼지가 좀 더 말끔하게 닦여진 상태로 다시 저장될 것이다. 다음에 그 기억은 더 부드러운 상태로 올라오겠지! 그때마다 일어나는 먼지는 다시 심심해(深心解)하자! 피할 것은 피하고, 부딪힐 것은 요령 있게 부딪힐 수 있는 순간순간의 재치와 지혜를 닦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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