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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집

여객창

by 잡귀채신






법정동, 행정동, 도로명 주소. 정확하게만 하는 것은 모두가 멀다. 박물관의 안내문처럼 낡아 있다. 역마다 바뀌는 전광판처럼 할 일을 할 뿐이다. 내 얼굴을 반쯤 지우고 반쯤 남겨놓은 밤 기차의 유리창에 내 고향이 비쳤다. '고향'이라는 말조차 고색창연해진 시대에 나는 조금 그립다고 생각했다. 내게 돌아가고 싶은 그 곳의 계절이 있다. 그것은 밥알이 푹 익어 퍼지는 냄새, 골목 끝 평상 옆의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와, 졸음 쏟는 정류장, 가로등이 놓쳐버린 단서 같은 그 얼굴이 엉켜 있다. 그 위로 1500세대가 털썩 앉아버리고, 그런 채로 지도 밖으로 밀려 버렸다. 기차는 어딘가로 가는 중지만, 유리창에 그냥 한 번 더 이마를 대어 보는 마음뿐이다.






P.S. 난 곳과 자란 곳이 다르면 고향은 두 개가 되고, 쌓인 추억이 크면 세 개가 되고, 유난히 발 가는 곳이 있으면 네 개도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태어났다는 이유로도 다섯개가 된다. 그리운 고향은 저 편 아닌, 완벽한 내 편. 그곳에도 이곳에도 달이 뜬 것이 증거다. 모를것 같아서 확인시켜주려고 추석에 큰 달 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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