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준의 모티브-207]
몇 년 전 양재천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티셔츠 하나를 봤습니다. 등에는 'KOREA ARMY'라고 크게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엔 우리나라 육군인가 싶었는데, 티셔츠를 입고 뛰고 있던 사람은 외국인 여성이었습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거 아닐까.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BTS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습니다.
토요일 저녁 팀코칭 회의를 시작하기 직전, 동료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오늘 BTS 컴백 무대 하네요. 두 아들 때문에 알게 된… 오늘은 컴팩트하게 해볼까요?" 가족이 함께 기다리는 그룹. 광화문 일대를 통제하고 컴백 무대를 여는 규모. 그 메시지를 보며 새삼 실감했습니다. BTS는 이미 아이돌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구나.
저는 BTS 팬은 아닙니다. 그러나 코칭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꾸 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돌에게 군 복무는 인기에 치명적이라고들 합니다. BTS도 멤버들이 하나씩 입대하면서 긴 공백기를 맞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남아 있는 멤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맏형 진이 전역하고 돌아온 뒤 예능, 다큐, 해외 방송을 쉴 새 없이 소화하자, RM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이 그렇게 뛰어다니니까 팬들이 공백을 덜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옆에서 멤버들이 맞다며 동의했습니다. 과장도 아니고 치켜세우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팀 안에서 누군가의 역할을 진심으로 인정한다는 것. 생각보다 드문 일입니다.
BTS를 보면 멤버마다 역할이 분명합니다. 전체 방향을 이끄는 리더가 있고, 음악을 만드는 멤버가 있고, 무대를 완성하는 퍼포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들이 서로를 빛나게 합니다. 예전에는 영어 인터뷰를 RM이 대부분 맡았지만 요즘은 제이홉이 많은 부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소년 같던 그들은 어느새 청년이 되었고, 그 변화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팀은 갈등 때문에 헤어진다고 하잖아요.
공연을 앞두고 준비를 하면서, 뷔가 진에게 무대 간격을 맞추기 위해 빨리 움직여 달라고 했습니다. 진은 자기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고, 두 사람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고 긴장이 흘렀습니다. 그 순간 RM이 끼어들었습니다. "10분 남았어. 팬 들이 며칠 동안 줄 서서 기다렸는데, 아마추어처럼 이러지 말자고." 날 선 말이 아니라, 지금 집중할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주는 한마디였습니다. 무대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멤버들은 호텔방에 모였습니다. RM은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당사자가 아닌 멤버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나도 실수를 많이 해. 너도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형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돼" 이런 의견들을 통해 조금 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충분히 이야기가 오갔다 싶을 즈음, 이런 말이 들렸습니다. "쟤네 부끄러울 테니까 우리 나가자." 화해를 강제하지 않고, 둘만의 공간을 내어준 것입니다.
나이 먹은 저도 갈등을 다루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장면이 더 오래 남았는지도 모릅니다.
코칭을 하며 많은 팀을 만납니다. 좋은 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경쟁하기보다 협력하고, 누군가 빛날 때 함께 기뻐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덮지 않고 꺼내 이야기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며 팀도, 개인도 함께 자랍니다.
BTS를 보며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팀이란 단순히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라는 것을.
그러면서 이런 질문이 제게도 남습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성장시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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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준 (joon@achievecoach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