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부 고발자

by J이렌



다니엘은 그날 아침, 출근길에서 평소보다 더 무거운 숨을 쉬었다.

열차 안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Sunnyvale의 풍경은 변함없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뭔가 달라 보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오늘, 드디어 선을 넘게 된다는 걸.

가방 안에는 지난 3개월간 모은 모든 증거가 들어 있었다.

PDF 출력본, 전표 내역 스크린숏, 시스템 권한 변경 로그, 승인 이력, 이메일 캡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한 장 짜리 요약 시트.

제목은 단순했다.

[Sharon Palantella Transaction Loop — Unauthorized Approval Matrix]

이 파일 하나면, 감사팀은 모든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문제는 — 그걸 넘길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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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전 9시 12분.

새로운 메일 하나가 다니엘의 메일함에 도착했다.

보낸 사람: auditor-eypartners@protonmail.com

제목: "긴급: Palantella 계약 관련 추가 확인 요청"

다니엘은 잠시 커서를 멈췄다.

‘auditor’라는 단어, EY Partners라는 이름, 문장은 그럴싸했다.

하지만 무언가 어색했다.

그녀는 발신자 주소를 자세히 확인했다.

평소 EY와 주고받던 메일 주소는 @ey.com.

지금은 protonmail. 익명 메일 서비스였다.

그녀는 조용히 메일을 열었다.

본문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Daniel, 지난번 송부하신 파일 중 NexaFront 관련 사항이 누락되어 있었습니다.

가능한 빠르게 전체 파일 압축본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압축 비밀번호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부 전용 포털로 업로드해 주세요.”

링크는 Dropbox였다.

공식 감사팀이 사용하는 SFTP 포털은 사용되지 않았다.

그 순간, 다니엘은 확신했다.

이건, 누군가의 테스트다. 함정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업로드하지 않았다.

대신, 시스템 보안 담당자에게 조용히 메시지를 남겼다.

“‘eypartners@protonmail’로 최근 외부 로그인 시도 기록 확인해 주세요.”

답장은 짧았다.

“내부 VPN으로 우회된 접속 기록, 오늘 오전 9시 08분. 접속 위치: HQ 3층.”

HQ 3층. 비키가 있는 인사실.

다니엘은 조용히 웃었다.

“드디어, 건드렸구나.”

그날 오후, 그녀는 외장하드를 열고 기존 파일을 복사했다.

Judgment_006.xlsx

새로운 탭이 추가되었다.

[Fake Requests Log]

첫 줄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보를 요청하는 자’는 종종, 정보를 감추고 싶은 자일 수 있다.”


********

“안녕하세요. EY 감사팀의 제니 박입니다.”

화상 미팅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다니엘은 침착하게 미소 지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요청하신 파일 관련해, 조금 더 설명드릴 내용이 있어요.”

그녀는 ‘공식적’인 채널이 아닌, ‘상담 요청’이라는 이름으로 미팅을 잡았다.

내부 고발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재무 보고와 관련된 우려 사항’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제니는 다니엘의 목소리에 담긴 긴장감을 읽어내고 있었다.

“제니, Sharon Palantella라는 프로젝트, 혹시 예산 상세 항목 열람 가능하세요?”

제니는 당황한 듯 화면을 넘겼다.

“아··· 그건 지난번에 Vicky 쪽에서 ‘클래스 A 민감도’라고 해서 저희 접근이 제한된 상태인데요···”

“그럼 대신, Altavia, Syntellis 이 두 업체로 들어간 커미션 내역, 혹시 기억하세요?”

제니는 멈칫했다.

“···그쪽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매 분기마다 반복되는 금액. 날짜도 묘하게 비슷하고, 메모라인도 안 맞고···”

다니엘은 숨을 들이켰다.

“그 흐름, 이어지는 지점이 Sharon Palantella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하나의 파일을 공유했다.

Excel로 된 그 문서는 수백 개의 전표 흐름이 정리되어 있었고, 승인자는 Bill G., 최종 결재는 Johnny K., 생성자는 Vicky R.

그리고 그 흐름을 전부 뒤에서 컨트롤한 사람 — Otterlim.

제니는 화면을 응시한 채, 말을 잊었다.

“···이거, 정말 다니엘 님 혼자 정리하신 거예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어요.”

다니엘은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이 숫자들이 저를 도왔죠. 진실은 언제나 기록 속에 있어요.”

제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저희 파트너급에서 바로 보고해야 할 사안입니다. 공식적으로 재조사 요청을 넣겠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 과정에서 다니엘 님이 다치지 않도록 제가 최대한 조율할게요.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다니엘은 웃었다.

“제 이름이 장부에서 사라졌을 때부터, 이미 각오한 일이에요. 이제 돌이킬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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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이 끝나고, 그녀는 회의실에서 나와 조용히 복도로 걸어 나갔다.

비키의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서는 누군가와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식으로 문서를 요청하면 안 돼요.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죠. 감사팀이 너무 많이 알고 있어요.”

다니엘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제 당신들이 숨길 수 있는 시간은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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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Johnny가 회의실에서 비공식 임원 미팅을 열었다.

Otterlim, Vicky, 그리고 핵심 개발팀 몇 명만 참석한 회의.

그 자리에 다니엘은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퍼진 불안감의 기류를.

누군가 파일을 넘겼다.

감사팀이 인보이스 패턴을 재분석 중이다.

Sharon Palantella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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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무렵, 그녀는 자리에 앉아 시스템을 로그아웃하며 마지막으로 문서를 하나 열었다.

그건 릴리가 떠나기 전 남긴 공유 폴더 속, 임시 저장된 메모였다.

“우린 숫자를 조작할 수 있을지 몰라도, 숫자는 기억해.

언젠가 누군가 이걸 볼 수 있기를. — L.T.”

다니엘은 그 문장을 천천히 읽고, 메모장에 덧붙였다.

“봤어, 릴리. 그리고 이제, 알릴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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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train 밤 열차.

차창 밖엔 달빛이 흐르고 있었다.

다니엘은 조용히 지친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나는 내부고발자야. 하지만 난 배신한 게 아니야.

진실을 지킨 거야.

장부는 거짓말을 싫어하니까.”


이젠, 잠시 멈춰도 될까?

너무 오래, 너무 깊이 버텼으니까.



*** 휴가를 가다


"다니엘 한 씨.

이번 분기 보너스 지급 내역이 승인되었습니다."

이메일 알림이 조용히 그녀의 인박스를 두드렸다.

화면에는 짧은 문장과 함께 금액이 기재돼 있었다.

$18,000.

놀랄 정도로 정확한 금액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시애틀-밴쿠버-빅토리아 1주일 일정을 감당하기에 딱 맞는 액수.

"회사가 죄책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입막음으로 쓰기엔 적당한 금액."

다니엘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숫자는 정직했고, 의도도 읽히는 법이었다.

아무튼 그간 감사 준비로 밤낮으로 일했으니 그녀와 그녀의 팀원들은 그 보너스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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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 초,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당신 아드님이 체육 시간에 친구와 다퉜어요. 큰 건 아니지만, 한 번 보실 필요는 있어요."


퇴근 후 교실 한쪽에서 아이를 만났다.

"괜찮아?"

"별일 아냐. 그냥··· 나보고 엄마 일 늦게 끝난다고 놀렸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아이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같이 야구장에 갔다.

평일 저녁 경기는 관중도 없고, 조용했다.

아들은 맥주 대신 콜라를 마셨고, 나는 하이라이트가 끝나기 전 집에 가자고 했다.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고, 누구도 화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듯이.


휴가 며칠 전, 남편의 병원 예약이 잡혔다.

병원 대기실은 늘 불편하다. 공기는 차갑고, 조명은 침묵을 강요한다.

나는 잡지를 펴고 읽는 척했다. 머리는 숫자를 생각했고, 손은 남편의 무릎 위를 감쌌다.


"혈액 수치가 좀 떨어졌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숨을 삼켰다.

"추가 스캔은?"

"다음 주로 잡죠. 너무 빠르면 몸이 못 따라갑니다."


병원 복도를 걸으며 그는 말했다.

"이번 주말엔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머릿속으로 마감 일정을 계산하고 있었다.


남편은 치료를 받고 있었고, 나는 일정을 조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최소한의 정상'을 연기 중이었다. 



“Daniel, 우리 드디어 여행 가는 거야?”

남편은 약간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딸은 소파에 앉아 모바일 앱으로 숙소 사진을 넘기고 있었고, 아들은 배낭을 싸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다 준비할게요. 엄마, 진짜 푹 쉬어요.”

딸의 말에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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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붐비는 시장의 활기, 신선한 꽃다발과 생선 냄새.

그녀는 여유롭게 스타벅스 1호점 앞에 섰다.

마치 모든 시작이 이곳에서였다는 듯.

“엄마, 여기서 가족사진 찍자.”

딸이 폰을 들고 외쳤다.

다니엘은 억지로라도 표정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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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그랜빌 아일랜드.

노을이 물든 바다와 거리 공연.

그러나 그녀의 눈엔 흐릿한 스프레드시트가 떠올랐다.

Altavia, Syntellis, Sharon Palantella.

이름은 잊어도, 숫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엄마, 진짜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쉬자.

회사는 이미 잊었잖아?”

아들이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잊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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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유럽풍 건축이 줄지은 해변 도시.

가족은 함께 케이블카를 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바다와 하늘, 그리고 떠나는 페리 한 척.

그 순간 다니엘은 깨달았다.

지금 이 휴가가,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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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으로 뭐 할 거야?”

딸이 갑자기 물었다.

“그 회사 계속 다닐 거야? 아님 뭐 새로운 거?”

다니엘은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잘 모르겠어.

근데, 다시는 숫자에만 파묻히진 않을 거야.”

“그럼, 회계 그만둘 거야?”

“아니. 난 회계사니까.

하지만, 이제는 내가 숫자를 쫓는 게 아니라,

숫자가 나를 따라오게 만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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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날, 다니엘은 빅토리아의 한 벤치에 앉아 조용히 노트를 꺼냈다.

커피를 마시며, 노트 한 페이지에 단 한 줄을 적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짓말로 숫자를 만든다.

이제는 그 모든 걸 감시할 차례다.”

그녀는 새로운 다짐을 가슴에 새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짧지만 강렬했던 싸움.

그리고 그 이후의 고요함.

하지만 다니엘은 알고 있었다.

정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심판은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찾아온다.


다음화 예고 — 〈장부의 심판〉


사라진 메모, 조작된 인보이스, 바뀐 승인 라인.

그리고 조용히 쌓아온 하나의 폴더,

Judgment_001.xlsx


다니엘은 이제 마지막 장부를 연다.

이 장부는 단순한 회계 파일이 아니다.

이건 선언이다. 심판이다. 그리고 — 복수의 시작이다.


“나는 계산을 끝냈다.

이젠 그들이 값을 치를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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