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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진아 Aug 23. 2022

조이풀펀드, 1년.

그러니까 일종의 펀드 운용 보고서

2021년 6월 16일.

좋아하는 팀이 만든 캠페인이 런칭하는 날이었고, 캠페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참여했는데 첫 번째 참여자가 되는 기회(?)를 얻었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또 이 팀의 사업 감사를 맡고 있기도 하고(엣헴), 또 열흘 정도 있으면 회사에 입사하고 첫 월급을 받는데 그 월급이 이전 달의 일주일치 일한 것까지 더해져서 조금 더 나올 예정이고. 이렇게 해야 할 강력한(?) 이유가 세 가지나 있어서 둘이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약간의 돈을 보냈다. 그리고는 감사인사와 테이크 아웃한 초밥 사진을 받았다. 기분이 더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이걸 계속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월급의 아주 작은 부분을 떼어서 세상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는 일을 하는 내 친구들에게 맛있는 밥을 한 끼 사면 어떨까, 하고. 근사한 저녁 식사는 아니어도, 혼자 먹었을 때 '맛있다' 싶은 점심식사 한 끼 정도를 내가 살 수 있다면?


이렇게 조이풀펀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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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월급 받잖아, 라는 핑계

조이풀펀드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데에는 빌라선샤인을 운영하면서 받았던 많은 격려와 사랑이 영향을 끼쳤다. 자원이 아주 풍족하지 않은 조직이나 프로젝트를 이끄는 리더가 되면 프로젝트나 조직의 입장에서 크게 생각하느라고 나 자신에게 좀 각박해지는 게 있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예쁜 걸 살 때도 두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결국 안 하는 선택을 할 때가 많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각박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각박하게 만드는 월급이 문제다. 리더의 월급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기 때문에 비용과 월급을 다 지출하고 남은 돈 중 가져갈 수 있는 만큼을 가져가기 쉽고(폐업하면서 내 월급 정산을 했는데, 회사를 운영하는 동안 가장 적게 책정한 내 월급을 풀로 다 받은 것은 한 달도 없었다. 더 얘기할 수 있지만 오늘은 이 얘기를 하는 날이 아니므로 계속 하던 얘기를 해보자면..) 그러다 보면 혼자 먹는 밥에 쓰는 비용은 다른 선택지들에 늘 밀린다. 이걸 아는 친구들은 내가 창업 준비하며 파일럿을 하던 1년을 합쳐 3년 내내 '난 월급을 받잖아.'라는 핑계(?)를 대며 밥을 사고, 커피를 사고, 과일과 차를 보내면서 나를 격려하고, 응원해주었다. 그 마음에 기대어 어떤 시기를 보낸 사람이 '나도 월급 받잖아'라는 핑계를 대면서 밥을 사고 술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전개 아니야?


처음엔 그냥 나랑 친구들만 아는 작은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작은 일에도 이름을 붙이면서 생색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는 걸로 시작했다. 회사에서 부르는 영어 이름을 zoey라고 하기로 했는데, 회사에서 주는 월급으로 운영하는 나만의 펀드이기 때문에 'Zoeyful Fund'라고 이름 붙였다. 다짜고짜 Joyful하지 않은 것도, 그래도 한글로 쓰면 이유를 알 수 없게 신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좋은 일하면서
맛있는 거 먹으면 안 돼?

이제 다음에 할 일은 펀드 운영 프로세스를 정하는 일이었다. 모든 펀드에는 나름의 운용 철학과 정책이 있고, 이에 기반한 투자 대상이 분명해야 하고, 또 LP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이익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또 혼자 하는 프로젝트의 이점은 뭐냐. 이런 것들을 그냥 내가 세우면 된다는 것이다. 또 안 세워도 그만이지만, 이름을 짓는 것만큼 그라운드룰이나 운영 정책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잖아?


일단 조이풀펀드의 대상은 '세상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는데 필요한 일을 하는 내 여자 친구들'이었다. 너무 광범위한 요건이라 하나의 조건을 더 붙이자면, '그 일을 하는 프로젝트나 조직을 이끌고 있는 리더'였다. 멋있는 여성들의 무대를 만들어서 무대에 서는 남녀 성비의 지구적 균형을 맞추려고 했던 것처럼(맞음), 정말 쥐꼬리만 한 돈이라도 여성들에게 가도록 해서 투자금의 전 지구적 성별 균형을 맞춰보려고 한 것도 맞지만! 그보다 내 주변엔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자기가 가진 재능을 써서 새롭게, 그리고 어렵게 일하고 있는 멋있는 여자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월급이 들어왔지만 각종 비용이 다 나간 폐허 같은 나의 통장에서 이들에게 점심을 살 비용을 보전한 뒤 카카오페이로 보낸다.'는 아주 간단한 운용 방법만 있으면 '이렇게 일해서 친구에게 점심을 사줄 수 있다'는 뿌듯함이 이익으로 돌아오는 펀드 운용이 가능했다. 이렇게 느슨하고 마음대로인 계획을 세워놓고, (맛있는 걸 먹은 힘으로 다음 달까지 파이팅 어쩌고 이런 거 전혀 필요 없는) 그냥 친구가 맛있는 것만 먹으면 되는 내 마음대로 펀드를 2021년 7월부터 시작했다.


이 펀드는 2021년 7월,
남한 판교에서 시작되어

7월의 월급날부터 매달, 친구들에게 카카오페이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번 달엔 누구에게 보낼까,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냥 보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시간이 기쁘고 좋았다. 7월엔 마침 생일을 맞은 친구가 있어서 처음으로 생일 선물을 현금으로 했다. '내가 조이풀펀드라는 걸 하는데... 그냥 혼자 맛있는 거 사 먹는 펀드야. 맛있는 거 사 먹어.'라는 말과 함께 카카오페이 봉투를 보내면 끝. 그러면 맛있는 밥 사진이 오기도 하고, 또 어떻게 썼는지 얘기하며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 것이 없기도 했는데 이건 또 이 나름대로 좋았다. 점심을 먹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오랜만에 프로젝트팀 다 모이는 날이라 1인 1 빙수 했어'라고 사진을 보내는 친구도, 보고 싶었던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 다 나름대로 자기 같다는 것도 좋고, 그냥 뭔가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니 또 좋았다. 그렇게 12월까지 월급날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며 조이풀펀드를 운용했다.


이래서 투자자가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조이풀펀드를 하는데 영감을 준 친구 중 하나인, 전)댚요님, 현)선배님인 현선님에게 펀드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랬더니 며칠 뒤에 '진저티에서 기금 운영을 하는 게 있는데 거기에서 조이풀펀드에 투자를 하고 싶어요.'라는 연락이 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처음엔 일을 키우고 싶지 않고, 또 혼자 느슨하게 해오던 일에 부담이 생길까 봐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두 달여간의 실랑이(?) 끝에, 그 사이에 진저티의 기금 뿐만 아니라 <창고 살롱>의 전혜영 대표님의 투자금까지 매칭된 상태로(???) 조이풀 펀드에 투자자가 생겼다. 어떻게 쓰든, 조이풀 펀드가 운영하고 싶은 대로 운영하면 된다는, 진저티프로젝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여성들이나 프로젝트에 이렇게 연결되어 응원할 수 있다면 그게 임팩트라는 멋있는 말과 함께. 따로 조이풀펀드의 통장이 없었던 상황이라 이걸 받기 위해 카카오뱅크 통장도 새로 만들었다. 만들고 계좌번호를 공유한 날,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투자금이 들어왔다.

저렇게 금액을 칠하지 않고 편집이라는 걸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요...그래도 어떡해 이게 낸데!

그래서 2022년의 1월부터 6월까지는 진저티프로젝트와 혜영님의 도움으로 조이풀펀드를 운영했다. 이전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했지만, 느낌이 조금 달랐다. 운용하는 입장에서  깐깐하게 조건을 보게 되었다기보다는 진저티는 어떻게 돈을 쓰더라?라는 생각을 같이 하게 되었다.  올해 초는 투자신의 분위기도, 스타트업 운영 환경도, 정치적 상황도(대선...대선이 있었죠...) 여러모로 어려운 부분이 많았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주변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이 토로하는 어려움, 그래도 계속 해보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말하자면 일종의 투자 정보가 되어 투자금이 집행되었다. 아마도 진저티프로젝트가, 혜영 님이 자신의 여자 동료들에게 돈을 쓴다면 이런 순간에 쓰겠지, 하는  집행의 이유가 되어 주었다. 점심값을 보내는 것에서 늦은 밤, 응급티타임 항목이 집행목록에 포함되었다. 이래서 어떻게 돈을 쓰느냐만큼, 누구의 돈을 쓰느냐도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2022년의 상반기였다. 6 말에 조이풀펀드 통장에 435원을 남기고 시즌1 종료되었다.


이렇게 1년, 시즌1을 끝내며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들의 삶이 덜 나빠지고, 더 다양해지는데 자기의 재능과 힘을 쏟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건 언제부터 시작된 내 바람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민단체의 정책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 정도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게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라고 생각한 게 내가 기억하는 이 문제의식의 시작점이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변화의 열매를 모두가 누리면서,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은 그걸 해내는 사람들이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것, 그걸 그냥 없는 척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좀 비겁하게 느껴진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딱히 답은 없어서 고민하다가 친구들과 <디모스>를 하게 되면서 이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생각이 그 이후의 사이드 프로젝트와 창업에도 영향을 미쳤고, 또 조이풀펀드를 하게 했지.


여전히 확실한 답도 없고, 또 해결을 위한 자원이 있지도 않지만, 내 상상력도 자원이라면?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시간과 재능이 자원이라면? 이걸 요구할 수 있고 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자원이라면? 그냥 크게 생각하지 않고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가 일 년 동안 개인적인 기쁨을 준 것과는 별개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아마도 일터에서 동료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이래서 사이드 프로젝트와 본업은 떼려야 뗄 수가 없음). 이 경험이 본업에 영향을 미치고, 또 본업에서 경험한 것이 조이풀펀드 시즌2를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언젠가 또 하게 된다면!


거창하게 마무리하고 있지만, 친구들에게 점심 한 끼를 사는 프로젝트 '조이풀펀드'의 시즌1이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시작할 때 몰랐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이렇게 소식을 전해도 되나? 싶지만(그리고 이게 소식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게 있었다는 걸 남겨두고 싶어서. 그리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 대신 할 일을 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어서, 그리고 조이풀펀드의 투자자가 되어주신 좋은 동료들, 진저티프로젝트와 혜영 님에게 같이 이런 일을 만들었다고 전하고 싶어서 정리했다.


다들 지금보다 덜 견디면서, 좀 더 기쁘게, 세상 중요한 일들을 해나가길.

그 여정을 옆에서 볼 수 있어 늘 영광이에요.


+ 펀드를 집행한 조직이나 개인을 특정하고 싶지 않아하지 않았다. 그러려고 시작한 프로젝트도 아니고, 이걸 사전에 고지하면서 엄청난 걸 주는 그런 프로젝트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러나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만 시즌2가 시작된다면, 그때는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여봐라, 하고 할 예정이니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돈 싸들고 기다려죠. 또는, 더 재미있는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도 환영합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본 포스팅은 <진저티프로젝트>와 <창고살롱> 전혜영 대표님의 도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인들은 이런 글이 쓰이고 있다는 걸 모르시지만요 :) 이 훌륭한 조직들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그 훌륭함을 더 자세히 알아보아요!


::: 창고살롱 :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만들고 싶은 여성들의 온라인 멤버십 커뮤니티 인스타그램

::: 진저티프로젝트 : 개인과 조직의 건강한 변화를 위한 실험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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