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배우는 속도에 마음을 맞추는 일
시킨 대로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
운동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며 70대 회원님이 연락을 주셨다.
예전에 PT를 받았을 땐 그저 힘든 체력운동만 반복해서 아쉬웠다고 하셨다.
이번엔 엉덩이 근육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설득하지 않아도 무엇이 우선인지를 알고 계시다는 게 참 기뻤다.
몸의 기능이 제대로 쓰이는 상태가 탄탄히 받쳐줘야 근력운동의 강도를 높일 수 있다.
기초가 불안한 상태에서의 강도 높은 운동은 결국 부상을 부른다.
이는 운동학적으로도 명확하다.
신경근 협응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하를 올리면 근육은 제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보상 움직임으로 대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근육의 ‘힘’보다 ‘타이밍’이 우선이다.
트레이너의 역할은 단순히 자세를 교정하는 게 아니다.
회원이 자신의 몸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
그게 내가 생각하는 트레이너의 일이다.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회원님의 동작이 잘 나올 수 있는 방향, 그리고 그 방향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방법이다.
움직임을 배운다는 건
‘이렇게 하세요’라는 지시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동작의 느낌이 어떤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몸이 스스로 감각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배움의 출발점이다.
특히 '대체 어떻게 했던 거지?'라며
스스로 감각을 되짚고 그 느낌을 떠올리며 반복할 때
그 순간이야말로 몸이 스스로 배우는 시간이다.
움직임은 쉽지 않다.
없던 감각을 만드는 일은 ‘모르더라도 계속하는 힘’에 달려 있다.
이건 운동학에서 말하는 암묵적 학습의 영역이다.
설명보다 ‘직접 느끼는 반복’이 더 깊은 학습으로 이어진다.
나 역시 내 몸을 잘 쓰는 법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다.
매일 연습해도 어떤 날은 여전히 모르겠고,
몇 달이 지나서야 조금씩 느껴지는 게 있었다.
1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도 있고,
3년이 지나서야 새삼 깨달은 것도 있다.
그래서 안다.
몸의 기능을 새롭게 배우는 일은,
기존의 움직임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는 반복의 과정이라는 것을.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반복을 통해 자연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운동 단위의 효율적인 동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근육이 아니라 ‘신경’이 먼저 변한다.
손주가 있는 나이대의 회원님과 운동을 하면,
나는 이 여정이 얼마나 더딘지 안다.
그래서 함께 걸어야 한다.
동작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은 나의 몫,
그 동작을 잊지 않게 만드는 반복은 회원님의 몫이다.
가끔은 일주일 두 번뿐인 수업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운동이 되는 단계’ 이전, 기능을 만드는 단계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 답답하지만 그 단계를 통과해야 비로소 몸을 온전히 운용할 수 있다.
나는 그 단계를 견디고 통과하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트레이너의 진짜 역할이라고 믿는다.
운동 과제를 내드렸을 때,
회원님은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
그 한마디에 여러 마음이 스쳤다.
정작 그 말속엔 진짜 필요한 투자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곧 생각했다.
아마 내가 아직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고,
운동이 주는 변화를 경험으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말속엔 여전히 운동의 두려움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 두려움을 함께 넘어가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진짜 트레이닝이라는 걸,
나는 다시 배운다.
회원님보다 내가 더 조급했다.
내가 함께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할수록
이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려 애썼다.
나의 조급한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잘한다'는 건 '빨리 변화시키는 것'만이 아니었다.
더디지만 분명히 변하고 있는 성장을 알아보고 독려하며
회원님의 속도에 맞게 함께 천천히 나아가는 것 또한
내가 필요한 트레이닝이라는 걸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