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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대신, 듣는 법을 배우다

by 글쓰는 트레이너

트레이너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수업의 모든 초점을 '운동을 알려주는 것'에 두었다.
동작을 보여주고, 자세를 고쳐주고,

진심은 다했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회원님에게 질문하기보다,

내가 알고 있는 걸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두려웠다.


한국에서 트레이너로 산다는 건
'모른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자격증과 수상 경력이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세계,
트레이너는 늘 '잘 아는 사람'처럼 보여야 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다.
아는 척했고, 잘난 척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회원의 몸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식'은 쌓았지만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가르치는 일’을 멈추고
'보는 일'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에는 정답이 없다.

같은 자세라도 각자의 몸이 느끼는 정답은 다르다.

움직임의 언어도, 감각의 표현도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겐 "가슴을 열어보세요"가 통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견갑을 뒤로 당겨보세요"가 더 와닿는다.


트레이너의 언어가
회원의 몸으로 번역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순간이 찾아오면,
그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몸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 과정을 '감각의 발견'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발견의 순간은
트레이너가 아니라 회원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배움의 과정에 있다.
그 사이 수많은 몸을 만나며 깨달았다.

'큐잉'은 표현에 불과하고,
진짜 중요한 건 그 말로부터 느껴지는 감각이라는 것.


그냥 “엉덩이에 힘 주세요”보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밀어보세요”가 통할 때가 있다.


결국 좋은 트레이너란,

동작이 되지 않는 이유를 관찰해 해결점을 찾아내고,

동시에 같은 동작을 수십 가지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정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던진다.
"이 느낌 어때요?"
"지금 어디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으세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의 몸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그 사람 역시 자신의 몸과 대화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의 움직임을 좀 더 편하게 만들어줄 뿐

내 언어를 더이상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제 나는 답을 주기보다 기다린다.
그들의 입에서,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몸이 스스로 말하기를.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나 또한 다양한 몸의 언어들을 배우고 연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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