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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자 Sep 06. 2024

개굴개굴

마흔 초반, '곱게 늙고 뒤끝 없이 가자.'로 남은 삶의 지표를 정했다. 하지만 지표는 보슬비에도 축 늘어지고 부채 바람에도 흔들린다. 인생은  목표대로, 계획대로, 그리고 절대로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인생은 청개구리 같은 놈이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2024. 09. 01

 9월 7일 태백산 트레일 러닝 13k는 나의 첫 트레일 러닝 대회다. 첫 대회를 위해 뜨거운 여름 내 광교산을 뛰어다녔다. 본격적으로 트레일 러닝을 하려고 한 건 아니다. 가을 마라톤 대회를 위해 선택한 혹서기 훈련법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동네 뒷산 트레일 러닝은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이다. 황토 밭이었다가 계단이 나타나는 다양한 지형과 예상 불가능한 업 다운 코스는 나를 달리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업힐 구간에서는 가슴이 터질 것처럼 숨이 막히고 이걸 왜 오르나 싶다가도 정상에 닿아  산 아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오르길 잘했다'라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다운힐 구간에서는 넘어질까 두렵기도 하지만 '이렇게 빨리 달리는데 숨이 안 차네. 나 은근 잘 달리네'라며 또 자화자찬한다.

 대회를 일주일 앞둔 일요일이라 나와 남편은 대회 거리만큼 달렸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대회 당일 컨디션만 좋으면 3시간 안에 완주도 가능하다 싶다. 첫 트레일 러닝 대회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진다.


2024. 09. 02

 4일 전부터 눈앞에 검은 지렁이들이 꿈틀거렸다. 검색을 해보니 비문증이란다. 읽어보니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아 신경 쓰지 않았다. 노안이 오긴 했지만 아직 1.2/ 1.5 시력 보유자로 눈 건강은 자신 있는 나다.

월요일 오전. 모든 근로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오전 내내 모니터 앞을 벗어나지 못했다. 집중할수록 시야에 검은 지렁이들이 소나기 내리듯 쏟아졌다. 쉬면 괜찮아지겠다는 생각에 점심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오후 근무를 시작하려고 눈을 떴는데, 검은 지렁이 소나기는 국지성 검은 지렁이 호우로 변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감을 느꼈다.

 

한 시간 일찍 퇴근해 동네 안과에 들렸다. 접수 직원에게 증상을 얘기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동공확장 검사가 필요하다 했다. 어느 병원을 가도 선 검사 후 진료는 국룰이니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 동공확장 검사 후 의사를 만났다. 해맑은 나의 표정과 달리 의사의 표정은 심각했다.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습니까?"

"4일 전쯤요."

"알레르기가 있습니까?"

"비염이 있지만 심하진 않습니다."

"음...... 눈을 자주 비비십니까?"

"아니요."

"음.... 응급실로 가셔야 하는데, 요즘 응급실 사정이 좋지 않아 바로 치료가 될지."

"응급실요? 왜요?"

"여기 보시면, 오른쪽 눈 망막이 많이 찢어졌어요. 저희 병원 환자 중 가장 심한 경우에 속하네요. 이 정도면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셔야 하는데 그럼 치료가 늦어질 테고, 그렇다고 그냥 두면 실명될 수 있는 상황인데."


 의사는 잠시 망설이더니 응급환자를 그냥 보내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최선을 다해 응급 레이저 시술을 하겠다고 했다. '실명'이라는 단어에 겁이 났다. 머리 회전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의사에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의 나였다면 무슨 시술인지? 시술의 부작용은 없는지? 이 병원 실력은 어떤지? 다른 병원에 가서 진단을 다시 받아야 되는지? 등 찾아보고 물어봤을 텐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그곳으로 가서 검사를 받고 안약을 넣고 눈에 렌즈를 끼고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레이저 시술이 너무 아프고 무서워 얼굴의 점이나 기미 시술도 받지 않는다. 그런 내가 눈알에 레이저를 쏘는 시술을 받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술을 하는 동안 누가 송곳으로 내 눈알을 반복적으로 찌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간호사는 내 머리가 뒤로 빠지지 않게 있는 힘껏 내 뒤통수를 잡았다. 나는 유치원 아이처럼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놈의 나이가 뭔지. 두 손으로 안쪽 허벅지를 꼭 잡았다. 그리고 다급할 때만 소환하는 '주기도문'을 외웠다.

 시술 후 의사는 예상보다 부위가 크고 레이저가 닿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동그랗게 감싸지 못했단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잘 아물기 기대해 본다고 했다. 이게 무슨 얘긴가? 잘 됐다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애매모호하게 얘기하는 의사에게 종합병원으로 옮기겠다 하니, 가고 싶으면 가도 되지만 이번 시술 결과를 보고 가도 괜찮다고 했다. 가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 같았다. 한 달 뒤에 경과를 보자며 과격한 운동은 하지 말라고 했다.


"이번 주에 트레일 러닝 대회가 있는데, 거기 나가도 되죠?"

"마라톤 같은 달리기요? 절대 안 됩니다. 대회 나가기 전에 발견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신 겁니다. 만약 그냥 나가셨다면 바로 실명되셨을 거예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고개조차 흔들지 마시고요"


 바로 실명이라니, 말을 너무 막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그만큼 심각한가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달리기 싫다 싫다 노래를 불렀지만 막상 의사가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달리기가 좋다. 새로 시작한 트레일 러닝의 재미도 이제 막 알게 되었는데 못 나간다니 속이 상했다. 더운 날씨에 땀 흘리며 훈련한 시간도 아까웠다. 다음에 나가면 된다는 남편의 위로도 도움이 안 됐다.  달리기. 그래 그건 그렇다 쳐도 고개까지 움직이지 말라니. 그건 의사가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 '목에 깁스를 해야 하나요?'라도 되묻고 싶었지만 기운이 없어 그냥 병원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내내 눈앞은 뿌옇고 눈알은 욱신거렸다. 몸은 아팠지만 식구들 저녁이 걱정이다. 출근할 때만 해도 저녁에 수육을 할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달라졌다. 수육은커녕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낼 에너지도 없었다. 식구들 모두 집 밥돌이라 배달음식은 안 통할  것 같다.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햇반 8개 묶음을 샀다. 한 손에는 노트북 가방, 다른 손에는 햇반을 들고 걸어가는 내 모습이 왠지 짠하다. 집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대충 닦고 전등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누웠다. 긴장이 풀렸는지 몸도 쑤시고 머리도 아프다. 우리 집 만병통치인 타이레놀 2알을 털었다.


실명.

진짜 되면 어쩌지?

아직 애들이 어린데. 성인 된 애들 모습이 보고 싶은데. 손주 얼굴은 보고 싶은데. 멀리 있는 엄마, 아빠, 언니들 얼굴도 계속 보고 싶은데. 나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어질 텐데. 힘들어지면 내가 싫어질 텐데. 이럴 텐데 저럴 텐데라는 생각은 흘러 흘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결론을 냈다. 그러고 나니 서글퍼진다. 이렇게 죽기는 싫은데.... 곱게 늙어서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고 우아한 노인이 되고 싶은데. '뒤끝 없이 떠나자'라는 내 지표와 정반대로 나는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 앞에 질척거렸다. 후져 보였지만 자꾸 후진 생각만 났다. 이 생각은 중2 막내딸이 하원 후 더 심해졌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오늘 엄마가 컨디션이 안 좋은데 냉동실에 있는 칼국수 끓여 먹으면 안 될까?"

"국수? 밥 먹고 싶은데."

"뭐 배달시킬까?"

"됐어."

"저기 햇반 사 왔어. 오늘만 있는 반찬에 햇반 먹자. 내일은 맛있는 거 해줄게"


 막내딸은 입을 삐쭉 내밀었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딸아이에게  나의 상태를 간단하게 얘기했다. 딸아이는 알아서 먹겠다고 했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워 보인다. 때마침 남편이 퇴근했다. 남편에게 딸의 저녁을 부탁했다. 대충 닦고 나온 남편은 딸의 비유를 맞추며 냉장고에 있는 반찬통을 모두 꺼냈다. 남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딸은 말없이 햇반 1개와 햄을 데워 먹었다.


햇반 1개. 띠로리.

 저녁식사를 할 사람은 두 명인데. 자기 것만 달랑 데운 딸. 사춘기 딸과 갱년기 남편 사이에 파바박 불꽃이 튀었다. 남편은 씩씩거리며 엄마가 아픈데 네가 이러면 되냐고 소리쳤고 딸은 대꾸 없이 울기만 했다. 소파에 앉아 둘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20대 후반 다니던 직장에서 직원이 자주 아파 휴가를 내는 건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말했던 직상 상사가 생각났다. 어미가 아프다고 남편과 자식의 끼니를 안 챙겨주니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구나.  그 상사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구나 싶었다.

 남편과 딸을 피해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왔다.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자는 것 이외 할 일이 없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아픈 게 가족에게 챙김 받을 일이 아니라 짜증 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슬프다. 내가 일부러 내 눈알 망막을 찢어드린 것도 아닌데. 나 역시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운데. 실명을 하게 되는 건 지들이 아니라 나라고!  나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러다 낮에 고개도 흔들지 말라는 의사의 말이 생각나 뒤척임을 멈추고 정자세로 누었다. 화가 나는 중에도 살고는 싶었나 보다.  찌질하다 찌질해.


 어린 중2 딸에게 삐져 속상해하고 벌어지지도 않는 일을 크게 부풀려 불안해하는 내 모습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지표처럼 보인다. 나이를 먹으면 아량이 넓어진다는데 나는 밴댕이 소갈딱지보다 더 좁아지는 중이다.

'곱게 늙고 뒤끝 없이 떠나자'는 물 건너가는 중이다.


2024. 09. 03

 오전 6시, 선글라스를 쓰고 전기밥솥에 쌀을 넣는다.

 밥솥 옆 설거지 통에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는 그릇들 속에서 나의 가족이 보인다. 햇반 플라스틱 그릇은 막내딸, 잔반이 남은 반찬그릇은 남편, 라면 국물이 담겨있는 냄비는 둘째 딸, 빵을 담아둔 빈 용기는 큰아들. 그 안에 나의 흔적은 없다.  






망막열공: 망막과 유리체가 붙어 있는 부위에서 망막이 찢어져 망막전층에 결손이 생긴 질환을 의미한다 (출처: 네이버)



#망막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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