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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리데이미 Aug 20. 2019

엄마에게 진 알파고


 사람들이 집집마다 ‘가사 로봇’을 들이는 날이 오면 먼 미래의 어떤 이들은 ‘로봇이 담가주던 김치’를 추억하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최첨단 기술을 탑제한 신형 모델의 매끈한 솜씨에 탄복하면서도 어릴 적, 부엌을 종횡하던 구형 로봇의 손맛을 얼마쯤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옛날에 그 로봇, 김치 하나는 정말 잘 담갔는데…”라고 중얼거리며 그런 감정이 꽤 ‘아날로그’하거나 ‘인간적’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사실 지금의 우리도 공장에서 기계가 담가주는 김치며 만두를 먹고 살아가고 있다. 로봇이 쉐프 노릇을 하는 레스토랑, 생오렌지를 짜주는 자판기와 커피를 내려주는 바리스타 로봇이 등장했다. 일상에 보편화 되고 개개인의 가정에 안착되지 못했을 뿐.


 인공지능이 도래하기 직전의 세상이다.     


 미래인과 현대인이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자기 먹을 걸 차려주는 이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현대인의 유년에는 로봇이 파를 썰고 국을 끓여준 기억이 없다. 지난 세상의 끝물에 선 현생 인류의 감수성에는 아직 로봇과의 추억이 이식되지 않았다.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아마도 있을, 로봇이 놀아주고 로봇에게 배우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없다. 우리는 사람 손에서 자랐다. 나 먹이려고 부엌에서 서성이는 ‘사람’의 움직임이 추억 속 풍경이 된 사람들이다. 밥상머리에서 엄마와 함께 밥 먹으며 느꼈던 감정을 로봇에게서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 식탁의 기억은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정서를 이룬다. 낯선 이에게 미소 짓고 무너진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식탁의 단단한 네 다리 힘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도 나의 엄마를 이길 수는 없었다.         




 태어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성을 이름 앞에 달고 다녔다면 자라며 엄마에게 물려받은 입맛을 혀 끝에 새기며 살았다. 이십년 넘게 한 사람이 해주는 음식을 먹고 자란 덕에 나의 성은 친가를 따라 ‘조(趙’)씨였으나 입맛은 외가를 따라 ‘전(全)’씨네 취향대로 형성되었다. 엄마의 고향인 전라도 광주는 어떤 음식이든 맵고 짜고 감칠맛 나는 양념으로 버무려 대중적으로 먹힐만한 간을 하는 하는 지역이었다. 음식 맛에 자부가 강한 지역 사람답게 엄마는 서울에 올라와서도 자식들을 고향의 방식대로 먹여 키웠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김부각을 튀기고 고들빼기 김치와 갓김치를 배추김치, 총각김치 곁에 놓았다. 계절이 스물일곱번쯤 바뀔 동안의 일이었다. 이제와 그 역사를 기념하고 레시피를 공유하고 싶어도 무수히 차렸던 식탁의 기록은 지난날 흩어진 벚꽃이나 눈송이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 노트 같은 게 있을리도 없어 훌쩍 자란 내 키만이 어떤 증거의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전씨네 레시피의 원조격인 외할머니의 손맛은 엄마의 것보다 깊고 진했다. 엄마의 요리를 커피로 쳤을 때, 매일 먹어 길들여진 동네 카페에 비유할 수 있다면 할머니의 요리는 이태리 전통 에스프레소라고나 할까. 할머니는 ‘원조’ 전라도 할매답게 홍어나 꼬막처럼 손이 많이 가고 잘못하면 역하기 쉬운 생물도 능숙하게 다뤘다. 방학이나 명절 때 외가댁에 내려가면 채 짐을 풀기도 전에 상이 차려져 나왔다. 일년에 몇 번 못 보는 새끼들 먹이려고 작정하고 차린 상이었다. 접이식 양은발상에 검은쌀 섞어 보랏빛이 된 밥과 황태국, 미리 재워 야들야들해진 갈비찜, 새콤한 홍어무침과 매콤한 꼬막무침, 철철이 담은 김치가 빼곡히 들어찼다.  

   

 “뭐 더 주랴?”    


 상은 이미 종지 그릇 하나 올릴 틈이 없는데 할머니는 성에 안 차는 지 자꾸 뭔가를 내오려고 했다. 마침 알맞게 삭은 식혜를 들고 나오는 할머니의 손가락이 오랜 세월을 버틴 고목처럼 두꺼웠다. 그에 비하면 고운 편이었으나 세월의 흔적이 쌓이기는 엄마 손도 마찬가지였다. 손마디가 두꺼워지는 줄도 모르고 버티던 엄마는 오랜만에 내려온 고향에서 엄마의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으면 타지생활의 피로가 풀리는 모양이었다. “뭘 이렇게 많이 차리셨어. 고생스럽게.”하면서도 ‘나도 밥 차려주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은근히 든든한 눈치였다.   

  

 올라오는 길에는 의당 그래야 마땅하다는 듯 짐이 두 세배로 늘어나고는 했다. 락앤락 통에 담겨 황금빛 보따리로 감싼 보물단지 안에 꽈리 넣어 볶은 멸치볶음과 까맣게 윤기 나는 콩자반, 실하게 살이 오른 양념게장이 뚜껑 안쪽까지 그득히 차올랐다. 총각김치, 갓김치, 배추김치도 패키지로 묶여 트렁크에 실렸고 한동안 우리집 식탁을 주도할 고추장 된장도 단단히 패킹되어 한 자리를 차지했다.  



 시골집에서 싸온 반찬이 바닥날 때쯤, 엄마는 이제 공짜 저녁은 끝났다는 듯 ‘엄마표 반찬’을 만들기 위해 부엌으로 복귀했다. 직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제2의 직장’에 들어선 근로자처럼 전투적으로 소매를 걷어 붙이고는 칼을 들었다. 도마 위에 애호박이 썰리는 동안 가스불 위에는 자기 차례를 준비하는 멸치 다시마 육수가 조용히 끓어오르며 베이스를 다지고 있었다. 음식에 대한 개인의 취향이 생기기 전부터 맡았던 익히 아는 냄새. 냄비에 담긴 짭짤한 맛을 ‘된장’이라 부르는지도 모르던, ‘말’을 알기 전의 혀가 먼저 맛보았던 냄새가 허기진 속으로 뜨뜻하게 스몄다.    


 엄마가 밥 하는 일은 세상에 지친 식구들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주문과도 같았다. 프라이팬 앞에 우뚝 서서 멸치를 볶고 깨를 뿌리는 엄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주문을 집도하는 영매처럼 보였다. 집안 가득 짭쪼롬한 냄새가 차오르면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액막이용 주문이 집안으로 퍼져나가는 듯 했다. 우리를 삼키려고 애쓰는 집 밖의 무언가가 마늘과 고추의 독한 냄새에 놀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 집은 찌개를 끓이는 집이구나, 인간이 인간을 먹이기 위해 불 앞에서 사력을 다하는 집이구나’ 싶어 그런 인간이 사는 집은 건드려봤자 피곤하니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때론 조림으로, 때론 나물로, 때론 국으로. 엄마는 다양한 메뉴로 잡귀를 물리치며 가정을 지켰고 우린 식탁 위의 요리를 먹으며 몸과 마음을 지켰다.     


 나의 유년기는 식탁에서 영글었고 나의 사춘기는 식탁에서 치유되었다.  


 나를 키운 팔 할인 집밥을 먹고 자란 덕에 다시 누군가의 팔 할을 채우기 위해 부엌에 선 나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 요리와 씨름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왕복하고 다닌다. 추억으로만 남은 외갓집 메뉴를 재생해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할머니의 빈 자리는 아마 두 스푼 덜어낸 소금 같을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칠 맛으로 입 안에 겉도는 부재를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이로써 전씨네 레시피의 맥은 내 대에서 끊긴 셈이 되었으나 자식을 먹이는 본능만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 부엌일이 힘에 부치면 반찬을 시켜 먹거나 배달 앱을 누르기도 하지만 힘이 나는 대로 집밥을 한다. 오장육부에 새긴 내밀한 문신과도 같은 맛의 기억은 인간의 잠재의식과 연결되는 비밀 루트가 있고 루트를 여는 비밀번호는 젓가락과 숟가락 한 짝이 만들어내는 세 개의 막대기의 교차지점에 숨겨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도 그 루트를 만들어 주기 위해 굴을 파듯 찐 밤을 파내며 내 안의 어린 아이가 어릴 적부터 받아들여 온 걸 나의 아이에게 먹이며 살아간다.    




 이렇게 먹고 살다 보면 언젠가 로봇에게 밥상 받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되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우리를 먹여 키웠던 사람들, 자네의 선배쯤 되는 분들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그들 덕에 인류의 아침과 점심, 저녁이 있었다고 말이다. 구구절절한 옛타령에 대해 과연 로봇은 뭐라고 대답할까? 프로그래밍된 언어를 돌려 가장 적절한 답을 도출해내지 않을까.    


 “그렇군요. 정말 고마운 분들이군요.”    


 그 기계적인 대답에 나 또한 가식적으로 미소지으며 생각할 것이다. 아니, 너는 절대 모를 옛날 옛적 일이다. 꼬막무침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진짜배기는 따로 있다, 양념 배인 기억을 끄집어 내어 머리 속에서 꼭꼭 씹어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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