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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PD Jul 06. 2015

남자의 로망, 프라모델 #4 - 종류

건프라가 다는 아니다


업계 관계자에게 들은 바로는 프라모델 구매층의 약 70%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남성이라고 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사주는 수요가 포함됐을 수 있지만 아무튼 곧이 곧대로 자료를 받아 들이자면 ‘프라모델’이라는 분야 자체가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글쎄, 요새 어린아이들이 뭐하고 노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리 때보다 게임이 훨씬 보편화됐다고 생각하면 전보다 조립식 장난감을 갖고 노는 비율이 줄지 않았을까?

요새 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터닝메카드...!

문방구가 있는 동네를 가면 혹시 추억의 아이템은 없을까 해서 꼭 한 번씩 들리는 편인데, 막상 어릴 적 갖고 놀던 조잡스럽고 저렴한 조립식 장난감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가 열광했던 바로 그 에어울프도 프라모델로 있었다

대신 아카데미 과학의 밀리터리류 프라모델, 또는 건담과 골판기 전사 등  꽤 본격적인 프라모델류와 레고 (중국산 짝퉁 블럭 포함)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제품들은 예전보다 훨씬 재질도 좋고 동심을 꺾는 불량 부품도 적겠지만, 아무래도 손이 닿는 몇 천원 금액으로 가볍게 사서 갖고 놀만한 것이 없다 보면 흥미를 가질 계기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일본의 프라모델의 전체 시장 매출은 90년대 200억엔대에서 2000년대에 100억엔 대 초반으로 떨어졌는데 (출처 : 일본 경제산업성), 그 이유로 출산률 저하와 더불어 놀이 문화의 다양화, 프라모델 가격 상승을 꼽는다.



반면 어른들의 프라모델은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서 하나의 조형 예술 수준까지 올라왔다.


점점 세밀해지는 조형에 더해 락커, 도료, 에어브러쉬를 사용한 수많은 도색 기술이 활용돼 그 표현의 영역이 굉장히 넓어진데다가 인터넷, 특히 유투브의 영향으로 그 비밀의 레시피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조금만 노력하면 괜찮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그동안 건프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사실 프라모델은 단순히 건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류 프라모델도 인기가 높으며 밀리터리 프라모델의 팬층도 두텁다. 개인적으로는 건담이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프라모델에 속하며 그 밖의 녀석들은 정말 영혼을 털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무시무시한 놈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프라모델의 주요 소비층이였던 시절이 지나면서 로봇을 넘어 매니아들의 취향이 반영된 다양한 제품들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각설하고, 서두가 길었지만 이번 장에서는 그 '다른 종류'의 프라모델을 한번 흝어보도록 하자.




개고생 끝에 낙이 오는 차량 프라모델


한때 나는 오토바이 모형을 조립, 도색하곤 했는데 지금보다 미숙했던 실력 탓도 있겠지만 정말 육두문자가 입에 떠나지 않을 정도로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로봇이야 어차피 가상의 구조물이니 어느 정도 디테일이 생략되거나 느낌만 잡아놓은 경우가 많지만 실물 구현으로 들어가면 도색의 색분할이나 부품의 질감까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다.


한 부품에 비슷한 색을 3종류 나눠서 칠하는 건 기본이며 스프링과 배선을 연결하는 작업을 여러번 반복하고 나면 진이 쫙 빠져버린다. 그 뿐 아니라 본드의 사용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건프라는 본드 사용이 없다)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손이 가는 이유는 역시 완성했을 때의 만족도일 것이다.


직접 구석구석 손을 대서 만든 미니어쳐 차량에는 완성품을 샀을 때와는 다른 뿌듯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오토바이 모형의 경우 내부 실린더와 모터 등 주요 부품을 만들고 칠하고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비록 움직이진 않지만) 들여다 보면서 ‘오 이걸 내가 직접 만들었다니!’하는 느낌을 받는다. 제품 자체가 워낙 디테일하기 때문에 고생을 하는 만큼 보람도 확실하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바이크를 주로 만들었던 프라모델러 쥴라리님의 경우, 하나를 작업하는 데 3달에서 4달의 시간을 투자한다고 한다.

쥴라리님이 제작한 두카티 바이크 모형
작업을 위해서는 먼저 실차 자료를 꽤 수집해야 되요. 주어진대로 만들기도 하지만 저는 자료를 기반으로 개조 계획을 세우거든요. 예를 들면 LED 조명은 제가 직접 제작해서 넣는데, 이를 위해서 배선, 배터리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미리 설계를 다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방향성이 정해지면 관련된 부품을 구매하고 실작업에 들어갑니다.

실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표면 정리인데 이는 차 특유의 번쩍이는 느낌을 내기 위해서 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사포로 표면 정리를 하는데 거친 사포 (800방)부터 고운 사포 (8000방)까지 차례대로 하나씩 작업합니다....사실 완전 개노가다예요.

하지만 최초 표면이 매끄럽지 않으면 최종 마감재 (보통 우레탄 사용)를 아무리 두껍게 바르고 연마해도 매끈한 표면은 얻을 수 없습니다. 이 기초 작업 뒤에 메탈릭 컬러를 입히고 그 위에 클리어 도료로 색을 씌운 뒤에 1차 마감재, 다시 표면 정리 후에 최종 마감재까지 써서 마무리합니다.
차체 내부에 LED 작업이 된 모습 (쥴라리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면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더럽게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라고.


그러나 이렇게 생노가다를 거쳐 만들어진 작품은 최초 제공되는 가조립 (동봉된 상태로 조립한 키트)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리얼함을 갖게 된다.  


쥴라리님은 실제 차량을 좋아하지만 직접 차를 개조, 도색할 여건은 안되기 때문에 이렇게 프라모델 제작으로 대리만족을 얻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고 한다.

요건 필자가 직접 만든 혼다 몽키 바이크...위랑 퀄 차이가 좀 남...
꼭 리얼 차량만 만들란 법은 없다. 남자라면 배트모빌.




있는 그대로 또는 창의적으로 - 밀리터리 / SF물


차량, 오토바이 외에 또 하나 상당수의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밀리터리물’이다.


디오라마라고 불리기도 하는 군사 관련 모형은 1차 2차 세계 대전 시기의 전투 환경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소위 ‘밀덕’이라고 불리는 밀리터리 마니아들은 군복을 입고 1,2차 대전 상황을 직접 재현하는 행사를 할 정도로 고증에 민감한데, 밀리터리 프라모델을 만드는 사람들 역시 이 ‘밀덕’인 경우가 많아 꼼꼼한 재현을 중시하는 편이다.


 공동 작업실에서 주말을 이용해 프라모델 작업을 하는 모델러 ‘서영석’님은 밀리터리물 만이 갖는 즐거움으로 “한 가지 아이템으로 여러가지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예를 들면 Tiger I 탱크라는 같은 모델이라도 1942년, 1943년, 1044년형으로 연도마다 다르며 또 부대, 전선 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다. 여기에 더러워지고 낡은 정도를 표현하는 ‘웨더링’ 기법을 이용하면 다양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T-62 Russian MBT (서영석님)

 서영석님은 이러한 ‘맛’을 내기 위해 기존에 주어진 키트를 필요에 따라 일부 개조하거나 튜닝하기도 한다. 탱크 제품의 경우 궤도 하나가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에 심지어 본체 키트값보다 비싼 궤도를 구매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영석님의 T-34/85 전차
병사 복장까지 꼼꼼하게 채색된 1/35 Tiger ausf E (서영석님)
이런 식으로 환경까지 제작해 디오라마화한 작품도 많다 (토이프린스님)


한편 정통적인 밀리터리물 외에도 상당히 SF적인 느낌이 강한 ‘마시넨 크리거’라는 제품도 상당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원래는 일본의 SF 일러스트레이터, 요코야마 코우(横山宏)가 ‘월간 하비재팬’이라는 잡지에 ‘S.F.3.D’라는 명칭으로 일러스트와 직접 제작한 프라모델, 디오라마를 게재하며 유명해진 작품이다.


이것이 다시 ‘모델 그래픽스’라는 잡지로 옮겨 가면서 ‘Maschinen Krieger(Ma.k)’ 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2029년 핵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지구를 다루고 있으며 1982년 첫 등장부터 무려 30년이 넘게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마시넨 크리거의 아버지, 요코야마 쿄우

마시넨 크리거 프라모델을 주로 제작하는 모델러 brasscap님은 SF적인 디자인과 2차 대전 스타일의 전차와 군복이 적절하게 믹스된 것이 마시넨 크리거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원작자인 요코하마씨가 직접 커스텀 모델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조형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높고 세계관이 잘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brasscap님의 마시넨 크리거 FIreball 도색작

마시넨 크리거는 SF적 분위기를 띄고 있긴 하나 기본적으로 밀리터리이기 때문에 제작 방법에 있어서도 유사성을 갖는다. 진흙, 사막의 모래, 오염된 먼지 등의 효과를 통해 전투로 손상된 외피를 표현함으로서 리얼한 느낌을 주는데, 이것이 마시넨 크리거의 SF적 분위기와 맞물려 세기말적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마시넨 크리거는 판매되는 그대로 조립하는 것으로는 ‘참맛’을 살릴 수 없습니다. 마시넨 크리거는 커스텀하기가 정말 쉽게 되어 있고 이렇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짜 재미입니다.
- brasscap님


실제로 원작자인 요코하마씨를 필두로 많은 애호가들은 기존 밀리터리 프라모델의 남는 부품들을 이용해 자신만의 커스텀 작업을 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초심자들도 주어진 조립법에만 너무 신경쓰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가기에 적합할 수 있다고 한다.

모델러의 작업 현장 (brasscap님)
SF 느낌 물씬 나는 Neuspotter  (brasscap님)


이렇듯 프라모델에는 단지 건담 등 로봇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입맛에 맞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위에서 소개한 분야 외에도 범선이라던지 철도, 또는 피규어같은 인간형 프라모델까지 조립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하다.


 애니메이션을 몰라서, 혹은 좋아하는 분야가 달라서 로봇물이 끌리지 않았다면 탱크나 비행기 중 쉬워보이는 녀석을 하나 골라서 만들어보자.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어렸을 때 한번씩은 아카데미 과학 제품을 만들어보지 않았던가? 분명 옛 추억도 떠올리면서 동시에 얼마나 정교하게 변모했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이렇게 현실의 조형물을 리얼하게 재현한 작품들도 너무 멋있지 않은가 (혹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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