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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동 Dec 03. 2020

감옥에 가지 않아도 책은 쓰고 싶어

책을 쓰려면 감옥에 가야 한다. 내가 틈날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물론 농담 삼아하는 말이지만 책은 쓰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반은 진심처럼 하는 말이다. 진심이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실제로 감옥에서 책을 쓴 사람들이 많다. <철학의 위안>을 저술한 보에티우스부터 단편으로 유명한 오 헨리, <천로역정>을 쓴 존 버니언, 러시아 문학의 거장 도스토예프스키, 유배지에서 무려 500여 권의 책을 쓴 정약용, 호찌민과 히틀러, 황석영, 신영복, 박노해, 황대권 등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서 책을 썼다. 옥중 문학이라 불리는 장르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애꿎은 감옥까지 떠올리며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심보는 도대체 뭘까? ‘오로라 보기’처럼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단골로 올라가는 것이 ‘책 쓰기’니까? 책을 써서 유명해지거나 작가라고 불리고 싶어서?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하니까? 아니면 그저 쓰는 것이 좋아서?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며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라고 했다. 나는 아쉽게도 아직까지 출판 귀신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 귀신이 있다면 내림굿이라도 하고 싶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이 문장은 책 쓰기 전도사 장강명에게 배운 말이다. 나는 시공을 초월하여 항구적으로 불변하는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고전을 통해 인간 지성의 계발을 목표로 하는 항존주의가 펌웨어로 기본 탑재되어 있는 사람이라 고전이라 불리지 않는 요즘 시대의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고전으로 평가되는 소설이나 시도 굳이 읽어야 하나 싶었다. 중요한 것은 주요 사상의 흐름과 역사적 맥락이니까. 그 두 가지만 이해하면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그러니 100년 200년 후에도 고전으로 불릴 법할 정도의 내공을 담은 책이 아니라면 아예 쓰거나 출판하지 않는 것이 인류 전체의 효율성을 위해 필요하다. 괜히 우주 배경 복사 같은 잡음만 담아놓은 책을 써서 독자들이 행여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안 되니까.


하지만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를 읽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장강명은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의 글은 말의 언어로 쓰여서 한 사람의 생각을 깊이 있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단행본을 써야 한다고 했다. 여러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며 단행본으로 쓴 이야기가 풍부해지는 것은 마치 유전자 다양성이 종의 생존과 적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차 한 잔 대접하며 액기스만 들어보는 시간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나도 차 한 잔 대접받으며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그렇게 들려주고 싶다.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써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책은 정말 쓰기가 쉽지 않으니까. 책이 아니라 요즘은 짧은 글 하나 쓰기도 어렵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나의 강박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하는데 나는 독서량이 부족해서 적어도 지금부터 10년 정도는 책을 더 읽고 사색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읽어야 할 책은 자꾸만 늘어가고 ‘이제는 글을 써도 되겠다’고 생각하게끔 해주는 마법의 결승선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 더 많이 더 빨리 읽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책을 곱씹어 보지도 못하고 ‘씨앗 도서’ 목록에서 다음에는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것에 급급하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로 결승선을 출발선으로 만들어 본다. 글쓰기를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며 생각하고 읽기로 한다. 수많은 연재 노동자의 고통을 몸소 체험해보기로 한다. 매일 글쓰기의 끝을 보여준 이슬아와 매달 노래 만들기의 끝을 보여준 윤종신을 적절히 섞어 <주간 김재동> 정도는 되어보기로 한다.


글은 방해 요소가 없을 때, 생각할 시간이 많을 때, 규칙적인 생활을 할 때, 심심한데 글 쓰는 것 말고는 재미있는 일이 없을 때, 세상과 단절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고 싶을 때 더 잘 쓸 수 있다. 그러니 글을 쓰기 위해서 먼저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알림은 끄고 나의 시간을 좀먹는 앱은 삭제한다. 시간이 아깝다고 팟캐스트를 듣거나 영상을 틀어놓지 말고 멍 때릴 시간, 사색할 시간을 확보한다. 코로나 19로 자가격리 급으로 집에 머무르는 요즘, 디지털 미니멀리즘만 잘 실천한다면 이것이야말로 21세기형 셀프 위리안치가 아닌가. 감옥에 가지 않아도 책은 쓰고 싶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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